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제도 개선으로 청년층 주택 구매 적극 지원해야

평생 부와 명예를 좇아 질주하던 사람도 노년에 접어들면 청춘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음을 깨닫는다. 이들은 진시황과 같이 권력을 동원해 불로초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백설공주의 계모인 마녀와 같이 미모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살인도 불사한다.
그러나 영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이 시사하는 바는 다르다. 이 영화에서 불의의 교통사고와 벼락에 의한 감전으로 노화가 멈춘 아델라인은 29세의 미모를 계속 유지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그녀가 유일한 혈육인 딸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딸인 플레밍은 영화에서 다섯 살 남짓의 어린아이에서 20대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리고 이제 노인이 되어 아델라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07세가 된 아델라인은 여전히 20대의 모습 그대로 딸의 딸같이 보이는 자신에게서 처연한 슬픔을 느낀다.
그녀도 정상적인 직장을 얻고 보통 사람과 같이 살아 보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모습을 눈치챈 사람들로 인해 일상은 반복해서 깨진다. 결국 연방수사국인 FBI 직원들이 자신을 끌고 가 조사하려는 지경까지 이르자 신분을 숨기고 10년마다 이름을 바꾼다.
아델라인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그런 그녀의 특성 때문에 한 남성과 사랑을 이루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젊고 잘생긴 엘리스가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고민하던 그녀는 마음을 열고 둘이서 그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사람을 만난다. 오래전 사랑했던 윌리엄이었다. 그는 이내 그녀가 청혼하려 했던 날 갑자기 떠나버린 아델라인임을 알아차린다. 윌리엄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가슴 깊숙이 간직했던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충격에 사로잡힌 아델라인은 서둘러 그 집을 떠난다. 운전 중 이미 깊어 버린 사랑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가 차를 돌리면서 사고가 난다. 전기를 통한 심장 충격으로 가까스로 깨어난 아델라인은 어느 날 자신에게서 흰머리 한 올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 나이를 먹을 수 있음을 알게 된 아델라인이 환희에 찬 미소를 지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나만 그대로일 때 곤경에 처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그런데 이제 아델라인이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면 나이를 먹지 않던 그 시절을 또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만약 우리가 나이를 먹을지 더 이상 먹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이를 먹지 않으면 낮은 소득을 받고 영원히 살아야 하지만 나이를 먹겠다고 선택하면 소득이 점점 늘어날 수도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인생에서 이 같은 질문은 답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가계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인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을 때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간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고정금리를 선택하면 5년에서 길게는 30년을 같은 수준의 금리에 묶이게 된다. 반면 변동금리는 시장의 실세 이자율을 반영해 주기적으로 오르고 내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국의 경우 전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mortgage)에서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이르지만, 한국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2%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두 나라 사이에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비중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변동금리가 결정되는 구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변동금리는 대체로 은행 CD금리나 리보(LIBOR) 등 단기금리에 일정한 가산금리를 적용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CD금리에 기반한 대출기준금리인 COFIX 또는 리보 이자율이 2.4%라 하자. 이제 신용위험 등을 감안한 가산금리가 3%라면, 변동금리는 5.4%가 된다. 고정금리는 이보다 약간 높은 5.7%라 하자.
그런데 중앙은행이 1년 내 기준금리를 1.5% 올린다고 하자. 그러면 기준금리 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는 단기금리도 거의 같은 수준으로 오르면서 1년 후 변동금리는 6.9% 내외로 상승할 것이다. 반면 고정금리로 대출받은 여신의 이자율은 5.7%에서 변동하지 않게 된다.
만약 3억원의 대출을 받았다면 연간 이자 비용이 450만원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는 변동금리로 대출받기를 꺼릴 것이다. 그런데 한은의 기준금리는 2012년 3.25%를 정점으로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작년에는 0.5%까지 내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고정금리로 돈을 빌린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2012년에 3억원을 변동금리로 빌린 사람이 연간 내야 할 이자금액은 960만원이나 줄었지만, 고정금리로 대출받은 사람이 내야 하는 이자금액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저금리 환경에다 변동금리에 비해 높은 고정금리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는 변동금리가 대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이 도입된 역사가 짧은 것도 변동금리 비중이 크게 높은 이유가 되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은 1930년대 초에 이미 시작되었다. 대공황으로 실업이 증가하면서 40%에 불과하던 주택 보유비율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당시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FDR)는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연방주택청(FHA)을 창설해 가격이 폭락한 집을 사들이고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했다.
뉴딜과 주거안정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즈벨트는 531개 선거구 가운데 소규모의 2개 주에서 8석만 잃는 대승을 거둔다. 이후 대통령들에게도 주거안정은 가장 중요한 어젠다 가운데 하나였다. 정부 지원은 특히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젊은 층과 저소득층, 퇴역군인과 농촌지역 거주자의 지원에 집중됐다.
