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주택 시장 가격 거품에 직면한 한국도 후폭풍 예의 주시해야

아날로그 영화가 주는 영상미가 더 돋보이는 것은 사실 그대로의 장면을 정성을 다해 필름에 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신 전투기의 움직임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시도한 ‘탑건 매버릭’은 웅장한 굉음과 긴장감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며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역사상 아날로그 영화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1959년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하며 오스카를 휩쓸었던 ‘벤허’일 것이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장대한 로마 해군의 전투와 전설적인 원형 경기장에서의 고대 전차 경주 장면을 재현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다 벤허’이지만 그와 비슷한 연배의 ‘예수’가 또한 출연한다. 유대인 최고의 귀족 가문 출신의 벤허는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이 자신의 집 근처를 말 타고 행진하다 여동생이 실수로 떨어뜨린 기와 조각에 다쳐 끝내 목숨을 잃으면서 죄수 신분으로 전락한다.
벤허는 결국 로마 해군의 갤리선에 노예로 끌려가는 운명에 처한다. 이 배의 갑판 아래에서 두 발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 죽을 때까지 힘을 다해 노를 저어야 하는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린다. 대부분 노예가 고된 노동에 힘을 잃고 쓰러져가지만 벤허는 두 눈에 불을 켠 채 굳건히 버틴다.
사실 벤허를 견디게 한 힘은 그의 복수심이었다. 어린 시절 절친이자 로마 장교가 되어 돌아온 메살라가 무고한 그의 가족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폐문에 이르게 한 데 대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그를 버티게 했다. 그러나 바닥까지 떨어진 벤허의 운명은 또 한 번 큰 반전을 맞는다.
대규모 해전에서 로마군 사령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하면서 그의 양자로 입적된다. 한순간 노예의 운명에서 로마제국 최상층 귀족으로 신분이 격상된다. 그 힘을 바탕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벤허는 전차 경주에서 우승하고, 경기 중 메살라를 죽음으로 내몰면서 복수한다.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벤허의 마음에는 허망함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환자 계곡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여동생을 안고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잃는다. 그 순간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린다. 예수의 붉은 피가 빗물을 따라 땅을 적신다. 여동생은 그 빗물에 얼굴이 씻기면서 병이 낫는다.
이처럼 벤허의 인생 역정은 그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로마 귀족이 되고 빌라도 총독 앞에서 전차 경주를 벌이고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거저 주는 것을 묵묵히 받을 뿐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급등과 급락의 사이클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시장 상황에 순응할 뿐 시장 전체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를 미국의 주택시장이 연출하고 있다.
미국에서 주택시장은 토지, 건물과 함께 대표적으로 유동성이 낮은 시장이었다. 주택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아도 몇 달이 걸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주택시장이 가진 특유의 매매제도 때문이기도 했다. 집을 매물로 내놓으려면 대체로 먼저 부동산 중개업소를 접촉한다.
리얼터(realtor)라 불리는 중개업자는 매물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기 전에 주인에게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고 사진을 찍는다. 고장난 곳이 있으면 수리하게 하고 심지어는 싱크대를 교체하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앞마당에 매물을 뜻하는 ‘For Sale’ 간판을 붙인다.
그러면 그 집에 관심 있는 매수자는 리얼터를 통해 방문 약속을 잡는다. 주말 하루를 비워 잠재적 매수자 모두를 초청하는 오픈 하우스를 열기도 한다. 어떤 매수자가 그 집이 마음에 들면 매수 의향을 내비치고 집값을 흥정한다. 통상 매매가는 매도자가 희망한 가격(offer price)에서 한참 낮은 선에서 결정된다. 집값이 결정되었다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몇 주의 예비기간을 두고 매수자가 집 안팎을 점검하고 부실한 부분을 교체하거나 수리하도록 매도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 기간에 매수자가 수틀리면 언제든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시기에 매수자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계약을 최종 종료(closing)한다.

이러한 모습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 미국 주택시장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바로 매수자 우위의 시장(buyer’s market)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최근까지 미국 주택시장은 철저한 매도자 우위의 시장(seller’s market)으로 바뀌었다.
