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엄마의 방> 연재 12화
식사·반찬 투정 점점 심해지고
애완견 모리조차 질투하는 엄마
어느덧 모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져
자식들보다 효녀 노릇 한 모리

기저귀를 입고 음식을 입에 넣어주어야 하고 몸도 닦아줘야 하는 엄마. 엄마는 나이 먹은 아기였다. 엄마의 숟가락은 이제 손잡이가 노란 유치원생용 작은 숟가락이다.

“왜 밥을 가득 떠? 절반만 줘야지.”

“엄마, 이 숟가락 유치원 애들이 쓰는 건데 이 정도도 입이 안 열려요?”

“그래, 조금씩만 줘. 넌 날 왜 먹여 죽이려고 하냐?”

반찬도 고루 드렸지만 거부하는 반찬이 많았다. 조금만 질기거나 식감이 맘에 안 들면 바닥에 바로 뱉었다.

“엄마, 뱉고 싶으면 여기 펴 놓은 휴지에다 해요.”

“귀찮아. 네가 치워.”

“엄마, 이 반찬 한 번만 더 드세요.”

“저리 치워, 싫어. 내가 말한 것만 줘.”

“그럼 엄마 영양 부족 돼요.”

“안 죽어. 안 먹어.”

엄마와의 식사 시간은 정말 어려웠다.

“계란 냄새 싫어. 두부 냄새도 싫고. 물김치 줘.”

“다른 반찬 먹으면 물김치를 한 숟가락씩 드릴게요.”

“나 마실 거야.”

“물김치는 물도 음료수도 아니에요. 자꾸 이러시면 물김치 안 담글 거예요.”

“나쁜 년! 나 그만 먹을래.”

엄마와의 식사 시간은 티격태격하거나 화가 나서 침대로 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눕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식사를 들고 가서 달래고 얼러 한두 숟갈이라도 먹어주길 애원했다.

엄마는 점점 더 아기처럼 투정을 부렸다. 게다가 아직 아기인 내 강아지 모리와도 다투고 시샘했다. 하루는 모리의 해바라기 머리핀을 달라고 했는데, 모리가 자기 거라고 안 주려고 해서 머리핀을 사다 드렸다.

“엄마,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면 더 예쁜 거 사드릴게요.”

“나 떡 먹고 싶어.”

완전 동문서답이어서 바보들의 대화 같았다. 누가 보면 코미디 같았을 것이다. 말이 떨어지면 가장 빠른 걸음으로 떡을 사 와야 했다. 엄마가 떡을 맛있게 먹자 모리도 그 떡을 먹고 싶어 했다. 엄마는 과자 빼앗기길 싫어하는 아기처럼 모리를 뿌리쳤다. 침대에 가까이 오면 발로 밀어냈다.

하지만 모리는 엄마의 외면을 무시하고 끝내 떡 하나를 몰래 입에 물더니 계단을 뛰어 내려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에 들러붙는 떡을 먹으려 애썼다. 하지만 절반도 못 먹고 포기했다. 어느 때는 엄마가 드시던 사탕을 몰래 물고 와 계단에서 아작아작 씹기도 했다.

모리는 할머니와 놀아주기도 하고 할머니의 심기를 살폈다. 영리한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는 20년을 키우다 세상을 떠난 토리를 모리와 착각했다.

“토리야! 언제 이렇게 눈이 까매졌어?”

먼저 세상을 떠난 토리는 생의 마지막에 백내장이 심했고, 엄마는 그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엄마, 토리는 하늘나라 갔잖아요. 얘는 모리예요.”

“그렇구나. 참 영리한 녀석이었지.”

토리는 내가 해외든 어디든 출장을 가면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 10여 년 전인가 해외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무척 다급했다.

“토리가 식음도 전폐하고 산책도 안 나가. 동물병원 가서 진정제를 주사했는데도 마찬가지고. 닭을 삶아줘도 안 먹고 간식도 안 먹어. 네가 빨리 와.”

엄마는 무척 초조해했다. 그런데 며칠 후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고기도 간식도 잘 먹고 산책도 나가자고 해. 다 죽어가서 내가 먹던 홍삼을 몇 번 먹였더니 팔팔해졌어.”

그 뒤 토리는 매일 홍삼 먹는 아이가 됐다. 새로운 아기 모리도 어려서부터 홍삼을 조금씩 먹였다. 엄마가 발견한 홍삼의 효능은 나중에 홍삼 사료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알게 됐다.

모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할머니 집 계단을 오르내렸다. 할머니와 놀아주고 할머니 간식도 탐나서였다. 어느 때는 할머니가 귀찮아해도 옷깃을 끌고 옥상 정원에 가서 놀기도 했다. 모리는 어찌 된 아이인지 부추와 상추를 한입씩 뜯어 먹으며 할머니를 즐겁게 했다.

“모리가 상추와 부추를 자꾸 먹더라. 그런데 토마토는 안 먹어.”

