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의 일상다반사]
뭇매 맞는 '인어공주' 실사화
추억을 훼손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한 외모 지상주의일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길래 이리 난리들일까? 최근 아니 개봉 한참 전부터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영화 인어공주가 장안의 화제다. 안타깝게도 꿈꿔왔던 동화 속 아름다운 이야기 대신 그를 둘러싼 각종 이슈가 영화 자체를 뛰어넘고 있다.
디즈니가 34년 만에 실사화한 영화 인어공주이니만큼 대중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나 같은 중장년들에게 있어 인어공주는 화면에 펼쳐지는 이야기 대신 도톰한 빨간 양장의 계몽사 소년 소녀 명작동화집에서 시작했다.

안타깝고 슬펐던 나의 아름다운 인어공주
무려 50여 권으로 구성된 동화전집은 어린 나에게 있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주인공들은 예외 없이 눈처럼 하얀 피부에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공주님들이었다. 백설 공주 엄지공주, 다소 연령대는 있지만 눈의 여왕 등등 아무튼 아름다움은 기본으로 장착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안데르센!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꿈을 꾸게 해준 고마운 외국인 아저씨였다. 그 중에도 빨간 구두와 인어공주는 두고두고 가슴 아팠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빨간 구두와 슬프도록 안타까웠던 인어공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두 다리에 선이 닿아 있었다.
상상 속의 바다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인간 세상을 원하던 인어공주의 슬픈 이야기는 마침내 34년 전 디즈니에 의해 해피엔딩 스토리로 대변신한다. 못내 안타까웠던 나의 오랜 감정도 더불어 행복해졌다. 그랬던 인어공주가··· 지금 뭇매를 맞고 있다. 반짝이는 비늘이 무참히 뜯길 만큼.
엄마! 다니엘은? 뉴진스 언니는?
주말 저녁 영화관은 언제나 그렇듯 즐겁게 북적였다. 대형백화점의 멀티플렉스답게 상영작과 개봉예정작들의 홍보가 치열하게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거대한 크기의 트랜스포머가 오가는 관객에게 손짓하기도 하고 마동석의 범죄도시는 내용과는 별개로 의외의 귀여운 미소를 포스터에 담아냈다.
어? 분명 인어공주를 보러 왔는데 눈에 띄는 홍보물이 없다. 대신 그야말로 공주처럼 어여쁜 뉴진스 다니엘의 영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 한국어 더빙판 주제가를 불렀다지?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영화 속 까만 피부의 인어공주는 세상의 혹평만큼 나쁘지 않았고 의외의 귀염성도 있었다. 물론 이 나이쯤 되고 보면 젊음은 무조건 예뻐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해도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니 섬세한 연기력은 모르지만 나름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으로서는 공주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의 연기는 꽤 괜찮았다.
다소 진부하고 신파적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OST는 신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내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머리 살인마로 깊숙이 자리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보여주는 남자 인어만으로도 최고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 인어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별점 테러에 논란을 거듭하는 이유는 뭘까? 소문처럼 아이들은 무섭다며 뛰쳐나가고 그다지 예쁘지 않은 흑인 공주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는 게 사실일까?
주말의 영화관, 그것도 전체관람가 영화인 덕에 유독 가족 관람객이 많았다. 앞자리엔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귀여운 여자아이가 지루한 듯 몸을 이리저리 뒤틀더니 '엄마! 뉴진스 언니는 언제 나와?'라고 말한다. 순간 가벼운 웃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분명 영화는 한참이나 지난 후고 이미 공주와 왕자의 뱃놀이 데이트가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뉴진스 공주를 찾고 있다니···. 저 어린 관객은 분명 눈처럼 하얀 피부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공주님을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기특하게 끝까지 관람을 포기하지는 않은 걸 보면 아주 재미없지는 않았나 보다.
PC 주의와 블랙워싱 논란에 불을 붙인 인어공주
영화 인어공주 덕에 다시 소환된 'PC 주의와 블랙워싱 논란이 한창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 주의(Politically correct)는 인종이나 언어 또는 종교·성(性)에 있어 편견이 끼어들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별, 인종에 대한 불합리한 캐스팅이나 주제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블랙워싱, 화이트워싱이 있다. 예전에 원작을 무시하고 무조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화이트워싱이었다면 반대로 블랙워싱은 흑인 배우를 내세우는 추세를 다소 비꼬는 표현이다.
문제는 원작을 무시했다는 거다. 소중한 추억 속의 캐릭터가 낯선 사람으로 바뀌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굳이 pc 주의니, 인종차별이니 거창한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흑인으로 처음 인어공주를 연기했던 할리 베일리의 천상의 목소리와 꾸미는 데 15만 달러가 들고 14시간을 소요해 분장했다는 빨강 머리까지도 호응이 신통치 않은 걸 보면 관객들의 불만이 큰 건 사실인 듯하다. 이쯤 되면 디즈니도 두 손 두 발 들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디즈니의 빅픽쳐일까?
왕자와의 사랑엔 성공했으나 관객의 사랑은?
동화 속 인어공주에게 마녀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왕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넌 죽을 거라고. 결국 물거품으로 사라져 몇십 년 동안 내겐 슬프고 안타까운 안데르센의 동화로 남아있던 인어공주다.
관객몰이가 신통치 않다는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여전히 논란을 거듭하며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닷세계와 인간세계가 '위 아더 월드'를 노래하고 부모·자식 간의 눈물겨운 화합을 보여줬지만, 원작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아직은 무리수였던 듯싶다. 왕자님의 사랑을 쟁취하는 데엔 성공했으나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는 못한 듯하다.
그러나저러나 호사가들에게 올해는 심심치 않을 것 같다. 넷플릭스가 흑인 클레오파트라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아! 라틴계 백설 공주도 기다리고 있으니, 올여름은 더 뜨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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