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과잉 유동성 지금 상황과 일치
파티 한창일 때 나와 술병 치워버린 김재익
통화주의 노선은 위험, 고강도 긴축 불가피
"술을 끊어야 할 알코올 중독증 환자에게 최후의 한 잔 술을 허락하는 것이 어떻게 자비이고 친절인가?"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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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돌아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파월에게 레이건 시대 폴 볼커의 역할을 요구할 만큼 글로벌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연방준비제도(Fed)가 볼커를 소환해 초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소련과 동유럽이 겪었던 위기는 비기축통화국인 신흥국에 곧바로 닥칠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동현금인출기(ATM)로 불리는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국내외 경제는 1970~1980년대와 데칼코마니 양상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당시와의 유사점을 살펴보고 미국의 긴축 정책이 국내외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섯 차례에 걸친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① 반세기 만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이언트 스텝 |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주식시장은 세계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하락률을 나타냈다. 코스닥은 16%, 코스피는 12% 주저 앉았고 환율도 1300원대 전후까지 치솟아 올랐다.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기 전까지 한국은 금리인상 '패스트 무버'에 속했다. 그런데 연준이 금리를 0.75% 인상하자 급격히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연합(EU)이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전세계적 금리인상 경쟁이 불붙은 가운데,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정부지출을 늘려 불황을 해결하라'는 케인즈의 처방이 옳았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에 힘입어 경제는 회복 단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침체기에 빠졌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먹구름이 전세계에 드리운 것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은 1970년대 말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대공황 이후 이어진 50여년 동안의 케인즈식 재정지출 정책의 후유증이었다면, 지금의 위기 상황엔 폴 볼커 연준 의장의 '20%대 금리 인상' 이후 등장한 '통화주의'가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 국내 경제 정책은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로 대표되는 서강학파가 키를 잡고 있었다. 즉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초고도 성장의 이면에는 신고전학파의 성장주의와 함께 돈 풀기의 위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동성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뒷배였다. 한국 정부는 6·25 전쟁 복구 명분으로 1965년 IMF와 협약을 맺고 5000만 달러를 한도로 하는 '스탠드 바이 차관'을 확보했다. 일정 금액을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별인출권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장관이던 남 전 총리는 "화폐량 증가가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통화량을 연 20% 이상 증가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통화량 증가는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인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과잉 투자와 함께 관치 금융의 부작용도 본격화됐다. 주식시장 발전을 위해 실행된 저리의 우대금융에서 배제된 기업들은 고금리 사채로 밀려났다. 1972년 정부가 이들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상환을 동결하는 8·3 긴급금융조치를 단행했지만 300만원 미만의 사채를 보유한 일반인들(전체 사채 규모의 90%)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풀려나간 돈이 양극화도 심화시켰다.
국내적 혼란에 더해 해외발 쇼크도 덮쳤다. 1973년 10월 6일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원유가가 평균 3.6배 뛰어올랐다. 전쟁이 소강 상태가 되면서 1차 파동은 진정됐으나 중동이 원유를 무기화하면서 유가가 1978년 10월부터 1981년 12월 사이 2.4배 상승했다.
베트남 전쟁과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고물가에 더해 1977년 부가가치세가 도입되면서 민심은 더더욱 들끓었다. 당시 부가세 도입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고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10%대를 달렸지만, 팽창적인 통화·재정정책의 결과로 1980년 10월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2.5%까지 치솟았다.

경제 성장보다 안정에 방점 찍은 정부
32% 인플레 잡고 두자릿수 고도 성장
볼커 연준 의장이 단행한 자이언트스텝이 필요했던 1979년, 돈 파티가 한창이던 한국 경제의 술병을 치워버리러 나온 사람이 바로 김재익 전 경제수석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보위입법회의 경제분과위원장으로 발탁한 김 전 수석은 '수출 주도' 노선을 '수입 개방'으로 변경하고 금리인상과 재정긴축 정책을 펼쳤다. 특히 경제 개혁의 목표를 '안정'에 찍었다.
