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위기를 미리 보는 정책적 선견 필수적

제롬 파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경합을 벌이며 촬영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사람 키보다 큰 참호 속에 갇혀 병사들은 들쥐의 공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부상과 질병의 고통 속에 신음한다.

이 전쟁으로 몇 세기간 세계정세를 쥐락펴락했던 유럽은 주도권을 상실했다. 미국이 새로운 패자(覇者)로 떠올랐고 러시아에서는 10월 혁명에 이어 공산정권이 자리 잡았다. 전쟁 후반기에는 스페인 독감이 가져온 인플루엔자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새파랗게 공포에 질렸다.

그런데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 프리치프가 쏜 총에 목숨을 잃으면서 시작된 이 전쟁이 그렇게 참담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전쟁에 징발된 병사들은 꽃송이를 받고 즐겁게 손을 흔들면서 소풍 나가듯 전장으로 향했다.

추후 발생할 암담한 결과를 예측 못하기는 전후 승전국 지도자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전쟁으로 미국에 큰 빚을 진 영국과 프랑스는 패전국 독일에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 배상금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독일의 재무장, 그리고 제2차 대전이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이 같은 결과를 내다보고 배상 조건을 규정한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한 승전국 지도자들을 맹비난했다. 그 이후에도 케인즈는 대공황으로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에 대해 총수요를 짐작하라는 처방을 내리고 2차 대전 이후 달러 패권을 견제했다.

케인즈가 흠모받는 이유는 당시 남들이 보지 못했던 대공황의 원인을 볼 수 있었던 선견지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그를 추종한 케인지안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를 가장 경계하면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학계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오래되지 않아 명확해졌다.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이 이루어지자 물가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거기다 오일쇼크로 공급 측 충격이 가해지자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덮쳤다.

이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원인을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 실패에 두면서, 1970년대 인플레이션도 통화량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는 돈의 양이 실물경제 생산량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므로,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1980년대 이후 프리드먼을 계승한 시카고학파는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경계하고 규제 혁파와 시장의 자율적 기능 향상에 전력투구했다. 감세를 통해 투자를 고양하고 세계화와 관세 철폐를 통해 생산비를 낮추면서 글로벌 경제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 또한 명백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 완화(deregulation)와 기업의 단기 이윤 극대화에 대한 집착은 경제 전반에 방만한 리스크 테이킹과 도덕적 해이를 조장했다. 그 결과 2008년 부동산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는 2008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경제대학(LSE) 브리핑에서 “왜 이 무시무시한 금융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런던 영란은행./로이터=연합뉴스
런던 영란은행./로이터=연합뉴스

4년 후 여왕이 영란은행을 방문했을 때 경제학자 카파디아는 금융위기 직전 시장이 자기도취에 빠져 있어 규제란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며 위기가 지진이나 팬데믹처럼 갑자기 찾아와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여왕도 긴장이 이완돼 위기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 이해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찾아오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동원할 수 있는 화력을 모두 동원해 경기 방어에 나섰다. 정책 담당자들의 심리상태는 이러다 공황을 맞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봉쇄가 확대되면서 공급망이 무너졌다.

그러나 경제 재개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면서 주가는 한 달 만에 극적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는 그해 3분기부터 급격한 회복세를 연출했다. 실업률도 갈수록 급속히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돈 퍼붓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상 최대 예산안이 편성되었고 연준의 채권 사들이기는 2022년 1분기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러자 작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던 물가가 금년 들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현안이 ‘물가 잡기’가 되었다. 이제 누군가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질 것이다. “대체 왜 누구도 이런 끔찍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실상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그리고 팬데믹 위기 동안에도 위기를 예상하고 경고한 이들은 항상 있었다. 다만 정책 당국자들이 이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책 담당자들은 왜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자기도취(complacent)에 있다. 경제 엘리트로서 정보 우위에 있으니 예측력도 앞설 것이라는 오만과 편견이 판단력을 가렸다. 그러나 정보 우위가 가져다주는 것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과거에 일어난 현상에 대한 분석력의 향상뿐이다. 

지난해까지 파월 연준 의장은 몇 차례에 걸쳐 ‘데이터에 기반해 물가 상승을 확인’하고 나서야 2%의 ‘평균 물가 목표치’ 달성을 위해 통화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과거 데이터에 도취돼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고통이다.

한편, 인플레이션이 근래 볼 수 없었던 수준에서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자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백악관도 연준의 행보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후퇴해 선거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준과 백악관이 강력한 통화 긴축에 합의한 배경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발표된 실업률은 3.6%로 1970년 이래 최저치 3.5%에 근접했다. 오히려 고용난이 심각해 미처 채우지 못한 채용공고 숫자가 사상 최대치 1,150만 개에 머물러 있다.

그에 반해 정부가 발표한 실업자 수는 590만에 지나지 않고 있다. 이 수치만 보면 경제가 완전고용을 보인다고 진단할만하다. 문제는 연준이 의존하고 있는 이런 수치가 모두 과거 데이터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미래를 전망하는 데 보다 적합한 자료는 민간이 추계한 ‘신규’ 채용공고 숫자이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근 미국의 신규 채용공고가 2019년 5월 이래 최저치인 660만 개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신규 채용 규모가 줄었다. 또 다른 데이터에 의하면 최근 고용 감소가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아마존, 페이스북, 월마트 같은 대표적인 기업들도 신규 채용 억제에 들어갔다.

고용시장이 주는 이 같은 시그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물가 급등과 금리 인상이 실질임금 감소와 소비심리 악화로 이어져 향후 업황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즉,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순익과 현금흐름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주가 급락이다. 주식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 경기 상황을 선반영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주가 급락은 부동산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내 경기 침체를 초래한다. 침체의 깊이는 자산 시장에 끼었던 버블의 크기에 비례한다. 위기를 미리 보고 선제적 대응을 취해 버블의 싹을 자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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