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60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연극을 향한 마음
동문합동공연 연습장을 가다

토요일 오후, 학교에 가봐야겠다는 말에 남편은 갑작스럽다는 듯 물었다. “학교는 왜?” “동문합동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데 오늘 시파티라고 해서. 오랜만에 학교 안에 들어가 보고도 싶고, 봄이잖아.” 너무 늦지 않게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냉큼 문을 나섰다.
정말 오랜만에 동아리(그때는 서클이라고 했다)행사 참석이다. ‘50대에 대학동아리 모임을 가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창시절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냈던 그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특별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어설픈 바램으로 연극영화과에 지망하겠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꺼냈었다. 요즘은 다르겠지만 1980년대에 그런 딸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부모는 흔치 않았다. 당연히 크게 꾸지람을 들었고, 여차저차 부모님 뜻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반대를 뛰어 넘을 만큼의 열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연극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학생회관 4층에 있는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1학년 3월부터 시작한 연극반 생활은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4학년이 되기 전까지 꼬박 3년동안 이어졌다. 공강시간이면 당연한 듯 동아리방으로 향했고, 매 학기 새로운 작품을 연습하며 무대에 오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작품을 올리려면 꼬박 두세 달 연습을 해야했다.
오디션을 보고, 대본 리딩을 하고, 신체훈련과 블로킹(Blocking, 무대 위 동선)을 익히고, 무대를 만들고, 조명을 달고, 포스터를 붙이고, 관객을 맞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연에 참가하는 20~30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은 준비한 서사를 전하기 위해 연출가를 중심으로 의지하며 협업한다.
물론 의견이 달라 부딪칠 때도 있지만 결국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공연은 올려지고, 무대 위 무대 뒤 배우와 스태프는 관객의 박수와 평가를 받는다. 열정, 근성, 신의, 협동이 필요한 시간들이다. 작품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선후배와 함께 결과를 만들어 내왔던 동아리에서의 경험이 졸업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마다 머뭇거리지 않고 주변인들을 독려하며 도전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는 5년마다 졸업한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함께 동문합동공연을 제작한다. 코로나로 미뤄졌던 공연이 5월에 올라가고 뜻이 있는 선후배들이 한 달 전부터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짬을 내 찾아가 응원을 전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주말에 시파티(공연 시작을 맞아 배우와 스태프, 선후배 등이 다 함께 모여 고사를 지내는 행사)를 한다는 연락을 받아 학교로 나서게 된 것이다.
봄볕이 가득한 교정을 겸사겸사 걸어보고 싶기도 했다. 학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목련과 벚꽃은 지고 있지만 진분홍 진달래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오래된 건물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 덩굴에도 새 잎이 돋아 있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과 정비된 길 사이로 30여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 오가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스무 살 즈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강의실로 연습실로 뛰어다니고 논쟁도 하고 사랑도 했던 시절, 그때만큼 나 자신에게 집중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은 그 곳에 있었던 그때의 시간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그래서 백발이 성성한 동문들이 학교를 찾아 후배들과 공연을 올리는 지 모르겠다.

긴 역사를 가진 동아리인지라 동문합동공연을 할 때면 1950년대 학번부터 현재의 학번까지 참여를 한다. 50년대 학번이면 팔순이 넘는 나이의 선배들이다. 마침 시파티가 열렸던 그 날에도 56학번으로 동아리 내에서 존경받는 배우 오현경 선배가 참석하셨다. ‘연희극회(연세극예술연구회)’는 저에게 화합입니다’라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는 노장 선배에게 박수로 감사를 표하는 재학생들, 60여 년의 나이차를 뛰어넘는 공감의 자리였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처음 참여했던 공연 역시 동문합동공연이었다. 손턴 와일더 작 <우리 읍내>를 고 오태석 선배의 연출로 올렸는데 1989년 당시 공연에도 오현경 선배가 해설자로 출연해 극의 중심을 잡아 주셨다.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때는 연극이 그냥 좋아서 서클활동을 했다면, 요즘 만나는 후배들은 그건 물론이고 졸업 후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진 친구들이 많더라.” 이번 공연에 참가하는 87학번 선배의 이야기처럼,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다르기에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보폭과 방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내가 만났던 최고참 동문 선배들만큼 지금 나 역시 재학생 후배들과 나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 앉아 작품과 공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나에게도 후배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