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셰일가스 산업에 대한 지원 확대로 인플레 잡아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29일(현지시간)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정상회의와 별도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아시가바트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29일(현지시간)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정상회의와 별도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아시가바트 AP=연합뉴스

2021년 아카데미의 시선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의 오스카를 수상한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에 쏠렸다. 제목이 시사하듯 유랑자의 땅이라 칭할만한 미국 서부 사막지대의 장대한 스케일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슬픔이 깔린 땅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여주인공 펀(Fern)이 처한 환경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네바다주의 엠파이어란 조그만 도시에 있던 석고보드 공장이 수요 부족으로 88년 만에 문을 닫았다. 공장이 사라지자 인구도 흩어졌고 그 동네 자체가 지도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 공장에서 일하던 펀도 직장을 잃었다. 회사 동료였던 남편은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펀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낡은 중고 밴 한 대에 의지해 유랑의 길을 떠난다. 창고에서 물품을 정리하던 그녀는 가족의 오래된 체취가 밴 옷가지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처음 그녀는 사람의 키보다 큰 선인장이 화사하게 솟아 있고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빛이 화려함을 뽐내는 애리조나의 사막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차 한 대에 의지해 생활하는 또 다른 유랑자의 무리와 만나 어울리며 삶의 지혜도 배운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곳을 떠나야 했다.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네브래스카주의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또 다른 주의 식당과 농장에서도 일하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한다. 서부 사막지대의 황량함이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유랑자들의 삶에 쓸쓸함을 더한다.

그러나 유랑자들도 역경을 버티는 힘을 몸소 보여준다. 서로를 향한 존중을 통해서다. 생면부지에 어려운 처지이지만 금방 친해지고 도움을 나눈다. 펀의 거의 전부인 밴이 고장 났을 때 그녀의 언니는 같이 지내자고 진심으로 호소하고 기꺼이 거액의 차 수리비를 내준다. 유랑자 친구인 데이브는 자신이 정착한 아들네 집에 펀을 초청해 환대하고 함께 거주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펀은 이들의 호의를 뒤로 하고 서부 해안으로 향한다. 빗속에 거칠게 이는 태평양의 파도와 갈매기를 바라보며 마음을 씻고는 다시 유랑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녀가 이처럼 자유롭게 차로 여행하면서 맘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미 국토의 28%를 나라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이 있던 네바다는 80% 이상이 국유지이다.

1872년 옐로우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어마어마한 규모의 땅이 국가 소유의 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의 천국인 미국은 어디를 가든 가까이에 자연공원이 있어 자동차 여행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자동차 노매드족의 땅이다.

그런데 펀이 오늘날도 밴을 몰고 여행하고 있다면 그녀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을 것이다. 유랑자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휘발윳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높게 서 있는 기름값 간판은 오늘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각한지 생생하게 중계한다.

현재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펀이 주로 여행하던 서부 지역은 갤런당 5달러 중반이고 캘리포니아는 6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물가지수를 감안한 인플레이션 조정 실질 휘발유 가격 기준으로 보면 기름값은 2008년이 현재보다 훨씬 높았다. 

그 이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일시 하락한 것을 제외하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휘발유 가격은 2014년 상반기까지 대체로 현재 수준보다 높았다. 그러던 휘발윳값이 그 해 하반기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다. 작년 초까지 갤런당 3달러를 넘지 않았다.

이렇게 2010년대 후반에 기름값이 안정된 것은 미국의 프래킹(fracking)이라 불리는 셰일가스 생산 붐 덕택이었다. 셰일가스 생산 업체들은 땅속 암석층에 퇴적된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압파쇄 방식을 통해 추출하는 기술을 적용해 이들 에너지의 생산량을 급격히 늘렸다.

