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남성들이여, 사랑받는 삼식이가 됩시다
여성들이여, 남편들로부터 넛지효과를

친구와 통화를 끝낸 아내가 포복절도 한다.

은퇴 후 삼식이를, 그것도 삼시 세끼 갓 지은 밥만을 요구하던 남편이 가출(?)했단다. 시골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는 농막 하나 놓고, 주중에는 그곳에서 생활하게 돼, 그 친구의 표현대로라면 `삼식이’로부터 해방됐다는 것이었다. 내 아내의 웃음을 더욱 달군 것은 곁들인 친구의 얘기였다. “바보, 내가 매일 뜨거운 밥 해 준 줄 여태 알아. 사실은 옆 단골 식당에서 한 그릇씩 사 왔었거든.(웃음)”

직업적 이유로 중년의 여성들을 인솔해 해외 여행을 많이 했었다. 여행을 신나게 즐기던 여성들이 귀국 이틀 전쯤 되면 시무룩한 표정들이다. 이유를 물으니 집에 있는 삼식이 때문이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 준 음식이라는 말과 함께.

제주에 내려와 올레길 옆에 체험공방을 차리고 보니 수 많은 올레꾼들이 들렀다 간다. 그중 여성 올레꾼들의 대부분은 인생 후반부 삼식이(남편)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생각 좀 가다듬으러 제주에 왔다는 얘기를 한다.

세 사례의 공통분모는 은퇴 후 집에 있는 삼식이에 있다.

직장생활 때 한 달에 하루 직원의 날을 만들어 요리를 해 주던 필자 /사진=한익종
직장생활 때 한 달에 하루 직원의 날을 만들어 요리를 해 주던 필자 /사진=한익종

그런데 이런저런 주변 얘기를 들어 삼식이의 폐해를 잘 아는 내가 왜 삼식이 예찬론을 펼칠까? 왜 나는 이 세상의 중년 남성들에게 삼식이가 되라고 역설할까?

버림받는 삼식이가 아니라 사랑받는 삼식이가 되라는 이유에서다.

내 취미 중 하나가 요리다. 계란도 나누어 담으라는 외국 속담과 같이 취미도 나누어 즐기라고 강변하는 나의 여러 취미 중 하나가 요리다.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 한다면 살기 위해 먹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맛을 즐기기 위해 사는 시대다. 즐기기 위해 사는 삶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전 과정을 보면 오감을 총 동원하는 종합 예술과도 같으니 요리보다 좋은 취미도 없을 듯 싶다.

요리 재료의 준비에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마치 예술 작품의 소재를 택하는 것과도 같다. 요리가 완성된 후의 맛과 모양에 대한 추리력도 필요하다. 요리 중에는 고도의 주의력과 예견력, 세련미, 그리고 음식을 즐기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맛은 즐기는 사람에 대한 배려의 영역이다. 물론 레시피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음식의 경우엔 손맛이라는 게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식사 후에는 감상과 정리 정돈 그리고 다음 요리에 대한 사색이(?) 필요하다. 이러니 요리 만한 종합예술이 어디 또 있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하루 세 끼를 꼬박 집에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한다. 내가 얘기하는 삼식이는 비단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 행태를 뜻하는 게 아니다. 비난의 대상이 된 삼식이는 그의 사고방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에 따른 결과의 '삼식이'이다. 삼식이가 갖는 의미를 잘 인식하고, 삼식이가 주는 악영향에 대해 깊이 통찰하자는 얘기다.

배우자가 그렇게 싫어하고, 30년 이상 결혼 생활 유지 후 헤어지는 이혼율이 전체 이혼율 중 15.6%(2020년 기준)이고, 그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남편의 삼식이 행태라는 것을 눈여겨보자. 황혼 이혼이 점점 늘어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인 삼식이 생활의 내면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 부족과 남성 우월주의, 나아가서는 왜곡된 보상심리(내가 그동안 밥 벌어 먹였잖아)가 있다는 것을 남성들은 간과하며 또한 애써 외면한다.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넌센스다.

단골로 찾는 중식당의 메뉴판에 그려진 요리하는 모습.이제는 재료의 구입도 레시피도 손 쉽게 알 수 있으니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도 요리가 쉽다. /사진=한익종
단골로 찾는 중식당의 메뉴판에 그려진 요리하는 모습.이제는 재료의 구입도 레시피도 손 쉽게 알 수 있으니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도 요리가 쉽다. /사진=한익종

삼식이라고 다 지탄받고 버려야 할 행태만은 아니다. 사랑받는 삼식이도 있다. 사랑받는 삼식이가 되자. 어떤 때는 자기 혼자도 요리해 먹고, 어떤 때는 배우자와 함께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배우자를 위해 음식도 마련해 보라. 이러는 데도 배우자가 삼식이를 싫어한다고?

대부분의 독자가 여성인 이곳에서 왜 남편 얘기를 하냐고 따지는 독자가 있겠다. 넛지 효과를 활용해 보라고 하는 얘기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가 주창한 넛지 효과는 부지불식중 나타나는 효과다. 이 글을 남편에게 슬쩍 보도록 해 보자는 취지다. “여보 이 기사 좀 봐. 허무맹랑한 것 같은데 재미 있어”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다면 어쩌겠는가.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아니다. 이 글을 읽고도 과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지 않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남편은 없을 것이다.

넛지를 통해 이글을 읽은 남편 분. “사랑받는 삼식이가 되는 방법 간단합니다. 인생 후반부는 나 혼자도, 배우자와 함께도, 배우자를 위해서도 요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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