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엄마의 방> 연재 9화
밤새 주무시지 않고 눈 뜬 엄마
수면제 한 알도 전혀 소용없어
알 수 없는 분노에 칼 휘둘러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기도

사람들은 집에 있는 노모가 왜 팔이며 허리가 부러지느냐고 말한다. 그럼 내가 일부러 그랬단 말인가!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죄인이 됐다.

엄마는 밤새 주무시지 않고 뭘 드시거나 집 안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아침쯤 잠이 들어서 낮이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엄마의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뿐만 아니라 낮에는 비몽사몽 중에 정신도 못 차리고 기운 없어 했다.

엄마를 담당한 정지향 박사님이 저녁 치매를 잠재울 약과 수면제를 처방해 주었다. 한동안 수면제는 안 드리고 치매가 안정될 약만 드렸는데 약이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래잖아 집 안을 배회하고 만들지도 못하는 음식을 만드느라 잠을 못 잤다. 할 수 없이 수면제 반개를 드렸더니 하루 이틀은 잘 잤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다시 예전처럼 쿵쾅거리며 옷방에 들어가 가방을 쌌다. 집에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곱게 옷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하고는 노인대학 간다며 새벽에 집을 나서는 일이 수도 없었다. 어느 때는 엄마 고집을 못 꺾고 함께 나가 텅 빈 지하철역을 보여주며 지금은 새벽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수면제 한 알을 드시게 했다. 그랬더니 숙면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잠든 모습을 보고 내 집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또 새벽이었다. 내게 새벽은 공포였다.

‘그래. 한 알은 드셔야겠어.’

며칠간 수면제 한 알을 먹고 잠들어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수면제 없이 잠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는 한 알 반, 두 알을 먹어야 겨우 숙면을 취했다.

그렇게 우리 모녀가 수면제에 의지한 며칠은 마음 졸이는 일 없이 흘러갔다. 이런 날들만 이어진다면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예상을 뒤엎고 엄마는 현실의 강을 뛰어넘어 다시 과거와 혼돈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는데 얼마 안 돼서 쿵쾅거리고 돌아다녀서 올라가 보면,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이 방 저 방을 배회했다.

“엄마, 수면제를 드셨으면 주무셔야지 왜 이러세요?”

정신은 이미 현실에서 가출 중인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기 일쑤였다. 늦은 새벽 겨우 안아서 침대를 누이고 돌아오면 온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갔다. 그렇게 실랑이할 때면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나를 밀어붙여 머리에 혹이 생기기도 했다.

엄마는 꼭 귀신에 씐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빼 드는가 하면, 머리맡에 칼을 숨겨놓아 요양보호사가 기겁한 일도 있었다. 엄마의 알 수 없는 분노는 끝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구에게 소리 한 번 못 지르던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대며 비틀거렸다. 그럴 때마다 올라가 엄마가 나 어릴 적 불러주던 노래를 함께 불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둥근 달만 쳐다보니…….‘

노래를 여러 번 부르다 조용해서 보면 잠이 들어서 살금살금 문을 닫고 내려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자장가처럼 못 부르는 내 노래가 이어졌다.

“넌 그 노래밖에 생각 안 나니? 내가 그때 부른 노래는 네 할머니 시집살이가 힘들어서 부르던 노래야. 부르지 마.”

“그런데 넌 네 할미를 똑 닮았어.”

“나 아빠 닮았어. 사람들도 날 보면 아빠 생각난다고 말했어. 이미 돌아가신 분 불러내서 따질 일도 아니잖아.”

“누가 얼굴 닮았다니? 성질머리를 쏙 빼닮았지.”

엄마가 가지고 있던 할머니에 대한 분노, 바람피운 아버지 때문에 속 썩인 분노, 서러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밤새워 들어주고 맞장구치며 엄마를 달랬다.

“엄마 그럼 다른 노래로 바꾸자.”

나는 엄마가 조용조용 들려줬던 노래를 기억해 내 불렀다. 잠들 때까지 몇 번이고.

“엄마가 섬 그늘에…….”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엄마의 마음이 풀어질 때면 잠이 오는지 눈을 감은 채 졸린 음성으로 말했다.

“어서 내려가 자. 너도 자야 살지. 불쌍한 것.”

“내가 왜 불쌍해? 엄마.”

“꿈에 이 서방이 왔더라. 요즘도 연락 안 하지? 독한 녀석이야. 생과부로 만들고 베트남에 살림 차린 건 아닌지 몰라.”

“집에 갔을 때 여자 흔적은 없었어. 나한텐 아들이 옆에 있는데 살림 차리면 또 어때. 그 사람도 즐겁게 살아야지. 엄마, 난 죽어도 이혼 같은 건 안 해. 이혼 절차도 복잡하고 유산은 내가 받아야지. 내 아들이 떡 버티고 있는데, 난 자유롭고 좋아. 내가 이 서방 따라가 살았으면 엄마랑 이렇게 못 있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생각하지 마셔.”

“그래야지.”

“엄마, 그런데 왜 엊그제 새벽에 작은아들 온다고 골목 나가보라고 했어요?”

“온다고 했어. 전화 왔다니까? 저 골목에서 날 불렀어.”

새벽에 호출하더니 외국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오니까 마중 좀 나가보라고 했다. 아마도 보고 싶어서 꿈을 꾼 모양인데 현실이라고 우겼다. 아들이 보고 싶어 그러나 싶어 둘째와 영상통화를 하게 해드렸다.

“너 왜 온다고 하고 안 왔어? 내가 골목 들어서는 것을 봤는데…….”

“엄마, 여기 일이 바빠서 못 갔어요.”

“일은 잘되고? 종업원들 속 안 썩여? 건강하고 공장만 잘 돌아가면 됐어.”

엄마는 둘째 아들, 막내아들과 연달아 영상통화를 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스스로 수면제를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내려가 자라고 했다.

나도 심신이 지쳐 수면제 한 알에 깊이 잠들었다가 화장실 가려고 눈을 뜨니 위층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뛰어 올라가 보니 엄마가 문턱에 허리가 걸린 채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사실 얼마 전 다친 팔의 깁스도 풀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부러진 팔을 또 다친 줄 알았는데, 이번엔 일어나 앉지도 못할 만큼 허리가 아파서 못 움직인다고 했다.

날이 밝자마자 목동 이대병원으로 옮겨 여러 검사와 촬영 끝에 허리가 부러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치료 후 깁스를 해야 했다. 허리에 깁스를 하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짜증과 어리광이 늘어갔다.

그리고 답답한지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깁스를 풀어버렸다. 일반적인 깁스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어마 몸에 맞춤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목욕 때마다 풀고 다시 채우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이다.

표지 /창해
표지 /창해

엄마는 방법을 터득한 뒤 자주 풀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아프다고 앉지도 않으려 하고, 목욕하는 것도 싫다고 해서 요양보호사가 어르고 달래 겨우 해결했다. 내가 만만한지 나한테는 화만 내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금만 아프면 요양보호사를 앞세워 한의원, 정형외과를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정형외과에서 대여해 준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손자 등에 업혀 가더니 조금씩 걸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 한동안 누워만 있고 운동도 안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집 안에서 운동시키려 해보았지만 절대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허리가 부러지면서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쿵쾅거리는 소리만 나면 또 어디 다칠까 봐 달려 올라가야 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누군가가 입에 넣어줘야 먹고, 아프지 않은 오른손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밤낮없이 새벽에도 사라지던 엄마에게 남은 것은 짜증과 식사 거부였다. 또 뭐든 싫다고 했다. 집 안은 항상 우울했다. 언제 웃어 보았는지 생각도 안 났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 <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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