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엄마의 방> 연재 7화
절대 찾지 않던 죽을 찾는 엄마
봄나물 잘 드시다가 변덕 부려
추어탕 집에선 한 술도 안 뜨고
삼계탕 역시 입에도 대지 않아
나날이 변해가는 엄마의 입맛

엄마는 몸이 아파도 절대 죽은 안 먹었다. 내 아들도 이런 할머니의 식성을 닮았는지 군대에서 닭죽이 나오는 날은 매점 행이었다. 편도가 부어 먹지 못하면 주방에서 누룽지를 끓여줬다고 한다. 엄마는 나와 할머니가 죽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 못 한다고 했던 분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죽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콩죽 좀 끓여.”
콩죽은 다른 죽과 달리 하루 정도 콩을 불리고 쌀을 불려야 해서 바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쌀을 불려 들깨죽을 끓였다.
“누가 김장하자고 했니? 왜 들깨죽이야? 안 먹어. 검은깨죽도 아니고.”
사실 임기응변으로 끓인 들깨죽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할 때 대대로 찹쌀 들깨죽을 끓여 김칫소를 만든다. 나는 김치를 안 먹지만 들깨 찹쌀죽을 먹기 위해 김장하는 날을 기다릴 정도다.
어깨너머로 본 기억을 되살려 겨우 끓여낸 죽을 엄마는 한술도 안 먹었다. 다시 집으로 내려와 검은깨를 갈아 엄마 말대로 검은깨죽을 끓여 갔다.
“왜 죽이 써? 설탕 넣어줘.”
“엄마 검은깨죽은 고소하면서 약간 쌉쌀하잖아요. 설탕은 가능하면 안 드셔야 해요. 당수치 오르잖아요.”
“그럼 나 안 먹을래.”
엄마의 단호함에 못 이겨 설탕을 약간 넣어드렸는데 미각이 퇴화되다 보니 더 달게, 더 짜게 먹으려 했다. 엄마는 먹고 싶은 것은 절대 안 잊는다. 아침부터 콩죽을 끓여 갔더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콩죽을 먹고 나서는 저녁은 호박죽을 드시겠단다. 나는 호박죽은 한 번도 먹지 않았고 끓여본 적도 없어서 인터넷 레시피에 의지했다. 단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쌀을 불리고 마침 엄마 간식으로 쪄내던 단호박이 남아 있어 레시피를 보면서 겨우 호박죽을 끓였다.
엄마 덕분에 내 요리 실력은 늘어갔다. 하지만 안 하던 일을 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시루떡을 하라거나 만두를 만들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잠시 죽을 쉬게 하려고 엄마가 평소 좋아하던 잡채를 했더니 몇 젓가락을 안 먹고 다음에 먹겠다며 냉장고에 넣으라고 했다. 잡채도 정식 잡채와 채소 잡채, 콩나물잡채까지 별별 잡채를 다 했다. 그런데 죽 타령이 다시 이어졌다.
“네가 잘 만들던 조개죽 있잖아?”
“백합죽요?”
“응. 그거 먹고 싶어.”
내가 좋아해서 백합죽을 잘 끓이고, 손님 초대에도 백합죽을 내놓으면 모두 맛있다고 칭찬했다. 여러 가지로 몸에 좋고 맛있는 백합죽은 내 전공이었다.
엄마가 백합죽을 찾는데 내 차가 없으니 예전처럼 수산시장에 다녀올 수가 없었다. 엄마 집에는 주차장이 없고 나갈 일도 없어서 내 차를 치운 지 오래였다.
“엄마, 그건 수산시장 가서 사와야 해요.”
“네 차로 얼른 다녀오면 되지?”
“엄마, 나도 내 차가 없어서 답답해요. 평생 자동차가 내 발이었지만 없애고 왔잖아요. 큰아들이 사다 놓은 전복 있는데 전복죽 해드려요?”
“그래. 해봐.”
엄마는 전복죽이 입에 맞는지 어느 땐 두 끼를 드셨다. 동생은 시장 볼 때 전복과 소고기, 돼지고기, 온갖 과일을 떨어질 새 없이 사다 날랐다. 비록 힘은 들어도 이런 것을 드실 수 있는 엄마가 있어 우리 남매에게는 행복이었다.
여름이 되자 엄마는 콩국수를 즐겨 먹었다. 간편하게 콩국수 만드는 법을 알고 있어 오히려 내겐 편했다. 두부와 두유, 땅콩, 잣만 있으면 콩국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한겨울엔 엄마의 식성에 문제가 생겼다. 땅이 꽁꽁 얼어 있는데 엄마의 머릿속은 봄이었다.
