65세 이상 5명 중 4명 "식당 자체를 안 가"
지자체별 교육 프로그램 있지만 '유명무실'
개발자, 키오스크 고령층 접근성 강화해야

햄버거 가게에서 고령자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햄버거 가게에서 고령자들이 키오스크를 통해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키오스크(kiosk)란?
무인 거래가 가능한 단말기를 말한다. 넓은 스크린, 단순한 메뉴화면, 비주얼화된 큼직큼직한 버튼 등 최대한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해 설계됐으며 처음 이용하는 고객이라도 상세한 음성 안내에 따라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사용하면 되므로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990년대 초부터 등장해 인터넷 환경 기반 조성과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활용이 활성화되면서 보편화 돼가고 있다.

68세 김순자 씨(가명·여)는 암 투병 중인 74세 남편 김철수 씨(가명·남)를 요양병원에서 직접 간호하며 돌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순댓국을 먹고 싶다고 해 근처 식당에 포장하러 갔다. 하지만 순자 씨는 가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주문을 키오스크로 해야 했는데,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최근 키오스크 등 디지털기기의 일상생활 도입률이 높아지면서, 고령자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에서만 전체 중 절반을 넘는 62%의 음식점이 키오스크 무인 결제 및 주문 방식을 도입했다. 

키오스크 시장도 해마다 늘어 5년 만에 10배 이상 몸집을 키웠다.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가 조사한 ‘국내 키오스크 도입 추이’에 따르면 2015년 20억원 시장 규모에서 해마다 30억원, 65억원, 100억원, 150억원 등으로 늘었다. 지난해는 22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내 키오스크 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61.5%다.

이럴수록 디지털 기기와 익숙하지 않은 60세 이상 고령층만 난해한 상황을 겪는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응 방법으로 키오스크 활용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사회 추세라고 봐야 한다"면서도 "과도기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어르신들이 이 추세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혼자 살거나 두 분이 생활하는 분들은 외식이 어려워지거나 고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됐다는 자괴감도 느낄 수 있겠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에서 '심리적 위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다른 사람은 잘 사용하는데 나만 왜 못할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위축감이 올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유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고령자의 디지털 소외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면서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나 유용성 문제도 있지만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필요성을 충분히 못 느끼거나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자들은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할뿐더러 쉽게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져 스스로를 탓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했다.

유 교수는 ‘고령자의 심리적 요인을 고려한 키오스크 사용경험 개선 제안’ 연구에서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의 심리가 키오스크 이용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 분위기상 키오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또래가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 등의 사회적 특성 요인과 혁신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 등이 기술 수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오스크 이용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고령자들은 지속적인 기술 수용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기기 교육률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설문조사 업체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이 고령층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5명 중 4명은 키오스크가 있는 식당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고 답했다. 

정부는 2019년부터 각 지자체를 통해 키오스크 고령층 사용과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역량 강화 사업은 읍면동 주민센터와 도서관, 복지관 등 집 근처에 있는 디지털 배움터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선 해당 교육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노인이 대다수인 점, 그리고 교육받더라도 각각 다른 키오스크 모델 때문에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따라서 현재 도입된 키오스크에 노인 주문용 UI(사용자 환경)를 도입하거나 고령층이 이용하기 편한 고령자 전용 키오스크 도입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복 대한노인회 사무부총장은 키오스크 도입이 빨랐던 일본 사례를 들며 사용법이 간소화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20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 키오스크 UI가 간편하게 돼 있어서 쉽게 이용했다"며 "첫 번째로 음식 그림이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고 두 번째로 결제 아이콘에 깜빡깜빡하면서 불이 들어와 선택을 유도하는 식으로 순서에만 따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애초에 사용이 간편해지면 정부에서 키오스크 IT 교육 예산으로 수천억을 들일 필요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접근성 구현이 안 된 상태에서 이용법을 아무리 교육해 봐야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글씨 자체가 작아서 어르신들이나 저시력 장애인에게는 안 보이는데 이용법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이용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미 키오스크 접근성 강화를 위한 고시가 나와 있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지키는 개발업체도 없다"며 사실상 키오스크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현재는 존재하지는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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