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우수작]
아기가 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으로 해결책 얻어
안녕하세요 남은 삶 어머니와 알콩달콩 살고 싶은 며느리입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걱정근심이 없는 맑은 영혼을 가진 소녀 같은 분입니다. 꽃과 나비를 좋아하시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시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십니다.
또 어머니는 표현이 예쁘고 섬세하십니다. 작은 새 한 마리 보시더라도, ‘저기 나는 저 기러기 어딜 그리 바삐 가느냐? 나랑 잠시 얘기도 좀 하면서 쉬었다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작은 손녀딸의 화장품에 관심이 많으시고 예쁜 립스틱 하나라도 얻게 되면 좋아하시며 들고 나오십니다. 손거울 들여다보며 예쁘게 발랐다 지우기를 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아버님이 건강하실 땐 어머님과 두 분이서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시면서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작년 6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서 모셔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신 날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병은 내가 잘 아는데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도 고칠 수 있어. 나를 두 살배기 아기 대하듯 어르고 달래고, 내가 뭘 잘하지 못해도 나를 잘했다 해주고, 무조건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그날부터 전쟁은 시작됐습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되고 싶어 하셨고,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집에 오셔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다 해 드려야 했습니다. 요령이 없어서 힘은 몇 곱절 더 들고 치매 어르신을 보살펴 본 적 없던 저는 좌충우돌 부딪치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복지용품이나 기저귀 지원이 될까 하고 주민자치센터에 가서 문의도 하고 해 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가정을 친절하게도 찾아서 똑! 똑! 똑! 문을 두드려 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단원구 치매안심센터 직원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절실했던 저로서는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지원되는 물품도 정말 감사하게 받아서 요긴하게 잘 쓰게 되었고,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에서 헤아림 교육도 듣게 되었습니다. 치매 가족들 자조모임도 참여하게 되면서 저는 밝은 곳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헤아림 교육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니 생활이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헤아림 교육이 제대로 윤활유 역할을 했고 바른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자조 모임에서 과자 한 조각 나눠 먹으며 차 한 잔의 여유로도 힐링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아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르신의 마음도 미약하나마 읽게 되고, 돌덩이 같은 게 억누르고 있던 저의 마음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까 어느새 훌쩍 1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이 시간을 빌려 관계자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담낭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어머니는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가족들이 다 곯아떨어진 새벽에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괜찮겠지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민원이 폭주하고, 아래층에서 올라와 현관문을 발길로 걷어차기도 하고, 결국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머님이 잠시 시설에 가 계시는데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상태가 좀 좋아지시면 다시 모셔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년 넘게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셨기에 시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어머니, 앞으로도 또 함께 살 기회가 생긴다면 삶의 무게를 따지지 말고 알콩달콩 소꿉놀이하듯 그렇게 남은 세상 살자고요. 꽃처럼 곱고 나비처럼 자유롭게 그렇게 남은 시간 보내자고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