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채권 가치 하락, 채권 보유한 은행의 미실현손실 초래
자산가치 폭락하는 민스키 모멘트 가능성 예의 주시해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DC 신화=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DC 신화=연합뉴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앞뒤로 두 개의 시급한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형국은 마치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거대한 적을 포위했다가 오히려 외부에서 몰려드는 더 많은 또 다른 적에게 포위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카이사르는 앞뒤로 도넛 모양의 성책을 쌓고 안팎의 적과 동시에 싸워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고 현재 프랑스 땅인 갈리아를 로마의 통치 아래 두는 데 성공했다. 앞뒤로 인플레이션이라는 적과 은행위기라는 또 다른 적을 상대하는 연준도 과연 이 두 가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지난 3월 12일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 예금인출 사태에 직면하자 연준은 미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예금보험 한도를 넘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비부보예금도 지원하는 한편, 특별기구를 설치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그간 감소해 오던 연준의 자산규모가 1주일 만에 3000억 달러 증가했다. 다시 말하면, 은행위기로 인해 연준의 양적긴축(QT)이 중단되고 돈을 찍어 유동성을 늘리는 양적완화(QE)가 재개됐다는 의미다. 그 효과로 뱅크런 위기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연준에게는 은행위기보다 더 본원적인 적이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6%로 다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장기간 고착화할 수 있는 서비스 부문의 물가는 여전히 견조한 상승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만약 여기서 성급하게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쳐들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감속)이 6개월간 진행된 후 금리를 내리자 물가가 다시 급격하게 상승해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보였던 1970년대 초의 현상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연준을 휘감고 있다.

여기에서 지금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완전히 꺾어 놓지 못하면 상황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재현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위기라는 전면의 적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5bp 금리 인상을 선택했다. 

보다 인상적인 것은 금년 내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선언이었다. 평소 오락가락하던 그의 메시지였지만 이날만은 ‘물가를 잡지 않고는 경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결연한 어조를 선보였다. 또한 양적긴축도 지속할 것을 시사했다. 

즉, 연준은 시스템 위기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이라는 적과의 전선에서 후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은행위기가 점점 더 심각한 상태로 치달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최근 미국 학자들의 한 연구 결과는 작년 3월 이후 진행된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은행들이 심각한 보유자산의 미실현손실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미국 은행 자산의 42%가 부동산 관련 대출이고 24%가 국채, 부동산담보채권(MBS) 및 기타 자산담보채권(ABS)인데 금리 인상으로 이들 자산의 시장가치가 크게 하락해 미실현손실이 누적됐다고 본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채권 관련 펀드의 수익률을 추종하는 ETF를 통해 추산한 결과, 최근 금리인상으로 인해 MBS 채권의 가치는 평균 10% 하락했다고 한다. 또한, 10년 또는 20년 사이에 만기가 되는 국채의 가치는 25%가 하락했고 만기 20년이 넘는 국채의 경우 시장가치가 30%가량 하락했다고 한다.

이러한 채권 가치의 하락은 고스란히 이 채권들을 보유한 은행의 미실현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근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발생한 미 은행의 자산 미실현손실의 중간치는 장부가 대비 9%라고 한다. 또한, 4800여 개 미국 전체 은행 가운데 5%가 20% 이상의 미실현손실을 떠안고 있다고 한다. 미실현손실의 규모는 거의 2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거대은행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s)의 자산 미실현손실은 장부가 대비 4.6%에 불과한 반면, SVB와 시그니처은행이 속했던 기타 대형은행의 경우 미실현손실이 10%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 퍼스트리퍼블릭을 비롯한 대형 지역은행이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도 흥미로운 사실은 SVB와 비교해 미실현손실률이 더 높은 은행은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으며 그보다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도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자산 미실현손실 외에 은행의 예금 인출 사태인 뱅크런을 일으키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얘기다. 연구는 그 요인을 높은 FDIC 비부보예금 비율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은행 전체로 보면 예금자보호의 대상이 되는 부보예금의 비율이 전체 자산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비부보예금(9조 달러)과 기타 부채를 합하여도 전체 자산의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SVB의 경우 비부보예금이 전체 자산의 78%, 전체 예금의 92.5%를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높았다. 요컨대 비부보예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상태에서 금리 인상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 예금자들이 인출 러시를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한편, 연구는 FDIC가 개입해 은행이 부도나는 최저선을 부보예금 커버비율로 설정하고 있다. 전체자산 가치에서 비부보와 부보예금을 차감한 금액을 전체 부보예금으로 나눈 것을 부보예금 커버비율이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최소한 플러스가 되어야 FDIC가 개입하지 않게 된다.

만약 이 비율이 마이너스가 되면 자산을 다 팔아도 부보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돼 추가 예금손실을 우려한 FDIC가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는 이 기준을 바탕으로 은행이 자산을 매각해도 시장 가치에는 영향이 없다는 가정 아래, 만약 50%의 비부보예금이 이탈하면 186개의 은행이 파산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또한, 30%의 비부보예금이 이탈할 경우에는 106개 은행이 파산하고 단지 10%의 비부보예금만 이탈해도 66개 은행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즉, 연준이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예금자가 일부 불안을 느낄 경우에도 수십 개의 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연구가 은행의 자산매도에도 불구하고 시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SVB처럼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자산 헐값 매각(fire sale)에 나서 자산가치가 하락하면 은행의 파산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은행이 유동성 고갈로 파이어 세일에 나서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민스키 모멘트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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