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기적' 이끈 경제성장의 아버지
국립현충원서 제10주기 추모식 거행
좌우명처럼 강조한 仁의 철학 재조명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 1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상헌 기자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 1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상헌 기자

국립현충원 제3유공자 묘역에 위치한 지암(芝巖) 남덕우(南悳祐) 전 국무총리의 비석에는 자신이 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다.

뜻을 풀이해 결론부터 말하면 '군자(君子)는 서로 다른 것에 기뻐한다'는 뜻으로 오직 진영 논리만을 고집하는 소인들의 행태인 '동이불화(同而不和)'와 대조를 이루는 공자의 말씀이다.

지암이 공직에서 퇴임한 이후 2009년 발간한 서예집 첫 장에 나오는 구절도 '화이부동'이다. 그는 생전에 주변인들에게도 "서로 간의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의를 위해선 함께 하자"면서 화이부동을 좌우명처럼 강조했다고 한다.

18일 국립 현충원에서 진행된 남 전 총리 10주기 추모식엔 지암이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있을 때 사무관으로 재직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서강대 제자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공약을 함께 디자인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유장희 전 동반성장위원장,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한갑수 전 농림부 장관, 유호열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보였다.

지암은 1924년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에서 경안면장을 지낸 남상현(南相顯) 씨의 첫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상경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 아오모리현에 위치한 한 집단농장의 병참병으로 끌려갔다. 곡괭이로 감자를 캐는 고된 징용 생활 중에도 공부의 끈을 이어간 그는 해방 직후 국민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지암이 26세의 나이로 국민대를 졸업한 날은 1950년 6월 24일, 학업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하루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야 했다.

1951년 1·4 후퇴 이후 지암이 부산에서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은 미8군 헌병사령부의 통역관이었다. 그러던 1952년 한국은행원 공개 채용에 수석 합격하면서 인생의 변환점을 맞았다. 전쟁 기간인 1952년부터 1954년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민대학 전임강사로 돌아가 꿈에 그리던 상아탑의 일원이 됐다.

서울대 경제학 석사에 이어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경제학 박사까지 취득한 지암은 1964년부터 서강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며 일명 서강학파로서의 학문적 기반을 닦았다. 국내 최초 미시경제학 교과서 격인 '가격론'을 완성하고 같은 시기 경제학대사전과 경제학원리를 내놓으면서 한국의 경제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던 1969년 갑작스레 박정희 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운명이다, 할 수 없다 (남덕우 회고록 중 일부)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며 납덩이같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공사판에서 흙이 묻은 구두를 신은 채로 접견실로 들어갔는데,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냈다. 하지만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와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나서 정렬이 흐트러질 때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딴에는 정부 시책에 언제나 온건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느껴졌다. 어쨌든 그 후 나는 14년여 동안 정부 관료의 쓴맛 단맛을 톡톡히 본 셈이다.

지암은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전두환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1970~8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중동 진출 등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냈다. 공직에서 퇴임한 뒤에는 무역협회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8·3 긴급조치, 제1·2차 석유파동, 수출 100억 달러 및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 부가가치세 도입 등이 지암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尹 대통령 같은날 5·18정신 강조
헌법전문에 담는 和而不同 시사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 10주기 추모식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다. /이상헌 기자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 10주기 추모식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다. /이상헌 기자

이날 지암 선생의 10주기 행사가 열린 같은 시간 전남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5.18 기념식장에 입장한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5·18 정신이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면서 이를 헌법 전문에 담는 개헌 의지를 확인시켜 줬다.

5.18을 둘러싼 좌우 분열 상황을 '동이불화'가 아닌 '화이부동'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이날 남덕우 전 국무총리 10주기를 맞아 한덕수 국무총리 등 27명이 모여 만든 추모집 제목도 '화이부동'이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은 논어 자로편에 나온다. '화는 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동을 인정하고 허하는 데에 있다'는 뜻으로 춘추좌씨전 제나라 경공의 기사에 담긴 메시지를 공자가 요약한 말이다.

지암은 분별없이 동조하고 이익을 좇고 반대편을 무시하고 편 가르기에 몰입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동이불화'의 본보기로 봤다. 그는 "우리가 지나치게 같은 것(同)에 집착하는 자체에 화근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같지 않음(不同)을 허하는 인내와 관용을 자유주의 덕목으로 해석했다.

지암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2013년 5월 해공 신익희 선생 56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암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2013년 5월 해공 신익희 선생 56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역 수지비(䷇)에 나타난 仁의 뜻
자유주의로 해석한 탁월한 철학자

유교의 이상국가론과 연결되는 화이부동은 인화(仁化)를 상징하는 주역의 수지비(水地比)괘가 잘 보여준다. 땅(☷) 위에 물(☵)이 올라탄 괘상으로 아래에서 다섯번째 위치한 양효인 선왕(先王)이 서로 다른 제후들을 배척하지 않고 제 몸처럼 여겨주었다는 뜻이 포함된다.

주역에 정통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 사이에 빈틈이 없는 것으로 물과 흙의 관계 같은 것이 없다"고 풀이했다. 임금에겐 벗과 같은 신하[朋臣]가 있어야 한다는 논어의 두번째 문장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역시 화이부동과 연결된다.

중국 공산당이 인(仁)에 바탕을 둔 유교주의적 이상 국가를 패권 전략에 활용한 반면, 지암은 화이부동 철학을 서로 다름에 대한 관용과 다수의 소수에 대한 너그러움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는 자유주의에서 찾아내 민주주의와 연결시켰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자유의 대가는 인내와 관용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링컨'의 민주주의 원리는 배웠지만 보다 기본적인 공자의 '화이부동'의 원리는 아직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화이부동이란 말처럼 민주주의의 진수를 정확하고 간명하게 갈파한 말이 또 있을까."

-1967년 서강대 교수 시절 중앙일보 기고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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