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양육자 없으면 아이 불안 상태"
男비서관 육아휴직 확대 실천
"유연근무제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

여성에게 육아와 출산, 일과 가정 병행 등을 채용 면접에서 묻는 건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시대다. 그만큼 '일·가정 양립'이 한국 여성에게 민감한 문제가 된 것은 사회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여성의 경력을 설계하고 단절을 예방하는 각종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현장에서 이뤄졌을 때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보 의원은 22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여성경제신문과 만나 워킹맘이 겪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면서도 "제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아이들을 낳은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정치계에 입문해 두 아이를 키우는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육아 초기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는 시기를 견뎠고, 이제는 경력단절, 출산, 육아 때문에 불안한 여성을 위해 효과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태어나 제일 잘한 일, 아이들 낳은 것"
부산 영도구에서 나고 자란 황보 의원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의원실 9급 비서로 일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20대 후반에 영도구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의회 정치를 시작했고, 부산시의원도 역임해 지역 기반을 다졌다.
정부는 경력단절여성(이하 경단녀)를 지원하기 위해 '여성경제활동법'을 통해 경단녀의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여성의 결혼·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예방, 노동시장으로 복귀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게 문제로 지목된다.
황보 의원은 "스웨덴 같은 경우 출산율이 1.8% 가까이 되고 전업주부 비율은 2%밖에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출산율 0.83%에 전업주부가 50%를 넘는다"며 "전업을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지만 얼마든지 이렇게 유연근무제를 통해서 충분히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력단절 없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황보 의원에게도 경단녀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영도구청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경험을 언급하며 이렇게 서술했다.
"낙선 이전에 구의원 등으로 근무하면서 매달 월급을 많든 적든 꼬박꼬박 받았죠. 그런데 월급이 없어지면서 여성으로서 사회적 제약이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하니까 안 만들어주더라구요. 굉장히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 달 쉬고 다른 회사에 출근해 경단녀 기간이 길진 않았지만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해도 재산에 대해 증빙을 다 해야 했어요."

여성 정치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육아를 병행하는 기간 역경도 있었다. 황보 의원은 "구의원 시절 결혼 2년차에 아이를 낳고 또 둘째를 임신해 배불러서 유세차 타고 다니면서 유세도 하는, 육체적으로 어려움들을 많이 겪었다"며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밤늦게 사람들과 어울리려 식사도 해야 했고 주말에도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큰 애 같은 경우 주 양육자가 없는 상태에서 할머니·돌봄이 등 여러 손을 거쳐서 성장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손가락 빠는 버릇이 있었다"며 "당시 아이가 굉장히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 양육자가 없음으로 인해서 아이가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 "주말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굉장히 응석을 부른다거나 밤늦게 들어가면 일찍 자지를 않고 새벽 1~2시까지 같이 놀려고 했다"면서 "저는 아침에 또 출근해야 되니까 굉장히 몸이 힘들어서 화도 냈는데 그만큼 엄마가 그리웠고 놀고 싶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 모르는 국민 많아"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각종 제도들에 대해 황보 의원은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제도들을 '잘 모르고 있다'는 분들이 아직까지 많다"며 "더구나 제도가 있긴 하지만 눈치 보여서 쓰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실질적으로 혜택을 못 입고 있는 것들이 통계상으로 많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36.9%에 해당하는 사업체가 “모른다”고 응답했다. 가족돌봄휴직제도 역시 “모른다”는 비율이 46.1%에 달했다.
육아휴직제도의 경우 정부의 노력으로 41.4%가 '잘 알고 있다'는 답변을 했지만, 제도의 활용 가능 여부에 있어서는 절반 이상(52.7%)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거나 전혀 활용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사업체의 주요 요인은 직장 분위기와 문화였다.
실제로 황보 의원 본인도 "출산 휴가를 정식으로 1~2달 쓰지 못하고 회기가 있으면 한 달 중 한 일주일 정도 회기니까 그때 출산 휴가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는 형태로 휴가를 썼다"며 "저희 같은 직군들은 국민들한테 4년 임기 중에 출산휴가, 육아휴직 쓴다는 게 너무 죄송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황보 의원은 또한 대·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의 제도 이용 비율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 같은 경우는 이 법 자체에서도 시행령에서 예외를 두도록 하는 것들이 있다"며 "법이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여성들이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들도 육아휴직이 있지만 거의 못 쓰는 실정이다. 이에 황보 의원은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본인 의원실부터 실천에 옮겼다. 최근 아이가 있는 남성 수행비서를 1년 육아휴직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황보 의원은 "비서관이 월급을 한 달 동안은 120만원 정도 받을 수 있고, 그 이후부터는 80만원 정도 받아서 평균으로 하면 100만원 정도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아마 남성 비서관이 이렇게 육아휴직한 건 거의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를 통해서 육아 휴직도 할 수 있고, 근로시간 단축해서 유연성 있게 근무를 하면서 가정 수입도 벌면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며 "절대적으로 아이를 어느 시설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선생님 1인당 아이를 돌보는 숫자를 예산을 더 늘려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현행 1년에서 2~3년 확대할 것"
아울러 황보 의원은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입법 계획을 밝혔다. 그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기준이 주당 15시간~35시간, 하루에 3시간~7시간 정도 되어 있는 것을 주당 15시간~25시간, 하루 기준 3시간~5시간 정도로 유연성 있게 근무할 수 있는 '남녀 고용 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워킹맘들 같은 경우 육아휴직 제도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각각 1년씩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사정에 따라서는 2년에서 3년 정도 조금 더 늘려서 쓸 수 있는 방법도 검토 중에 있다"며 "엄마 입장에서 힘들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줄여 가정의 평화가 좀 더 지켜질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법 개정을 통해 유연 근무제가 실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이 돼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좀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들이 같이 동반되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황보 의원은 출산과 육아라는 과제 앞에서 망설이는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애를 낳아서 '어떻게 완벽하게 키울까?' 이럴 생각만 했으면 애도 못 낳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막막하지만 하다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또 있습니다. 옛날보다도 훨씬 좋아졌으니 용기를 내세요. 내가 누군가를 케어해야 될 '아이'라는 존재가, 없는 것보다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 이상의 보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희 같은 여성 정치인들이 어떻게든 제도를 더 좋게 만들 테니까 100% 신뢰하지는 못하겠지만 힘을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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