예를 들어, 은행은 통상적으로 모기지 대출을 할 때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현금을 다운 페이먼트(down payment)로 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첫 주택을 구입하려는 청년 세대가 연방주택청(FHA)이 제공하는 대출을 받을 경우 집값의 3.5%에 해당하는 현금만 있으면 된다. 신용등급이 낮아도 되고 금리도 보다 유리하게 적용된다.
미국 보훈청(VA)과 농림부(USDA)가 퇴역군인과 농촌지역에 제공하는 모기지 대출은 조건이 더 유리하다. 이 같은 정책대출이 전체 모기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FHA와 VA 대출이 각각 10% 상당을 차지하고 USDA 대출도 3%가 넘는다.
또한, 모기지 대출이 시작된 이래 미국 경제가 겪은 금리의 큰 변동성도 고정금리를 선호하게 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4%에 미치지 못하던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ed funds rate)는 1990년대에는 5% 안팎을 오르내리지만 닷컴 버블 붕괴 후인 2003년에는 1%까지 하락했다. 주택 버블이 생기면서 5.25%까지 금리를 올리지만 금융위기가 오면서 금리를 인하해 2008년부터 몇 년간 0%대의 저금리가 고착되었다. 양적긴축으로 2019년 2.5% 가까이 오르지만 팬데믹으로 다시 0%대로 내려갔다.
이런 금리의 높은 변동성을 경험한 미국 가계는 일찍부터 모기지 시장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당연하게 여겼다. 장기 국채와 증권화를 통한 모기지담보채권(MBS) 시장의 발달도 고정금리 대출 시장의 확대에 기여했다. 정책금융의 발전도 이에 공헌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가 금리 상승에 따른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그중 주거 관련 금융부담 경감 방안을 보면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안심전환 대출을 40조원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MBS 시장을 키워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방향은 옳다. 그런데 실제 대출을 전환해주는 주체는 대부분 민간은행이다. 정부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에 1090억원 출자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안심전환 대출을 위한 상품 설계와 전산망 구축은 거의 금융권의 몫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주택구입 시 자금조달 수단이다. 금융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청년층이 집을 살 때 자기 자금 비중이 57%에 달한다고 한다. 전국 평균 집값이 5억원을 넘은 상황에서 그 절반 이상을 자기 돈으로 내야 한다면, 청년들은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와 진배없다.
결국 여전히 시급해 보이는 것은 단기적 미봉책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의 제도 정비이다. 자기 돈이 별로 없고 신용점수가 낮더라도 대출을 받아 내 집을 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당연히 민간은행이 앞장서 위험도 높은 대출을 시행할 수는 없다. 은행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택금융공사와 더불어 미국의 FHA 등이 담당하는 역할을 적극적이고 현실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새로운 정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가 자기 돈이 거의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세제 등 각종 혜택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받은 주택 매입자가 모기지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때는 모기지 대출을 시행한 기관이 그 집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즉, 거주자는 살고 있는 집의 열쇠를 넘겨주고 이사해 월세나 전세를 살면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그 거주자의 신용도가 하락하는 문제가 생긴다. 대출기관도 대출금액보다 집값이 하락하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 경우에는 모기지 원리금 디폴트의 원인을 따져 보아야 한다. 그것이 위험자산 투자 등 도덕적 해이에 의한 것이면 구제 대상이 되기가 어렵다.
향후에도 정부 지원으로 그런 행태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금융위기 등 예기치 못한 외부환경에 있었다면 정부가 채무조정에 나서 계속 그 집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체 생산성 향상에 보다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
관련기사
- [김성재 칼럼] 정치적 어젠다 매몰된 연준, 스태그플레이션 초래
- [김성재 칼럼] 커져만 가는 유로존 존립에 대한 의구심
- [김성재 칼럼] 미국, 러시아와의 겨울 에너지 전쟁 임박
- [김성재 칼럼] 연준의 긴축으로 앞당겨진 미국 주택시장 붕괴
- 미 연준 ‘자이언트스텝’ 전야‧‧‧금융당국 ‘빚 탕감책’ 논란
- [김성재 칼럼]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로 경기 침체 가속화 예상
- [김성재 칼럼] 주가는 바닥을 보았을까?···섣부른 증시 바닥 예단 금물
- [김성재 칼럼] 중간선거 겨냥 비축유 방출 바이든의 함정
- [김성재 칼럼] 미 금리 인상이 초래한 달러 강세···전 지구적 흐름
- 자영업자 7%이상 고금리 대출, 저금리 전환 지원‧‧‧30일부터 접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