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후추를 얻는 자, 세계를 얻는다”
콜럼버스가 후추를 구하기 위해
인도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중국 거쳐 한국에 "식중독 특효약"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나에게 마지막 해외 여행지였던 스페인에서 핑크 솔트와 후추를 사 왔었다. 스페인에서 소고기 와규와 하몽을 만드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직접 사서 숙소에서 저녁 식사로 구워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샀던 소금과 후추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해외 여행지에서 그 지역 향신료나 식재료를 사 먹어 보는 것도 그 나라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식재료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편이었던 스페인에서 후추 한 통에 1000원도 안 되는 돈을 지급하고 샀는데 이 후추를 몇 년째 먹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이 후추 한 통이 과거에는 금보다 비싼 향신료였고 후추를 얻기 위해 대 항해를 떠나게 되었다는 후추의 역사가 놀랍기만 했다.

1000년 이상 금보다 비싼 향신료 후추 /픽사베이
1000년 이상 금보다 비싼 향신료 후추 /픽사베이

기원전 4세기경 페르시아를 통해 지중해로 전해진 후추는 고대 그리스인 사이에선 향신료보다는 희귀한 의약품으로 주목받다가 고대 로마인에 의해 양념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 시대 흑사병 인구가 줄어들자 곡식이 남고 더 많은 가축을 키우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오히려 향상되어 육식의 소비도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냉장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었고 고기를 상온에 보관하게 되면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런 고기 누린내를 없애주는 식재료가 바로 인도에서 건너온 후추였다.

1000년 이상 금보다 비싼 향신료

인도에서 이슬람 제국을 거쳐 유럽까지 오느라 원래도 비쌌던 후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원산지보다 100배나 비싸게 팔리게 되었다. 이렇게 비싼 후추는 일반인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었고 왕실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12~13세기 십자군 전쟁이 터지자 후추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더 오르게 되었다. 15세기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들어서면서 후추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면서 후추 가격은 금과 다름없이 비싼 식재료였다.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는 후추는 후추 한 줌이 신발 장인의 일 년 치 인건비에 해당하였고 노예 몇 명을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유럽 왕실에서는 후추를 금 항아리에 보관하였고 고기를 아예 후추로 둘러싸서 요리하거나 후추를 섞은 와인을 마시면서 귀족들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후추를 얻는 자, 세계를 얻는다.”

후추를 얻는 자, 세계를 얻는다라는 말이 탄생할 정도로 후추는 유럽 전역에서 혈안이 되어 찾는 향신료였고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바닷길을 찾기 위해 탐험대를 무려 100차례 넘게 대양으로 보냈다가 결국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고 순식간에 후추를 대량으로 구하게 되면서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아라비아 상인은 후추를 가격을 지불하고 샀지만 포르투갈은 무력함대를 동원해서 후추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후추를 구하기 위해 인도를 찾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

후추를 찾기 위한 콜럼버스의 항해 /https://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1564
후추를 찾기 위한 콜럼버스의 항해 /https://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1564

포르투갈의 성공에 자극받은 스페인도 본격적으로 후추 찾기에 나섰고 콜럼버스를 인도로 보냈다. 인도까지 항해를 시도할 만한 함대도 선원도 없었던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조앙 2세를 비롯한 각국의 왕들과 접촉해 지원을 요청했지만 허술한 계획과 과도한 요구로 가는 곳마다 번번이 쫓겨났다.

그러다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3척의 함선과 120명의 죄수로 구성된 선원을 지원받게 되어 후추의 성지 인도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 당시 인구가 백만 명밖에 되지 않았던 포르투갈이 더 이상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자 세계를 반반씩 제패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틈에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를 만들어 후추 중계 무역에 합류하면서 후추 가격은 점차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후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에서도 후추를 재배하는 데 성공하게 되면서 서민들도 후추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후추가 이렇게 흔해져 더 이상 후추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지 않자 귀족들에게서 후추의 인기는 사그라들었고 이후 후추는 동양으로 건너와 귀한 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중국 건너 한국으로 전해진 식중독 특효약 후추

중국에 전해진 후추도 초기에는 후추 한 알과 진주 한 알의 가격이 비슷할 정도로 비싼 향신료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송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침마다 후추를 먹으면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고 식중독을 예방해 주는 특효약으로 민간에 알려졌다.

고기 누린내 제거를 위한 후추 /픽사베이
고기 누린내 제거를 위한 후추 /픽사베이

후추 한 통을 다 먹는데 3년이 넘게 걸린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그다지 후추를 많이 먹는 것 같지는 않다. 이 후추 한 알이 금보다 귀한 시절이 있었다니....

인간의 미식을 향한 욕망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원주민을 학살하고 후추를 약탈하고 그 비싼 후추로 권력과 부를 과시했던 귀족들의 삶을 생각하니 이렇게 흔하게 집안 찬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후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스페인에서 사 온 후추라고 생각하니 엄청 귀한 식재료 같다.

오늘은 고기를 구워서 금보다 귀했던 후추를 팍팍 뿌려서 먹어야겠다마치 그 시대 귀족의 호화스러웠던 향신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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