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무척추동물 중 지능이 가장 높아 붙여진 이름 '文魚'
알 부화 전 암수 모두 사망···고아 문어 위한 동물복지법
서양에선 '바다의 괴물', '악마의 물고기'로 기피 식재료
제주도 출장으로 일주일 정도 제주도에 머물게 되었다. 매번 바다도 못 보고 일만 하고 돌아오던 출장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과 친정어머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육류를 좋아하는 남자팀과 해산물을 좋아하는 여자팀이 매번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의견이 나뉘어 어려움이 있었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육류를, 한 끼는 해산물을 먹기로 합의하고 제주도 미식 탐방에 나섰다.
제주도도 섬이다 보니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많았다. 갈칫국, 옥돔구이, 보말성게미역국, 전복죽, 해물탕 등등 매일 다양한 해산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귀포시 올레 시장에서 옥돔과 고사리를 잔뜩 선물로 사서 택배로 부치고 주전부리를 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너무나 특이한 메뉴를 발견했다.
“마농문어통닭”
마농은 제주도의 방언으로 마늘이라는 뜻이고 문어통닭은 뭘까? 호기심이 발동하여 안 먹어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농문어통닭을 사서 펼쳐보니 건조된 문어 다리와 닭고기를 마늘과 함께 튀겨낸 음식이었다. 처음에 문어 다리가 잘 보이지 않아 별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좀 실망했지만 감자칩인 줄 알고 먹어본 문어 다리가 너무나 고소하고 맛있었다. 치킨을 좋아하는 남자팀과 해물을 좋아하는 여자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메뉴여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무척추동물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어류라 하여 지어진 이름 “문어”

문어(文魚)는 지식인의 상징인 먹물을 몸에 품고 있고 뛰어난 장기, 단기 기억력과 카메라처럼 정확한 눈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8개의 다리가 모두 따로 움직일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무척추동물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어류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선 제사상이나 혼례상 등의 잔칫상이나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릴 만큼 귀한 식자재였다. 특히 경상도 해안지역에서는 결혼, 생일잔치뿐 아니라 제사상에도 문어는 필수 음식이며 문어가 나오지 않으면 잔칫상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돼지고기같이 썰어 볶으면 그 맛이 깨끗하고 담담하며, 그 알은 머리·배·보혈에 귀한 약이므로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다. 쇠고기 먹고 체한 데는 문어 대가리를 고아 먹으면 낫는다.'
오늘날 문어는 요리의 재료로 많이 이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살짝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말려서 먹는다. 말린 문어는 봉황이나 용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서 잔칫상에 활용하기도 한다.
문어는 부드러운 맛도 좋을 뿐 아니라 해독작용과 피로 해소에 탁월한 타우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타우린은 삼투압을 조절해주고,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추어줄 뿐 아니라 시력 회복과 심혈관 계통에 좋은 영양소로 고혈압이나 심장병 환자들의 회복에 도움을 준다.
알 부화 전 수컷과 암컷 모두 사망하는 고아 신세 문어를 위한 동물복지법

문어의 수명은 보통 3~5년으로 수컷은 짝짓기한 후 수개월 내에 죽고 암컷은 알을 낳은 후 6개월 동안 먹이를 먹지 않고 알을 지키다가 알이 부화할 때쯤 지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암컷은 10만 개 정도의 알을 낳지만 결국 단 1% 정도만 살아남아서 성인 문어가 된다고 한다.
결국, 문어는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접점이 없으므로 모든 문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홀로서야 한다. 이렇듯 홀로서기 위해 높은 지능을 지닌 탓인지 해외에서 문어 양식을 반대하는 동물보호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국에서도 최근 동물복지법을 문어, 오징어, 바닷가재 등을 포함해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스위스와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도 문어를 포함한 연체동물과 갑각류, 어류에 대한 고통 금지를 위해 무척추동물을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 요리하는 방식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산 채로 문어를 삶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노르웨이에서는 해산물 요리를 하기 전에 미리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마취하거나 미리 전기충격을 가해 기절시키거나 죽인 후에 조리하는 방식을 보편화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바다의 괴물”, “악마의 물고기”라 하여 피하던 식재료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문어를 고급 식재료로 인식하고 있지만 북유럽과 게르만 민족들은 문어를 오래전부터 바다 괴물, 악마의 물고기(devilfish)라고 피하던 식재료였다.
서양의『오디세이아』에서 12개의 다리와 6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스킬라(Skylla)가 바다의 괴물로 존재했는데 문어가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으며 19세기 초에 박물학자 P. 도니 몬폴이 문어가 배를 바다에 집어 던지는 괴물이라고 생각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흉측한 생물이라는 무서운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유고는『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1866)이라는 작품에서 문어가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유대교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중 동물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문어는 금기시되는 음식이었다.
문어가 교미기에 생식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컷의 촉완이 암컷의 외투강에 삽입되는 모습을 보고 문어가 이성을 밝히는 호색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으며 물컹한 문어의 살은 최음작용을 가진다고 믿었다. 또한 근접해 오는 물고기를 유인해서 포식하기 때문에 유혹자나 배반자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인어공주』의 메인 빌런(악당)인 아틀란티카의 변방에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바다의 마녀도 뚱뚱한 체격에 푸른빛이 도는 피부, 은발, 짙은 화장을 하고 있으며 문어의 하반신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피하던 식재료였지만 이탈리아 해안가에서는 갑오징어나 문어 요리가 발달하였고 지중해식 음식이 건강 음식으로 알려지고 담백하고 고소한 문어의 맛이 알려지면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문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어의 쫄깃한 식감을 즐기기 위해 살짝 데치는 조리법을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대부분 문어를 부드럽게 조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문어를 부드럽게 조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문어를 활용한 세계 요리는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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