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엄마의 방』연재 6화
엄마의 재활용 쓰레기장 놀이터
산책하다가 보이는 잡초 뜯어오고
카페 앞 플라스틱 나무들 들고오고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가져와

병원에서 퇴원한 뒤 걷는 게 한결 수월해지자 엄마는 온갖 쓰레기를 집으로 들여왔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재활용 쓰레기장이 있어 그곳이 엄마의 놀이터가 됐다.

“엄마, 이 많은 박스를 왜 들고 왔어요?”

“다 쓸모가 있어.”

“왜 빈 병을 또 주워 와요? 아들 또 경찰 조사받게 하려고요? 사업 때문에 머리 아프고 바쁜 아들을 왜 힘들게 해요. 잊어버렸어요?”

“내가 왜 그런다니? 다신 안 주워 올게.”

이럴 때마다 나도 엄마도 힘들고 다시는 쓰레기를 집에 안 들이겠다고 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를 집으로 들여와 집 안 이곳저곳에 감췄다.

화도 내보고 윽박질러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쓰레기를 들여오고 나는 다시 가져다 버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주워 오는 쓰레기는 숨긴다고 숨기는데, 찾아내 보면 남이 쓰다 버린 플라스틱 용기, 냄비, 프라이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물건들을 이불장 이불 사이, 김치냉장고 등 숨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요양보호사가 사용하기도 해서 냄비와 프라이팬들을 새로 구입하다 보니 전에 쓰던 것을 버릴 만큼 그릇이나 새 주방용품이 많았다.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버린 재활용품 쓰레기를 엄마가 다시 들고 온다는 점이다. 쓸 수 있는 물건을 왜 버렸느냐는 것이 이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는데, 내가 누군지 아는 할머니가 화를 냈다.

“그 집 엄마는 왜 아직 피지도 않고 먹지도 못하는 싹을 잘라 가?”

“죄송합니다. 엄마가 치매라서 판단 능력이 없어요. 어떻게 보상을 해드려야 할까요?”

“싹은 다시 나겠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부하러 다니고 운동하러 바쁘게 다니던 할머니가 왜 그런 병에 걸려?”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쓰레기 할머니가 될 거냐고 엄마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그랬더니 큰 쓰레기는 주워 오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한강 산책을 나갈 때면 전혀 필요 없는 잡초를 뽑아 들고 왔다. 그럴 때는 신이 나서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개선장군 같았다. 자신에게 필요도 소용도 없는 물건을 획득하고 그토록 만족해하는 심리가 궁금했다. 쓰레기도 모자라 이젠 잡초들까지 집 안에 모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에 살며 외부에는 일 때문에 오가는 일상을 보낸 터라 엄마가 사는 주택 지역은 내게 무척 낯선 곳이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길을 헤맸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곳에서 뭐가 변화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이사 후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엄마만 바라보고 사는 생활이어서 마을 사정에 어두웠다. 그런데 아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건물 1층에 카페를 차렸는데, 자기 엄마가 자꾸 나무를 뽑아가는 모양이야.”

전화를 받고 이층으로 올라가 보니 식탁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나무를 쭉 늘어놓고 혼자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플라스틱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엄마, 이거 어디서 가져왔어요?”

“길가에 있었어. 왜?”

“이건 우리 집에 가져오면 쓰레기인데, 왜 가져 와요?”

“키울 거야. 왜 쓰레기라고 하니? 예쁘기만 한데······.”

“엄마, 또 아들 경찰에 불려 가게 하려고 그래요? 엄마가 가져온 건 우리 집에선 쓰레기지만, 카페 앞에 있는 건 인테리어예요. 지금 신고한다고 전화 왔어요. 엄마가 직접 가지고 가서 사죄드리고 돌려주고 와요.”

“누가 내가 가져갔다고 신고했다니?”

“CCTV에 다 찍혔대요. 요즘은 CCTV가 다 보고 있어요. 재활용쓰레기장에도 오늘 달았대요. 재활용 쓰레기는 우리 아파트 부녀회에서 팔아서 그걸로 대청소도 하고 했잖아요. 여기 재활용 쓰레기는 구청 거예요. 절대 가져오면 안 돼요.”

엄마는 이해가 됐는지 플라스틱 나무를 한 아름 안고 나갔다. 카페 주인은 지인에게 엄마의 병세를 듣고는 용서하고 돌려보냈다. 그렇게 한동안은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쓰레기가 아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자기네 엄마 요 앞 슈퍼에서 과일 한 개랑 아이스크림 들고 갔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무작정 들고 오더니 이젠 슈퍼에서까지 그런 모양이다. 값을 치르고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엄마, 나한테 준 아이스크림 어디서 가져왔어요?”

“요 앞 슈퍼에서······.”

“그런데 왜 그냥 가져와요? 돈이 없었어요? 돈 없으면 돈 가져가서 사야지요.”

“내가 돈 안 줬대? 나 돈 많은데······.”

엄마의 주머니에는 항상 몇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돈을 지불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엄마의 방』표지 /창해
『엄마의 방』표지 /창해

엄마의 냉장고에도 아이스크림은 물론 갖가지 과일과 열대과일까지 항상 채워져 있다. 과자도 종류별로 여러 가지 사다 놓았고, 동생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올 때면 엄마 입맛에 맞을 만한 과자를 골고루 사다 주어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했다. 치매 엄마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은 나를 항상 불안하게 했다.

지금은 쓰레기와 물건을 그냥 가져오는 것이 문제지만,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발걸음도 문제였다. 돌아다니다가 사고라도 날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또 이웃에게 어떤 폐를 끼칠지도 걱정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 집에 밖에서만 열 수 있는 자물쇠를 채우라고 했다. 하지만 차마 자식으로서 할 짓이 못됐다. 내가 엄마를 모시기로 작정한 이상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하게, 인간답게 살도록 배려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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