엄마는 모리와 잡초도 뽑고 상추 간식도 뜯어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모리가 이층에 올라가지 않으면 엄마가 큰 소리로 모리를 부른다. 그러면 모리는 대답이라도 하듯 엄마에게 달려갔다. 모리와 엄마가 어울리는 것을 보면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 같았다. 서로의 마음을 읽는 듯 보였다.

엄마는 평소에 고상한 색을 좋아했는데, 이젠 아이들처럼 화사하고 예쁜 옷을 입으려고 했다. 치매가 오기 전이었다면 흉측하게 이런 것을 어떻게 입느냐고 했을 것이다.

아들이 해외 여행길에 내 원피스와 할머니의 원피스를 두 벌씩 사 왔다. 그런데 엄마는 깊게 파이고 꽃무늬가 있는 옷을 싫어해서 짧고 깊게 파인 꽃무늬 원피스를 내가 입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 옷과 바꾸자고 했다.

“색깔도 시원해 보이고 네 거가 더 예쁘니까 나 줘.”

결국 엄마에게 내 옷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옷을 바꿔주지 않고 내가 입고 다니면 못 참을 것을 아니까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 엄마는 본래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지만 건강을 위해 좀 줄이려 해도 틈만 나면 면 요리, 부침개를 만들라고 했다. 아이들처럼 먹고 싶은 것을 참지 못했다. 참을성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시사철 언제나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 김과 물김치였다. 한 번에 물김치를 세 통씩 담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모리야. 할머니 물김치 만들자.”

모리는 할머니의 물김치를 담그는 날엔 언제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채를 썰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할머니 드신 야채를 먼저 가져다주고 자기도 하나 먹었다. 그리고 국물을 다 만들 때까지 기다려 맛을 보았다. 맛이 없으면 한 번 입에 대고 말았다. 간이 다 되어 맛을 보라고 하면 작은 종지를 깨끗이 핥았다. 이제 됐다는 신호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맛을 보는데, 간도 잘 맞고 엄마도 좋아했다.

엄마 물김치 기미상궁이 된 모리와 엄마는 더 급속히 가까워졌다. 엄마와 내가 모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모리는 엄마에게 보조를 맞추었다. 자기가 좀 빠른 것 같으면 서서 기다려 줬다. 어쩌면 영리한 모리에게 엄마 산책을 맡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야! 할머니 한강까지 산책시킬 수 있지? 엄마 좀 도와줘.”

첫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와 모리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모리는 평소처럼 앞장서서 할머니를 리드하다가도 조금 걸음이 느려지면 한참을 서서 기다려 줬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쉬던 벤치에 먼저 올라가 할머니가 앉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하는지 벤치에서 내려와 할머니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모리는 할머니가 집에 갈 준비가 되었는지 살피다가 앞장서서 리드했다. 한창 활동이 왕성한 시기인데 참고 기다리는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한강 굴다리를 나오면 삼거리가 있는데, 엄마는 무작정 직진하려고 하자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엄마를 끌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모리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도 좋아했다. 절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뒤 엄마의 산책 담당은 강아지 모리가 맡았다. 모리도 아기인데, 아기가 된 엄마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표지 /창해
표지 /창해

사람들은 이런 모리를 기특해했다. 칭찬 듣기를 좋아하는 모리는 주위의 칭찬에 무척 신이 나 있었다. 엄마에게는 멀리 있는 자식들보다 모리가 효녀였다. 그렇게 친해지자 엄마는 자신이 아끼는 대추야자도 내주고 과일이나 사탕도 내주었다.

엄마는 완전히 아기가 됐다. 매일 몇 번씩 씻겨도 엄마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비누로 먼저 씻기고 향이 진한 보디샴푸로 다시 씻겨야 했다. 물론 침대 커버와 이불은 수시로 빨아 햇볕에 바짝 말렸다. 화장실은 화장실용 락스로 닦고 식초를 분무해야 냄새가 사라졌다.

엄마가 아기로 변하는 동안 내가 강하다고 믿었던 정신력도 탈탈 털렸다. 엄마의 짜증과 어리광은 점점 심해졌다. 특히 날씨가 흐린 날에는 상태가 극에 달했다. 치매와 날씨가 무슨 상관관계인지 궁금하다.

이제 엄마와 외출하거나 공공장소, 식당에 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마음에 안 들면 아무 데나 뱉어버렸다. 꼭 말 안 듣는 아기 같았다. 식당에 가기 전에 엄마에게 아무 데나 뱉고 그러면 안 된다고 계속 말했지만 말로만 알았다고 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엄마는 식당에 가면 아무리 맛집이어도 맛이 없다고 투덜댔다. 집에서 하던 행동을 그대로 했다. 가고 싶다는 음식점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는 맛있는 것도 없고, 맛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도 없고 기본적인 것도 안 됐다. 밥을 먹다가도 앉은 자리에서 소변을 보고 대변도 봤다. 정상이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물로 범벅된 몸을 씻기려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엄마는 기저귀도 안 뗀 아기와 같았다. 치매의 무서움을 눈으로 보면서 나는 두려웠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 <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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