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디파이(탈중앙화금융) 규제 서둘러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기념주화/로이터=연합뉴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기념주화/로이터=연합뉴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죽기 직전 상태의 할아버지 얼굴로 태어난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젊어져 가고 종국에는 아기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벤자민과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데이지는 서로 사랑하며 시공을 함께하지만 그들의 신체 나이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며 변화한다. 데이지는 아이에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리고 할머니가 된다. 벤자민은 노인에서 멋진 청년으로 그리고 어린 아기가 된다.

어린 시절 데이지는 흉물스러운 노안을 지닌 벤자민을 거부하지만, 세상을 떠날 즈음 아기가 된 벤자민은 이제는 할머니가 된 데이지의 품 안에서 눈을 감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두 사람 모두 젊음의 절정에서 청춘의 향기를 뽐내며 사랑에 빠지는 그 접점(crossover)의 순간이다. 

어둑한 땅거미가 내리고 데이지는 아름다운 해변에서 인상적인 발레를 연출한다. 벤자민은 그런 데이지의 모습에 매혹된다. 그리고 벤자민은 그녀를 떠나 여러 지방을 여행하지만 영화는 언제나 그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에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다.

뉴올리언즈는 미국에서도 가장 이국적이면서 한 번은 가볼 만한 도시다. 미시시피강의 하구에 건설된 이 도시를 폰차트레인 호수가 감싸고 있다. 호수변에 자리한 카페 드 몽의 원조 프렌치 커피에 하얀 도넛을 한입 물고 거리를 거닐면서 재즈를 들으면 아득한 낭만이 사로잡는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면 달빛이 영롱한 수면에 배들이 여유롭게 움직이면서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 베리핀의 모험’에서 본 장면이 연상된다. 이 도시에는 프랑스풍의 오랜 성당과 교회 건물도 즐비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벤자민의 생명을 구하고 키워준 흑인 여인 퀸시가 그를 천막교회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남부의 전형적인 흑인 교회답게 내부에는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런데 목사는 처음에 일곱 살에 노안을 가진 벤자민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생각해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친다. 그리고는 이내 휠체어에 앉은 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 다른 안수기도를 한다.

누구든 이런 낯선 분위기의 교회에서 예배에 참여한다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빨리 가기만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 신자들은 역동적으로 춤을 추며 찬송가를 부르고 벤자민의 기립을 다 같이 기도한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결국 벤자민은 일어나 걷는다.

같은 공간에서 어떤 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불편함을 감수할 때 다른 이들은 천국이 재림한 듯 기뻐 노래한다. 그것은 우리가 낯선 환경에 노출됐을 때면 언제나 겪는 모순된 체험이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그러한 차이는 아마도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될 것이다.

교회에 오랜 기간 출석한 교인들은 목사도 잘 알고 다른 신자도 잘 안다. 그래서 예배 시간이면 목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다른 교인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익숙하다. 서로의 성격이나 생활환경도 잘 알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낯선 인종, 낯선 문화의 교회에 출석한 이에게는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목사나 신자가 언제 돌변해서 나를 향해 불편한 시선을 던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예배 시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고 가급적이면 그런 낯선 교회에는 출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종교가 새로운 신자를 받으려면 이런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해야 한다. 예비 신도가 그가 아는 다른 신자를 통해 소개받아 첫 출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런 이유다. 이 종교도 자신이 사이비가 아니고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적은 편안한 곳이라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정보 비대칭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남편인 조지 에이컬로프(Akerlof)는 그의 노벨상 논문인 ‘레몬 시장’의 역설을 통해 정보 비대칭의 악영향을 논의했다. 레몬은 중고차 시장에서의 저질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가상화폐 금융기관 셀시어스 로고와 가상화폐 기념주화 이미지/로이터=연합뉴스
가상화폐 금융기관 셀시어스 로고와 가상화폐 기념주화 이미지/로이터=연합뉴스

만약 내가 중고차를 사려고 하는데 연식이나 운행거리, 사고이력과 같은 정보를 알 수가 없다면 고가에 선뜻 어떤 차를 구입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매도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차를 깨끗하게 썼고 사고를 낸 적도 없어 당연히 비싼 값을 받아야 하지만, 정보 비대칭 때문에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매수자는 적정한 가격을 내기를 꺼린다.

