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치매 걸린 남편을 집에서 간병하는 아내

 

자정이 넘었다. 섣달 칼바람은 동네 어귀 당산나무 밑동까지 벨 기세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나운서들이 연거푸 말한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큰길에서는 남편을 찾느라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려니 너무나 허무하다. 조금 더 참고 이해할 걸. 후회와 회한만이 집안을 메운다. 왜 하필 길에서. 왜 끝까지 상처만 주는지. 지나온 가시밭길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때였다. 시름을 깨는 한 통의 전화기 너머로 귀에 익은 경찰관 목소리다. “할아버지 찾았어요. 몸이 굳어 병원으로 가야 하니 그쪽으로 오십시오.”

응급실에서 마주한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멍하니 앉아있다. 나도 할 말을 잊은 채 그냥 쳐다만 봤다. 집 나간 지 열여섯 시간. 늦은 밥상 앞에서 틀니가 흐를 정도로 밥을 먹는 남편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나이에는 장사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올해 여든인 남편은 이대 독자다. 남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눈,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해도 새벽마다 산소에 문안드리러 갔다. 그런 남편을 보며 백 가지 중에 그 한 가지는 괜찮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그 길이 뜸하다는 것을 알았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젊은 시절 뚜렷한 직장은 없었어도 신문과 책을 손에 쥐고 살았으며 콩 난데 콩 나고, 팥 난데 팥 났으며 총기 백배했던 터라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더욱 안타깝다. 나 역시 늦은 나이까지 인근 병원 치매 병동에서 간병인으로 일했지만, 내 남편은 치매가 아니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정밀 검사도 받지 않았다. 

전화위복이라 했든가. 몇 차례 실종 신고가 이어지는 바람에 관에서 더욱 신경을 써 치매안심센터에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치매 검사를 받고 주간보호센터에 갈 등급이 나왔지만, 때로는 멀쩡한 정신으로 그런 곳에는 안 가겠다 떼를 쓰니 하는 수없이 배우자 요양을 하고 있다. 

늘그막에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도서관 문학 공부, 그림 그리기 등 다 접어야 했다. 어느 날부터는 남편은 옆에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리도 총명하던 사람이 정녕 기억이 없는가. 걸음도 잘 걷고 밥도 잘 먹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워 지켜보는 내가 더 우울하고 아프다. 

나라에서는 물론 관내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이런 아픔을 겪는 환자와 가족들의 질 좋은 삶을 위해 무척 힘을 쓰는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치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자조모임도 있다. 어떻게 하면 환자를 좀 더 수월하게 돌볼 수 있을까 저마다의 경험을 주고받다 보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옷 위에 붙이는 배회기능어르신인식표를 달고 나갔다가 주변 사람의 신고로 찾아왔으며 그저께는 위치 추적기를 차고 백 리 밖까지 갔어도 내 휴대폰으로 감지가 되어 무사히 찾아왔다. 위치 추적기는 자동차 길을 가르쳐주는 아가씨보다 더 똑똑하고 대견스럽다. 

친정엄마도 여든에 치매로 돌아가셨다. 그때는 나라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빈방에 온종일 갇혀 지냈다. 올케가 일하러 나가면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문을 잠근다. 혼자서 밥 먹고 대소변까지 보고는 그것을 손에 쥐고 벽에 바르기도 했다. 하지만 딸자식이 되어 아무런 도움도 못 드렸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엄마는 방에 갇힌 채 쓸쓸히 눈을 감았다.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자 제일 먼저 엄마 생각이 났다. 담당 의사 앞에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웬만하면 방문은 잠그지 않겠다고. 

치매약 값 한 달 4만여원, 그마저 절반을 도움받으니 정말 감사하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에도 약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이 더욱 고맙다. 늘 밖으로 나가려는 행동을 조금이나마 멈추려고 쌀에 쥐눈이콩을 버무려 골라내게 했더니 두세 시간은 집중하기도 해 그사이 잠시 내 일을 본다. 

대낮처럼 밝고 입안에 혀처럼 해결해주는 치매안심센터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다. 비가 그치고 바람을 쐬러 아들 차에 오르는 남편을 보고 손 흔드는 오늘이 그래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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