집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마자 누가 먼저 채갈세라 매수자끼리 경쟁적으로 매수 가격(bidding price)을 올렸다. 매물로 나온 지 한 주일도 되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다. 예전에는 이곳저곳 흔하게 볼 수 있었던 ‘For Sale’ 간판이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매물이 희귀해지면서 집을 마련해야 하는 젊은 MZ세대의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새로 가정을 꾸리거나 직장 문제로 이사를 했는데 집을 찾지 못한 이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살 수 없을 것 같은 ‘FOMO (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혔다.
이런 영끌 매수로 집값이 평균적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급등했다. 팬데믹 기간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QE)로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과 주식, 가상화폐 시장에서의 높은 수익률도 집값 상승에 일조했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이 공급 부족과 실수요 증가라는 펀더멘털에 기초하고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기조가 강했다. 부동산 시장에는 버블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초고강도 긴축정책을 시행하면서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연준의 기준금리는 불과 4개월 만에 1.5%나 올랐다. 그러자 다른 채권 금리도 따라 올랐다.
무엇보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상승폭이 컸다. 작년 초 2.7%대에 머물던 평균 모기지 금리는 최근 6.3%에 근접했다.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던 2008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은 것이다. 최근 모기지 금리의 상승 속도는 1987년 이래 가장 빠른 것이다. 이로 인해 매월 상환해야 하는 모기지 원리금 규모도 평균적으로 2500 달러가 넘어서면서 전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모기지 상환 원리금이 월 백만원 이상 증가하자 집 매수를 포기하는 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4월 현재 신규 모기지 신청 건수는 전년 대비 5% 감소해 주택시장에서 매수 수요가 얼어붙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간접적으로 주택시장에서 수요 측 요인을 악화시키고 있다.
채권 금리인 수익률(yield)이 오르면 그 수익률로 미래 원리금을 할인한 금액인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채권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기지채권(MBS)은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securitization)한 것으로, 모기지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증권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모기지 대출도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실제 이를 반영해 최근 미국 최대의 모기지 대출업체인 ‘로켓모기지’가 2만 명이 넘는 전체 직원의 10%를 해고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모기지 대출업계에서 3위인 ‘론디포’도 마찬가지로 11%를 해고하기로 했고 미국 3위 은행인 ‘웰스파고’도 해고 행렬에 가담했다.
상황이 좋지 않기는 부동산 중개업계도 마찬가지다. 직원 수 6천 명의 온라인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은 인력의 8%를 줄이기로 했고, 5천 명에 가까운 직원을 거느린 ‘컴퍼스’도 10%를 해고하기로 했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인 ‘질로우’도 마찬가지다. 25%를 줄이기로 했다.
주택시장에 부는 찬 바람을 보여주는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주택 매도 가격의 하락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전체 매물 가운데 매도 가격을 하향시킨 건수가 매주 전체 매물의 5.6%에 달하고 있다. 한 달이면 20% 이상의 매물에서 매도 가격의 하향이 관찰된다는 얘기다. 또한, 집을 사기로 했다가 취소하는 건수도 최근 들어 많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 5월 기존 주택 매매는 541만 건에 그쳐 최근 2년간 최저치로 떨어졌다. 신규 주택 매매건수도 급감하고 있다. 공급 측에서의 신호도 좋지 않다. 최근 주택 완공 건수는 전년 대비 9%가량 증가했으나 시장 전망 악화를 반영해 신규 주택 착공은 5% 이상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주택시장에 버블이 없으니 괜찮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다른 물가도 오르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지수인 케이스-실러지수에 물가상승을 반영해 산정한 인플레이션 조정 주택가격지수로 보아도 집값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지수는 버블이 한창이던 2006년 전고점 195포인트를 넘어 최근에는 213포인트를 기록했다.
주택 가격은 대체로 주식 등 다른 자산 가격에 후행하는 경향이 있다. 거래 단위가 크고 유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는 주택시장의 조정이 내년 이후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러나 연준의 초고속, 초고강도 긴축이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 미국 못지않은 가격 거품에 직면한 우리나라도 후폭풍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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