이렇게 되면 매도자는 양질의 중고차를 잘 아는 사람에게만 팔든지 아예 외국으로 수출하려 할 것이고 저질의 중고차 보유자만 매도자로 남아 시장의 질이 저하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시장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매수자가 그 시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논리가 금융의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은행이 차입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대출을 꺼리게 된다. 설혹 사업전망이 매우 좋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 사업을 접는 일이 허다하게 생긴다. 이는 물론 경제의 성장을 저해한다.

그것은 예금자나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내 돈을 맡길 은행이나 투자대상의 건전성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흔쾌히 돈을 예치하거나 투자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만약 내 돈을 맡긴 은행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당연히 예금을 인출해 다른 곳에 맡기려 할 것이다. 

만약 다수의 예금자가 이런 소문을 듣고 동시에 은행 창구에 난입해 현금 인출을 요구하면서 소동이 벌어지면 뱅크런(bank run)이 발생한다. 미국에서도 1913년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창설되기 전에는 뱅크런이 주기적으로 터지곤 했다. 사실 이런 뱅크런으로부터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에 대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연준이 생겨났다.

거기에다 대공황 당시 은행 부도에서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1933년 예금보험공사(FDIC)가 설립되면서 미국에서 뱅크런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 금융의 역사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뱅크런이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크립토 세계의 그림자금융인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디파이 업체들은 가상화폐 투자자로부터 예금을 받고 이를 다시 고금리로 대출해 수익을 내는 플랫폼으로 영업을 해왔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은행과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

이들 플랫폼이 보유한 자산규모는 2020년 초만 하더라도 6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나 작년 말에는 3170억 달러로 급팽창했다. 가상화폐 자산가치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급락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보유 자산규모도 1060억 달러로 위축됐다.

그러자, 이들 플랫폼의 지급능력에 의심을 품은 투자자들의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주 170만 명의 가입자로부터 118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예치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대출해 온 셀시어스 네트워크(Celsius Network)에서 벌어진 뱅크런이 대표적이다. 

셀시어스는 예금자에게 14%에서 19%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해 자산을 예치하고는 그보다 높은 이자를 받고 앵커(Anchor)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에 대출하는 사업 모델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까지 급락하면서 가상화폐 시장 전반에 신뢰가 붕괴되었다. 그런데 신뢰의 붕괴는 바로 금융의 종말로 이어진다. 뱅크런 때문이다.

결국 셀시어스는 예금의 인출과 송금의 중지를 선언했다. 높아진 정보 비대칭과 투자자의 신뢰 상실로 더 이상은 금융 중개자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편, 이처럼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의 해소와 예금자의 신뢰 유지가 필수 불가결하다.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다양한 규제를 통해 금융시장에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신뢰의 장벽을 낮추려 한다. 은행을 인가하고 지불준비금 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자본적정성을 감시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디파이 영역을 규제의 사각지대로 방치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디파이를 붕괴로부터 방어해낼 시스템이 부재하게 됐다. 그 결과는 가상화폐 시장 전반의 붕괴로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상화폐에 투자한 수많은 가계가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주식·부동산과 함께 가계의 부를 증가시켜 온 큰 축의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월세 급등 그리고 더딘 임금 상승으로 줄어든 가계의 실질소득이 더 큰 타격을 받으면서 소비지출 위축이 심화될 것이다. 이로 인해 재고가 늘어나고 기업의 이익과 투자가 줄면서 경기는 급속히 냉각될 것이다. 고물가 속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가상화폐 규제와 투자자 보호가 신속히 시행돼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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