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역사 영화에서 사라지고
유럽 문화로 둔갑한 인어공주
'노예 해방' 없이 원작 그대로
"알라딘처럼 재해석 시각 필요"

영화 제작사 월트 디즈니의 작품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두고서 인종차별 논란이 뜨겁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영화 배경이나 소품이 백인 문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14일 여성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실사화 영화 '인어공주'가 개봉 21일을 맞았지만 한국 누적 관객 수 63만명에 그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CNN 등 일부 미국 언론은 한국과 중국의 인종차별 때문에 인어공주의 흥행이 저조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인종차별 논란은 인어공주 주인공 '아리엘' 배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면서 불거졌다. 원작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의 아리엘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주장과 인어가 백인이란 설정은 없었다는 주장이 서로 부딪혔다.
다만 영화계에선 흑인 아리엘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모양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인종을 넘어선 문화 다양성을 작품 의도로 내세우려고 했다면 좀 더 과감하게 스토리 서사의 변화가 필요했지만 이번 실사화 영화에서는 그 과감함이 보이지 않았다"며 "전반적으로 34년 전의 애니메이션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정 평론가는 "영화의 흥행을 얘기할 때는 상업적인 부분을 논해야 하는데 대중들이 돈을 주고서 볼 만한 가치를 했는지에 대해선 아쉬웠다"며 "다만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려는 시도 자체엔 분명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인어공주는 주인공을 흑인으로 내세웠지만 배경 요소는 백인 문화에 그쳤다. 기존에 없던 '세이렌(Sirens)' 설정이 대표적이다. 세이렌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괴물로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엔 인어를 세이렌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독교 성경과 더불어 서구 문명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아킬레스 건 등 현대에도 사용되는 용어의 어원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인어 전설은 전 세계적으로 흔해 굳이 서구 문명의 신화를 차용할 필요가 없었다. 남미에서는 인어를 아자유(Ajayu) 혹은 시리누(Sirinu)라고 부르며 아프리카에선 마미 와타(Mami Wata)와 놈모(Nommo) 등의 전설이 존재한다. 특히 마미 와타는 세계 최초의 반인반어 신이란 주장도 나온다.
영화에서 아리엘의 이름을 유추하는 데 사용된 별 '에리스(Eris)'도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다. 에리스 자체가 그리스어로 불화의 의미를 지녔으며 불화와 분쟁의 여신 이름이기도 하다.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과학계의 논쟁을 거치면서 해당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항해시대 흑인 노예 배경에
흑인 여왕 통치···귀족은 백인

일각에선 영화 인어공주의 배경이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아리엘이 흑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콜럼버스를 언급하는 대사 등을 통해 대략 15세기에서 17세기로 가늠할 수 있다.
버진 아일랜드는 덴마크가 식민지로 삼았으며 이후 영국과 미국 자치령에 속했다. 또한 당시는 대항해시대로 흑인의 '노예무역'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수도 샬럿아말리에 이름을 덴마크 왕비에서 따올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노예무역의 역사를 잊었다. 흑인 여왕이 군주로 자리하고 있으며 흑인 공주가 백인 왕자와 결혼한다. 그러면서 인종별로 계급은 명확히 나누고 있다. 영화 속 국민과 시종은 모두 흑인이며 여왕을 제외한 귀족 대부분이 백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흑인 인어공주는 영화 내내 코르셋을 착용한 드레스를 입는 모습을 보인다. 몸을 의미하는 고대 프랑스어로부터 유래한 코르셋은 16세기 여성의 몸매 보정 속옷으로 등장했다. 서구 귀족 여성의 전유물인 코르셋에 대해 아리엘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만 이에 저항하진 않는 모습을 보인다.
공주는 코르셋을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일례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공주들은 각기 각색의 복색을 갖췄다. 대표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배경인 '뮬란'은 전통의상 한푸를 입고 등장한다. 외에도 '포카혼타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복장을 하였으며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신화의 '마우이'족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최소 15만 달러(한화로 약 2억원)를 들였다는 드레드 스타일조차 오로지 흑인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더럽다는 단어 'Dreadful'에서 차용된 드레드는 흑인들이 노예선을 탈 때 씻지 못해 방치된 머리를 보고서 붙여졌다. 이후 가수 밥 말리가 흑인 인권운동 때 유행시키면서 드레드는 흑인 해방과 인종 차별의 상징이 됐다.
흑인 인권을 강조할 요소가 많으면서도 영화에서 아리엘은 코로셋을 자발적으로 벗어내지도 드레드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현대적 시각에 맞춘 각색 없이 원작 애니메이션 내용을 충실히 따라 내용이 아쉽단 반응이 나온 이유다.
야사 기반 각색한 넷플릭스
현대적 女 통치자 배출키도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도 18세기 영국에 흑인 귀족을 등장시켜 역사 오류 논란이 일어났다. 시리즈 1편에서 공작이 흑인으로 등장했으며 역사적 인물인 소피아 샬럿 왕비도 흑인 배우가 연기했다.
다만 외전을 통해 흑인 귀족 설정을 설명하면서 논란은 잠잠해졌다. 실제 샬럿 왕비는 백인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아프리카계의 흑인 조상을 뒀다는 야사를 차용해 드라마에 반영한 것이다. 또 아프리카 족장들이 자녀를 런던으로 유학 보낸 역사를 가져와 흑인 귀족 설정을 뒷받침했다.
앞서 디즈니가 실사화한 영화 '알라딘'은 시대에 맞게 각색을 잘했다는 호평과 함께 흥행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한국에서만 약 1081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했다.
알라딘은 수동적이었던 자스민에 여성 해방 서사를 추가했다. 자스민은 금은보화로 자기를 사겠다는 알라딘과 여자는 술탄(통치자)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 그리고 복종하라는 자파에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저항한다. 대표곡 'Speechless'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 이미지를 보여준 자스민은 술탄이 된다. 데릴사위 알라딘이 술탄의 자리에 오른 원작 결말과 다르게 끝났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노예 해방이라는 각색을 통해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충분히 구성할 수 있었으면서 원작과 똑같은 전개를 이어갔다. 더불어 공포영화 식 연출과 조잡한 CG 기술 등으로 한국 관객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