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인간과 돼지는 공존하는 존재다
우리는 돼지를 얼마나 알고 있나
음식 아닌 생물로서도 바라보자

돼지박물관의 아기 돼지 [사진: 김성주]
돼지박물관의 아기 돼지 /사진=김성주

돼지가 코를 사용하여 땅을 파헤치고 무언가를 반복해서 밀어 넣는 행위를 루팅(rooting)이라고 한다. 우리는 루팅을 하는 돼지를 보며 킁킁대며 무언가 먹을 것을 찾아다닐 거라 여긴다. 루팅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돼지는 안락함, 의사소통, 몸 식히기 또는 음식 찾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루팅을 한다.

루팅이라는 본능을 해소하지 못하면 돼지는 옆의 돼지 몸에 있는 꼬리나 귀를 물거나 울타리를 물어뜯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루팅으로 먹이를 찾기도 하지만 동시에 땅을 파서 물웅덩이를 만들어 진흙 목욕을 하는 효과도 있다.

즉, 돼지는 목욕하는 동물이다. 집과 화장실 사이에 루팅으로 땅을 파서 웅덩이를 만들어 놓으면, 그 웅덩이에 비가 내리면 목욕탕이 된다. 그곳에서 돼지는 목욕을 즐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진흙 목욕이다.

돼지는 개처럼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체온을 낮추기 위하여 더운 날에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이다. 진흙탕에서 몸을 뒹굴면서 축축한 진흙으로 몸을 식혀 과열로 인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이때 온몸에 바른 머드팩은 피부 화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처럼 목욕하고 머드팩을 사용한다. 

우리는 막상 돼지에 대해서 모른다. 잘 모르는 동물이어도 가장 잘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양돈 농가에 가서 돼지의 습성에 관하여 물어보면 잘 모른다. 단지 열 달 정도만 살을 찌워 키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몇 달 사이에 병에 걸릴까 예방주사 몇 번 찔러준다. 무게만 잘 나가면 된다.

돌이 안 되어 농장을 떠난 돼지는 도축이 되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식탁에 오른다. 삼겹살, 목살, 전지, 후지, 족발, 머리 고기, 곱창··· 이런 식으로 나뉘어져 오른다. 창자에 기술이 조금 들어가면 순대나 소시지라는 것이 된다. 

집 가(家)은 집에 돼지가 있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이다. [소장: 돼지박물관]
한자의 집 가(家)는 집에 돼지가 있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이다. /돼지박물관

음식으로 키우는 동물을 우리는 가축이라고 부른다. 가축은 돼지, 소, 양, 닭, 말, 토끼 등이 대표적이다.  집 가(家)도 집 안에 돼지가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돼지가 가축이 된 것은 호기심이 많은 돼지가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인간의 주변으로 몰려오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 거주지 주변의 쓰레기 더미 안에 있는 음식, 뼈, 썩은 과일, 곡물이 후각을 통해 먹이를 찾는 돼지를 모여들게 하였다. 인간은 단백질을 얻기 위해 어린 돼지를 집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돼지는 소, 양, 염소보다 먼저 가축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미 인간은 사냥으로 얻은 야생 돼지의 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주변으로 몰려온 어린 야생 돼지를 기꺼이 반려동물로 들인 후에 다 큰 돼지를 우리에 가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도축하여 먹었다. 이것이 축산의 역사다.

오른쪽 이종영 대표 [사진: 김성주]
이천 돼지박물관 이종영 대표(오른쪽) /사진=김성주

미니 피그를 키우면서 돼지의 생태를 일러 주며 치유 농업을 하는 돼지박물관이라는 곳이 이천에 있다. 돼지박물관의 이종영 대표는 국내 최고의 돼지 전문가이다. 돼지를 사랑해서 박물관까지 지었으니 말이다. 살아 있는 돼지를 매우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나와 막역한 사이라서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주로 돼지이다. 그는 돼지를 보면 측은하고 미안하게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사람이나 돼지나 일생이 비슷한데 둘 다 삶이 퍽퍽하단다.

사람과 인간은 똑같이 위가 1개이다. 잡식동물이다. 해부학 구조와 면역 체계가 서로 유사하다. 둘 다 무리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돼지끼리 보여주는 애착 관계는 인간이 보여주는 사랑과 같다.  

돼지도 인간처럼 경쟁한다.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 젖꼭지를 찾아 돌진한다. 어미의 머리와 가장 가까운 젖꼭지가 젖이 가장 잘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눈도 못 뜬 아이가 함께 태어난 형제들과 젖꼭지를 차지하려 경쟁한다. 가끔 어미의 젖꼭지 수보다 더 많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연약한 새끼는 먹이 경쟁에 밀려 도태된다. 