신규 에너지원을 확보해 중동과 러시아산 원유로부터 독립을 이루려던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선택으로 셰일가스 산업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미국은 원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할 수 있었고 오늘날 세계 1위의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재무장관과 만난 뒤 러시아 원유 판매 수익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과 '가격상한제', '가격 예외 조치'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22년 6월 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2023년 예산 관련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옐런 장관. /워싱턴 AF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재무장관과 만난 뒤 러시아 원유 판매 수익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과 '가격상한제', '가격 예외 조치'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22년 6월 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2023년 예산 관련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옐런 장관. /워싱턴 AFP=연합뉴스

이처럼 미국이 프래킹을 통해 셰일가스와 원유 생산을 급격하게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광범하게 분포한 국유지를 시추업자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승승장구하던 셰일가스 산업에 엄청난 먹구름이 몰려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유가가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봉쇄가 시행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석유 수요가 크게 줄어 매출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비용은 급증해 순익이 급감했다. 워렌 버핏이 10%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옥시덴탈(Occidental) 석유의 경우 2020년 순손실이 자기자본의 84%에 달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순식간에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금이 전부 잠식될 판이었다. 실제로 2020년 한 해 100개에 이르는 프래킹 회사가 파산했다. 셰일가스 업계 전체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었다. 유가는 점진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주가는 2021년 내내 빈사 상태를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새로 백악관을 차지한 바이든 행정부는 화석연료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셰일가스 업계에 돌이킬 수 없는 일격을 가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취임 첫날, 캐나다로부터 미국 내 정유 기지로 셰일 원유를 운반하기 위해 추진하던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의 승인을 취소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이든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인프라스트럭쳐 법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환경보호를 위해 셰일가스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는 셰일가스 생산에 필수적인 연방정부 소유의 국유지 임대를 금지했다. 사유지에 대해서도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 등의 명분을 내세워 환경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도 거들고 나섰다. 2021년 자신에 대한 바이든의 재임명 결정을 앞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연준 의장의 이런 시그널에 대해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은행은 ESG 부서를 만들고 화석연료인 석유, 가스 회사에 대한 여신심사를 강화하고 기존의 대출도 줄일 것이다. 뮤추얼펀드 등 투자전문회사는 자신의 운용 포트폴리오에서 이들 회사의 비중을 줄일 것이고,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투자 권유 리포트를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최근 유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옥시덴탈에 대한 매수 의견은 전체의 30%에 미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환경하에서 셰일가스 업계가 취할 입장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향후 여신이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울 것이니 첫째도 둘째도 현금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즉, 가급적 거액이 필요한 설비투자를 줄이고 생산 확대에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업의 재무적 생존을 위해 자본지출 요건을 내부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경영의 척도를 생산과 매출 확대에서 수익성 제고를 통한 현금흐름 창출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전할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미국 전체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의 감소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국제유가는 셰일가스 업체의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고 12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원유 생산량은 이제 겨우 하루에 1200만 배럴을 넘어서 코로나 이전보다 여전히 100만 배럴이 부족한 상태다.

문제는 다가오는 겨울의 ‘에너지 전쟁’이다. 푸틴은 천연가스 수출을 줄여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유럽에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를 보고 싶어 한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의 집권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친러 극우 정당이 약진해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보리스 존슨의 집권 보수당이 패배했다.

이대로 가면 오는 가을 미국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이 참패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팬데믹, 지정학적 위기, 인플레이션, 경기침체의 사면초가에 빠진 바이든에게는 진보적 어젠다에 매몰되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셰일가스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입장을 선회해야 한다. 최근에야 찔끔 푼 국유지 임대를 대폭 확대하고, 토지 사용료를 올릴 것이 아니라 인하하고, 보조금까지 지급해 생산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 부활에 몇십조를 지원하면서 그보다 훨씬 시급한 원유와 천연가스 증산을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이든 자신에도 이로운 윈윈전략이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유가 급등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올라가는 휘발유 가격이야말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주범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유가와 음식료를 넘어 임금과 월세로 퍼지면, 물가 오름세가 장기화하면서 고착화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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