“우리 화성 농장 가자.”
“왜요? 우리 농사 안 짓는지 오래됐고,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한번 가보자고. 농장 논둑에 지금 머위가 쏙쏙 올라왔어. 밭 옆에 달래가 얼마나 나왔는지 몰라. 우리가 빨리 안 가면 지난번처럼 봉고차 타고 온 여편네들이 다 뜯어 간단 말이야.”
자연식품이 건강 테마로 떠오르면서 봉고차로 움직이는 대단위 나물 꾼들이 생겼다. 농장 대문에 쇠줄로 감아놓은 체인도 끊고 자물쇠를 뜯고 들어와 나물을 모두 캐 가는 것이 엄마 눈에 띄었다.
절터였던 곳이라 여러 가지 산나물이 곳곳에서 자라고 특히 머위나물은 지천으로 널렸다. 엄마는 그 머위 싹을 좋아해 쌈을 싸 먹고 무침까지 아주 잘 먹었다. 또 가을이면 머윗대를 꺾어 말리는 걸 즐겼다.
그것을 잊지 않은 엄마의 머릿속에는 그 봄이 와 있었다. 엄마의 상상 속에 머위 싹이 돋아 있는 것이다. 한겨울이라 백화점이고 마트고 머위 싹을 구할 수 없다며 동생이 엄마를 달래보라고 했다.
드디어 봄이 오고 머위 싹이 나오기 시작하자 엄마는 머위 쌈과 무침을 계속 먹었다. 봄이 되니 달래도 나와 달래장에 비벼 먹기도 하고 취나물 쌈도 먹으며 참 좋아하셨다. 그런데 봄나물 무침에 봄나물 국에 잘 먹다가 갑자기 변덕을 부렸다.
“나 추어탕 먹으러 가고 싶어. 네가 데리고 가던 골프장 있는 데 거기 어디야? 나 데리고 가.”
며칠을 다른 추어탕은 소용없다고 그곳만 간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동생과 셋이 고양에 있는 추어탕집에 갔다. 추어탕과 추어튀김을 시켰는데, 한술 뜨더니 맛없다고 수저를 놓아버렸다. 동생은 사업상 약속까지 미루며 힘들게 왔는데 안 드시겠다는 것이다.
엄마의 음식 변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 마늘 잔뜩 넣은 닭백숙 먹고 싶어.”
엄마의 명령에 오가피와 상황버섯, 토복령, 마늘을 잔뜩 넣고 백숙을 끓였다. 그런데 닭 냄새가 난다며 닭은 강아지한테나 주라고 했다. 나도 물에 빠진 닭은 안 먹기 때문에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살은 말려서 강아지 수제 간식으로 만들었다.
닭은 입에도 안 대던 엄마가 이번엔 매운 닭발을 해내라고 했다. 엄마의 닭발 요리는 내 친구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엄마가 매운 닭발을 만드는 날이면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엄마 등 너머로 배운 게 있어 재료만 있다면 자신 있었다.
동생이 선견지명이 있어 닭을 사 올 때 닭발을 사다 얼려 놓은 게 마침 있었다. 나는 시간을 끌지 않고 매운 닭발을 해드렸다. 언제 무엇을 먹겠다고 할지 몰라 우리 집 냉동고와 엄마 냉동고는 수산물 시장이자 정육점이었다.
엄마의 식성은 나날이 변덕스러워졌다. 하지만 엄마의 변덕스러움이 귀찮기보다 입맛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미각이나 입맛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었다.
우리 엄마처럼 이런 변덕의 치매가 온다면 돌볼 사람이 없는 가정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처럼 엄마만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고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면 어떨까. 앞으로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환자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보수가 주어진다면 치매 환자를 방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나가 하루 종일 집에 남겨진 치매 환자가 불이 나면 어찌 될지 끔찍하다.
그리고 혼자 배회하다 사고를 당하는 뉴스도 많이 접한다. 지켜도 사고가 일어나는 판국에 방치하면 어찌될지 모르겠다. 치매 환자 위치추적 팔찌나 목걸이가 나와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노령인구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치매 환자 보호자의 정신건강 문제도 커질 것이다. 노령화도 문제고 치매 환자가 더 많이 늘어나면 나라의 근간을 흔들 만큼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커질 것이다.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도 치매 환자가 될 수 있다고. 요즘은 나이와 상관없이 치매가 찾아온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과 나이에 상관없이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게 치매라는 말은 사실이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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