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2% 발언 '통화준칙' 강조한 것
재량 판단에 의존하는 이창용·추경호
환율 급등 방치···내부통제 기능 약화

반세기 만에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돌아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파월에게 레이건 시대 폴 볼커의 역할을 요구할 만큼 글로벌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연방준비제도(Fed)가 볼커를 소환해 초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소련과 동유럽이 겪었던 위기는 비기축통화국인 신흥국에 곧바로 닥칠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동현금인출기(ATM)로 불리는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국내외 경제는 1970~1980년대와 데칼코마니 양상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당시와의 유사점을 살펴보고 미국의 긴축 정책이 국내외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① 반세기 만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이언트스텝
② 반복하는 위기···한국 1970년대와 뭐가 다른가
③ '회색코뿔소' 앞 파월, 고용 믿고 경제위기 부정?
④ 버블 붕괴 템플릿 : 닷컴과 모기지의 배신
⑤ ‘거인’이 된 美 연준‧‧‧신흥국 자본유출 ‘공포’
⑥ 준칙과 재량 사이···파월 vs 이창용 엇갈린 노선

지난달 1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가 글로벌 긴축과 미·중 무역갈등, 고(高)유가라는 세 가지 역풍을 맞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자격으로 참가한 미국 워싱턴DC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강연에서 언급한 말이다. 2017~2019년 진행된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긴축[그림의 QT1]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이 총재는 적극적인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 등을 해법으로 꼽았다.

그러나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연준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 봉쇄 조치로 심정지 상태가 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를 실행한 것이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집행한 재정지출은 총 3조3000억 달러였다. 이후 2021년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구조계획법(ARP Act: American Rescue Plan)을 발효하며 1조9000억 달러를 추가로 지출했다.

코로나19 기간 양적완화는 8%대의 통화 인플레이션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치솟는 물가를 잠재우기 위한 정책 수단이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고강도 긴축밖에 없었던 연준은 6월과 8월 연속으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았다. 파월 연준 의장이 매파로 변신한 배경이다.

케인스 일반이론 극복한 美 학계
실업 우려에도 긴축 필요성 강조 

연방준비제도는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다가는 반대로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실물경기는 더 침체된다. 반대로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완화' 정책을 고수하면 인플레가 증폭되고 부채가 급증한다.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딜레마다.

파월 의장은 지난 8월 27일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45번이나 언급하며 "연준의 목표는 물가 상승률을 2%로 되돌리는 것"이라 못박았다. 그러면서 "가격 안정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며, 우리의 강력한 수단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월의 이번 긴축은 기준금리만 올렸던 폴 볼커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정책 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 긴축[그림의 QT2]을 통해 통화량(M2)을 줄이는 인위적인 유동성 축소까지 더해진 긴축이다.

양적완화(QE)의 정반대 개념인 양적긴축(QT)은 자이언트스텝과 함께 본격화됐다. 연준은 지난 6월부터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매월 각각 300억 달러, 175억 달러씩 줄여왔다. 특히 9월부터는 이를 두 배로 키워 국채(600억 달러)와 MBS(350억 달러)를 매월 950억 달러 줄이는 허리띠 죄기에 들어갔다.

[그림] 지난 15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 자산구성 추이. 연준은 2017년부터 '런오프' 방식으로 보유자산을 매달 100억 달러씩 줄이기 시작했다가 점차 월별 감축 규모를 500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이창용 총재는 QT1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 뒤 세계경제에 겨울이 왔다고 평가했다. 그래프에서 QT2로 표현된 것이 지금의 양적긴축 상황이다. /출처=국제금융센터, 재구성=여성경제신문
[그림] 지난 15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 자산구성 추이. 연준은 2017년부터 '런오프' 방식으로 보유자산을 매달 100억 달러씩 줄이기 시작했다가 점차 월별 감축 규모를 500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이창용 총재는 QT1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 뒤 세계경제에 겨울이 왔다고 평가했다. 그래프에서 QT2로 표현된 것이 지금의 양적긴축 상황이다. /출처=국제금융센터, 재구성=여성경제신문

다만 연준은 미국 경제가 지난 1~2분기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각 -1.6%, -0.9%)한 것을 기술적 침체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본지는 [Fed의 역습]③ '회색코뿔소' 앞에 선 파월, 고용 믿고 경제위기 부정 편을 통해 마이너스 성장의 경기침체를 경기침체라고 말하지 못하는 미국 정부의 사정을 짚어봤다.