앞서 박정희 정부는 1975년 '물가 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통해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고 했지만, 가격 통제는 부작용만 낳았다. 사업자들은 규제 품목의 생산을 기피하거나 품질을 저하시켰다. 이중가격이 형성되고 매점매석 현상도 일어났다. 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만연하면서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같은 상황은 본지가 지난 30일 보도한 임금 인상 vs 인플레···‘악순환 고리’ 갇혔다는 현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박정희 정부의 물가대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김 전 수석은 물가상승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곧바로 돈 줄 조이기에 들어갔다. 거시경제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채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통화량의 증가율을 대폭 하향 조정하고 모든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했다.
민간 기업에만 적용되던 제로베이스 예산을 정부 부처에 도입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조치였다. 제로베이스 예산이란 정부가 신규 예산을 편성할 때 직전 회계연도 예산편성과 관계 없이 매년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것을 말한다.
![[그림1] 1980년대 경제기획원이 제작한 경제상황 포스터. /국가기록원](https://cdn.womaneconomy.co.kr/news/photo/202207/212148_416657_2448.jpg)
이러한 경제개혁 조치에 적용된 것은 오스트리안 학파의 경기변동이론(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이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화폐를 밀어내면서 물가를 올리고,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게 되면 과잉투자로 인한 붐(Boom)이 발생하고 그 결과 반드시 버스트(Bust)가 오게 된다.
과잉투자로 인한 왜곡은 시장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들이 부실채권을 정리해 유동성을 줄이고 금리를 상승시킨다. 일반 소비자도 지출을 줄이고 채무자는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처분한다. 기업은 부도를 우려해 투자를 신중히 한다. 이에 따라 디플레이션이 오는데 생산구조가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다시 맞춰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통화 팽창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가격인상이 불가피한 현 상황에서 돈을 더 푸는 것은 버블을 키우는 잘못된 정책이란 경고음이 학계 곳곳에서도 들리고 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본지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연준은 자산시장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방치했다. 그 부산물은 주가, 채권, 부동산, 가상화폐, 상품 등 거의 모든 자산시장에서의 버블 형성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림2] 역대 정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추이.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안정적 성장에 방점을 맞춘 시기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타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개입 강화는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침체를 불러온 점도 확인된다.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자유기업원=안재욱 경희대 명예교수](https://cdn.womaneconomy.co.kr/news/photo/202207/212148_416661_1419.jpg)
불황은 균형으로 돌리기 위한 과정
인플레 악순환 끊기 위해 긴축 필수
시장경제 입각한 경제 체질 개선도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시스템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적응 과정이다. 재정확대와 통화주의 정책은 이같은 고통스런 적응 과정을 연기할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유발한다는 것이 이번 위기를 계기로 또 다시 증명됐다. 과거를 교훈 삼아 윤석열 정부가 경제 체질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981년 정부는 독과점 제품과 공공요금, 매점매석에 관한 규제 등 사후적인 가격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공정거래법도 손질했다. 정재룡 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은 본지에 "1981년 '독과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도입하면서 사전적으로 경쟁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며 "단계적인 수입자유화 조치도 함께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석탄에서 원자력으로의 에너지 전환 정책도 진행했다. 권문용 전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은 "김 전 수석께서 국제원유가의 인상에도 버틸 수 있도록 경제 체질을 개선하려면 얼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냐는 조사를 지시했다"며 "당시 계산으론 50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 개혁은 국민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과 1980년 28.7%나 됐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82년에는 한자릿수로 안정됐다. 또 미국에선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제 유가, 국제 금리, 달러화 환율이 안정을 찾았다. [그림2]와 같이 3년의 고통 끝에 평균 10.1%대의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복지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진 국민을 대하는 정부 입장에서 긴축정책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도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과세 기반을 확대하고 필요하다면 증세도 추진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재정 확장을 통해 돈 맛을 본 국민이 다수인 상황이어서 설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을 진화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 확보가 관건이란 얘기다. 장태평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장은 "정부로선 수단이 많지 않은 상황으로 보이지만 과거의 정책 성공 사례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은 경기변동이론의 창시자인 루트비히 미제스는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플레이션 정책을 악으로 생각한다면 인플레이션 정책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부 예산을 균형시켜야 한다. 물론 여론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지식인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여론의 뒷받침을 받게 되면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인플레이션 정책을 포기하는 일은 확실히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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