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의 일상다반사]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PC방도 동참했다
게임 즐기는 공간에서 맛집으로 발돋움 중

PC방 맛집이라는 유행을 끌어낸 선두 주자, 삼겹살과 다코야키 /그림=홍미옥, 갤럭시탭S6
PC방 맛집이라는 유행을 끌어낸 선두 주자, 삼겹살과 다코야키 /그림=홍미옥, 갤럭시탭S6

분명 어울리지 않는 냄새다. 말끔한 건물의 엘리베이터로 풍겨오는 고기 냄새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맛있는 냄새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PC방이었다. 세상에~~ 얼핏 말로만 들었던 소위 PC방 맛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오다리와 컵라면의 시절은 가고?

PC방이 처음 생겨 날 때도 이미 어른이었던 난 그곳을 드나들기엔 조금 쑥스러웠다. 당시, 그러니까 1990년대만 해도 겨우 프린터나 팩스기기를 이용하러 가는 정도였던 것이다.

실내는 어두웠고 아직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터라 담배 연기마저 음침하게 자욱했었다. 당연히 자주 드나들면 이상하고 뭔가 불량(?)스러운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그때도 호기심은 여전해서 중학생이던 조카 둘을 앞세우고 - 게임비를 내준다는 조건으로 - 드디어 입성하게 됐다. 게임이라곤 겨우 풍선이나 터뜨리는 실력이어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냥 포털 뉴스만 하염없이 클릭하곤 했다.

솔직히 PC방에선 무얼 먹는 것도 살짝 조심스러웠다. 행여 컵라면 국물이라도 키보드에 흘리는 날엔 복잡해질 것이었다. 안 그래도 힘들 알바생에게도 미안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호로록거리며 먹던 컵라면은 어찌나 먹음직스러웠던지···.

컵라면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간식거리를 들자면 '오다리'가 있다. 오징어 다리의 줄임말인데 어찌나 야박한지 길이가 아기들 손가락만 했다. 해서 숏다리라고도 불렸다. 말할 것도 없이 위생은 물론이요, 짠맛에 달큰한 단맛까지 과히 바람직한 먹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밥을 팔지 않는, 그러니까 음식점이 아닌 곳에서 먹는 음식은 그게 뭐가 됐든 맛있는 법이다. 그렇게 예전의 PC방은 오다리와 컵라면만으로도 진수성찬이었던 셈이다.

PC방이야 고깃집이야?

이 정도가 PC방에서는 기본 메뉴다. /사진 =홍미옥
이 정도가 PC방에서는 기본 메뉴다. /사진 =홍미옥

코로나는 온 세상을 들쑤시고 힘들게 하다가 겨우 힘이 약해진 모양이다. 아직도 쓸데없이 여기저기 출몰하고는 있지만 코로나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달라졌으니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졌다.

PC방에서의 취식 금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려운 시간을 지나 지금은 소위 맛집 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포털에 PC방 맛집이 검색되는 재밌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음식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 것이며 설령 맛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착각이다. 그것도 큰 착각! 일단 메뉴부터 호화찬란하다.

오므라이스, 탕수육, 볶음밥은 애교 수준이다. 삼겹살에 초밥, 생선회까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란다. 배달 음식까지 합세하니 뷔페는 저리 가라 하게 생겼지 뭔가!

이제 컵라면이나 오다리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다. 이 정도면 PC방이 아니라 음식점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쑥스럽지만 나도 그 맛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성인인 아들을 앞세우고 당당히 들어갔다. 예전 같은 음침한 분위기도 탁한 담배 연기도 없는 그곳은 발랄한 청춘들의 놀이터 같은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쉽지만 커피를 홀짝이며 주위를 보았다. 정말로 구운 삼겹살과 싱싱한 야채가 테이블로 배달되고 있었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 어찌 게임을 할 것인지, 행여 키보드에 고기 기름이라도 튀면 어떡하지? 하며 만고에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날은 마침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고기 한 쌈에 환호성 한번! 상추 한 쌈에 골 들어가고! 재밌는 광경은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싫지 않은 꼬릿한 냄새에 뒤돌아보니 문어를 올린 다코야키가 뜨끈뜨끈한 채로 서빙 중이다. 식욕을 돋우는 냄새다. 이 정도면 맛집 인정!

트렌드를 따라잡기에는 버거운 세대이지만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앞으로는 얼마나 더 재밌는 변신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해도 해도 너무(?)한 PC방 맛집의 먹거리 앞에서 나의 다이어트는 이미 물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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