미국은 경기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고용시장이 버텨주고 있다는 주장을 앞세우며 오는 9월에도 빅스텝 이상의 타이트닝(tightening)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FED로부터의 독립 주장해온 이창용
정책금리 격차, 고환율 방치한 이유?

연준의 고강도 긴축 조치는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도 용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케인지언의 관점을 벗어난 진일보한 시각이다. 미국 학계에선 "인플레이션은 실업상태보다 덜한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숙고한 끝에 취한 정책이며, 인플레이션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미제스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움직임으로 감지된다.

무엇보다 이번 인플레를 통화 인플레이션으로 규정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강한 고용시장이 연준에는 오히려 악재가 될 것"이라면서 실업을 감수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강경 매파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네오케인지언을 대표하는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대규모 재정지출에도 물가가 크게 뛰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예측 오류를 인정하는 반성문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화제가 됐다.

반면 4년 전 '겨울의 위기'를 예고했던 이창용 총재는 이들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파월의 잭슨홀 미팅을 마친 뒤 "한은의 통화정책이 한국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국 연준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동시에 과거 통계를 보면 내외금리 차만으로 자본 유출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기준 금리 인상폭을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우며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13년 5개월 만에 1380원대를 돌파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13년 5개월 만에 1380원대를 돌파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열 전 한은 총재 시절 선제적인 금리 인상으로 앞서 나가던 한미 간 금리차가 다시 좁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원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려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지난 7일 서울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384.2원까지 오른 채 거래를 마쳤다. 

이에 더해 연준의 정책금리가 한은의 기준금리를 실제로 역전할 경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의 패닉 셀링(panic selling)이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뿐 아니라 환율 급등은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킨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는 연 2.5%(미국은 상단)로 같다. 연준이 오는 9월 2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을 취할 경우 금리 차는 한은이 세 번의 베이비스텝을 밟아야만 따라잡을 수 있는 0.75%포인트까지 벌어지지만,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점진적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겠다"면서 베이비스텝 유지 방침을 밝혔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은 "한미 금리 차 역전에 대해 용인할 것을 이창용 총재가 공개적으로 시사한 것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고환율을 방치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면서 "미국이 하니까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지 하는 발상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0월 물가 정점론 결국 번복한 한은
고환율 정책 펼칠 것이란 오해 유발
獨 하이퍼 인플레도 정책 불신 때문

미국과 한국의 경제 정책 담당자들의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이 같은 현상을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미국은 물가상승률을 2%대로 낮추겠다는 준칙(rule)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펼치는 반면, 한국은 물가의 정점이 언제일까에 맞춰 재량(discretion)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먼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구두개입에 나서며 정책 혼선을 키워왔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물가가 늦어도 10월엔 정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필요할 경우 시장 안정조치를 할 것"이라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한은은 10월 물가 정점론을 번복했다. 한은은 지난 8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상방 리스크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정점이 (10월에서) 지연되거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며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 총재가 앞서 제시한 연말 기준금리 2.75~3.00%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의미가 없어졌다.

1920년대 독일의 1렌텐마르크 지폐의 모습 /독일은행
1920년대 독일의 1렌텐마르크 지폐의 모습 /독일은행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준칙이 아닌 단기 목표를 정해 놓고 재량적인 판단에 의존해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들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멈출 의향이 없이 지속시킬 정책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떠한 값으로든 물건을 사기 시작하고 이는 곧 걷잡을 수 없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던 1914년 8월 1달러 가치는 4마르크 20페니였으나 전쟁이 끝난 3년 뒤인 1923년 1달러는 10억배 뛰어오른 42억 마르크가 됐다.

독일 정부가 전쟁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통화 공급을 마구 늘린 것처럼 전후에도 인플레이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란 불신이 작용했다. 결국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된 기존의 마르크는 폐기 처분되고, 렌텐마르크(Rentenmark)라는 새로운 통화가 등장했다. 통화제도가 붕괴되고 나서야 인플레이션이 멈춘 것이다.

금본위제가 유지되던 1946년부터 1973년까지는 인플레이션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1973년 금달러태환제인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외부통제가 사라졌다.

특히 내부통제가 약한 신흥국은 자국 화폐 가치가 달러와 연계되면서 통화가치 하락과 함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71년에서 2000년 사이 중앙은행이 있던 개발도상국가의 3분의 2가 연 20%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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