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소위 '몰빵 취미'는 위험
계란도 나눠 담으라고
취미는 넓고 다양하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도는, 걷기에 딱 좋은 가을이 왔다. 학교 가까운 아이가 지각 잘하고, 산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 1년에 한 번 산에 갈까 말까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 비유가 꼭 내게 해당한다는 생각에, 미뤄 두었던 한라산 등산을 위해 여장을 준비하는데 가을 기운 만큼이나 서늘한 소식이 답지한다.

산을 너무 좋아해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번, 아니 없는 시간도 만들어 산에 오른다는 친구가 새벽 등산길에 쓰러졌다는 소식이다. 한때 전국 유명산은 리스트 만들어 가며 도장 찍듯 돌고, 일본 100대 명산 도전하기, 해외 유명 산악 방문하기 등을 버킷리스트로 삼았던 내가 그에게 권했던 말이 떠올라 끝까지 말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친구야, 당신 말이야, 만일 산에 못 오르는 상황이 생기면 그 후엔 어쩌려고 취미생활이 오로지 등산뿐이냐?"

 

산에 오르면 늘상 볼 수 있는 각종 리본들. 환경오염과 불쾌감까지 주는 리본 달기는 전형적인 자기과시와 경쟁심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한익종
산에 오르면 늘상 볼 수 있는 각종 리본들. 환경오염과 불쾌감까지 주는 리본 달기는 전형적인 자기과시와 경쟁심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한익종

Only one의 위험성과 과유불급은 인생사 모든 상황에 해당한다. 권력도, 재산도, 사랑도, 관심도. 토사구팽 당하는 권력이 그렇고, 도박이 그렇고, 스토킹이 그렇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이를 일찍이 깨달아서인지 나에겐 딱히 '이거다'라는 취미가 없다. 아니 모든 일이 취미생활이 됐다. 

느지막하게 골프에 빠져 주말 골퍼라는 타이틀을 넘어 매일 골퍼(평일에는 실내 골프연습장 출입)로 등극한 지인에게 들려준 말이 있다. “찬물 끼얹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이 들어 골프는 좀 그래요. 건강학적으로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골프 예찬론자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오래전 골프 클럽을 놓은 나로서는 이런 조언을 하는 데 여러 이유가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얘기해 주면서 골프 하나에만 너무 빠지지 말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라고 권한 적이 있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권하는 나의 지론에는 계란도 나누어 담으라는 투자의 기본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소위 `몰빵’이라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해서이다. 또 하나, `행복한 삶이란 조화로운 삶이다'라고 정의하는 내 가치관이 녹아든 권유이기도 하다. 

계란도 나눠 담듯 취미생활의 다양화는 무엇을 못 하게 됐을 때 오는 상실감과 허무함의 엄습을 피하는 요령 있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바로 경쟁적 태도가 야기하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만을 주야장천 노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경쟁우위를 생각하게 된다. 그건 취미가 아니라 투쟁이다. 즐기기가 아니라 고충이다.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 되는 것과 같이···. 즐기지 않으려고 하는 취미생활이 무슨 소용일까?

와인과 골프를 취미로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만 쌓여 못 살겠다고 한탄하던 어느 회사 CEO가 생각난다. 내가 들려준 얘기는 “그걸 즐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자랑하고, 남보다 잘난 체하려고 하니 그런 거죠”였다. 너무 솔직한 직언이라 그때의 싸늘한 분위기에서 헤어나려고 애쓴 기억까지. 

허풍선이와 징징이가 되고 싶어서 취미생활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취미를 경쟁적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허풍선이와 징징이 둘 중 하나가 된다. 무조건 남하고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자신이 최고라고 뻐기는 허풍선이 아니면,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징징대는 징징이 말이다. 취미생활의 본질과는 멀어도 너무 먼 세상이다.

취미생활에서 허풍선이와 징징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산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굳이 한 가지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삶은 어떤가? 한쪽으로 경도된 삶은, 균형 잃은 삶은 행·불행을 떠나 위태롭기까지 하다.

 

스페인 여행 중 이동하는 버스 유리창에 쓰여진 `비상구' 표식. 취미생활도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탈출하는 비상구로서의 역할이 돼야 한다. /사진=한익종
스페인 여행 중 이동하는 버스 유리창에 쓰여진 `비상구' 표식. 취미생활도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탈출하는 비상구로서의 역할이 돼야 한다. /사진=한익종

“자기 삶 외의 삶을 두루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삶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칸 국제학교를 세운 폴 발레리의 말이다. 패러디해 보자. “여러가지 취미를 갖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의 취미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어떤가? 그럴 듯하지 않는가. 

방바닥에 드러누우면 천장에서 당구공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취미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 보자. 삶이 그만큼 다양하고 조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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