인간도 시험에서 떨어지면 도태된다. 지금 한국의 인간들은 어마어마한 경쟁에 지쳐 개체 수를 줄이고 있다. 자식들이 먹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확률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을 해결하지 않으면서 인구 소멸이네 지방소멸이네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인간이나 돼지나 술을 좋아하고 숙취에 시달리기도 한다.

인간이나 돼지나 청결에 목숨을 건다. 인간만이 화장실을 따로 두고 사는 것이 아니다. 돼지도 화장실을 마련한다. 새끼조차도 젖을 먹으며 배를 채우면서도 뱃속의 오줌을 어미 젖꼭지와 동기 돼지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해결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알아서 멀리 화장실로 정한 곳에 가서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이다. 인간의 아기보다 청결하다. 

이종영 대표는 돼지처럼 먹는다에 대하여 다르게 설명한다. 수십 년간 돼지를 키우면서 관찰한 결과 돼지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기 위장에 음식이 80%가 차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단다. 돼지처럼 먹는다는 것은 과식한다는 의미인데, 돼지는 많이 먹기는 하여도 과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돼지처럼 먹는다는 것은 절제하며 먹는다는 것이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TV에서 다이어트 하는 모습이 나오면 속으로 ‘돼지처럼 절제하면서 먹네’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돼지는 무척 청결한 동물이다. 그럼에도 똥돼지라는 별명이 있다. 인간이 돼지를 사육하면서 밥을 먹는 장소와 똥을 누는 장소를 구분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돼지는 억울하다. 

아기 돼지를 목욕시키고 안으면 쌕쌕거리면서 잔다. 심장 고동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 아기 돼지를 평생 양돈만 하였다는 노인에게 안겨 드린 적이 있는데 그는 선뜻 안지를 못하였다. 한 번도 돼지를 안아 본 적이 없단다. 남들이 돼지를 품에 안아 보는 것을 본 후에야 용기를 내어 안아 보았다. 

‘아기 돼지 베이브’라는 영화는 돼지가 양몰이에 성공하는 돼지 성장 드라마이다. 실제로 돼지를 개 대신에 양몰이를 시키는 사례가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는 비행기 조종사가 어떤 이유로 인간 모습을 포기하고 돼지가 된 사연이 그려진다. 한국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돼지의 왕’은 제목에 돼지가 있으나 작품에는 돼지가 나오지 않는다. 

가톨릭 성인인 성 안토니오는 돼지의 수호성인이다. 기독교의 성화에서 흔히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으로 그려지는 그는 T자형 지팡이를 짚고 돼지 한 마리를 옆에 끼고 다닌다. 그림은 히에로니무스 보쉬 혹은 그 추종자, 성(聖) 안토니우스의 유혹, 1500~1525년경, 목판에 유채, 73cm × 52.5 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우정아의 미술스토리=조선일보 2019년 1월 19일 자
가톨릭 성인인 성 안토니오는 돼지의 수호성인이다. 기독교의 성화에서 흔히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으로 그려지는 그는 T자형 지팡이를 짚고 돼지 한 마리를 옆에 끼고 다닌다. 그림은 히에로니무스 보쉬 혹은 그 추종자, 성(聖) 안토니우스의 유혹, 1500~1525년경, 목판에 유채, 73cm × 52.5 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우정아의 미술스토리=조선일보 2019년 1월 19일 자

가톨릭 성인인 성 안토니오는 돼지의 수호성인이다. 기독교의 성화에서 흔히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으로 그려지는 그는 T자형 지팡이를 짚고 돼지 한 마리를 옆에 끼고 다닌다. 성인은 돼지가 혹여나 곁을 떠나 멀리 떠돌더라도 행방을 알 수 있게 귀에 방울을 달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종영 대표는 가톨릭 세례명을 ‘안토니오’로 지었다.

돼지에게 참 미안해진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행하면서 몇 년째 멧돼지 사냥을 하고 있다. 돼지가 아이큐 70이 넘는다는 것을 아는가. 개보다 지능이 높다. 네발짐승 중에는 코끼리가 가장 지능이 높다는데 그다음이다. 그리고 수명이 15년은 된다는데 고작 열 달 만에 도축하면서 돼지한테 미안하지 않은가. 가축이니까 능히 그럴 수는 있으나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안락하게 지내게 할 수는 없을까. 동물 복지는 아직 멀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의 눈을 보고는 차마 삼겹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돼지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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