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우수작]
건망증 증세에 병원 찾아 치매 초기에 발견한 여성 환자
치매안심센터 인지 향상 프로그램 참여로 진행 속도 늦춰
2013년 4월, 텔레비전 뉴스에서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떠들어대던 그 어느 날이었다. 저녁상 차리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무엇을 꺼내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나이 드니 건망증이 생겼나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후로도 몇 차례 반복됐다. 세상에나 별일이 다 있네. 기억력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고 자부하는데 조금 전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니….
며칠 후 일산 사는 딸이 집으로 왔길래 ‘냉장고 사건’을 무심코 털어놓았다. 딸이 그랬다.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보자’고. 뭐 이런 거로 돈 들여 검사 받느냐고 핀잔을 놨는데 딸이 강권하다시피 해서 서울 강남의 대형 종합병원에 갔다. 결과는 ‘치매’라고 했다.
고집을 부려 다른 병원에 갔다. 그 병원에선 “어르신, 인지 능력이 조금 저하됐네요”라고 했다. 현재 치매는 아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치매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예방약 먹고 인지 향상 프로그램 다니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딸이 계속해서 꼬드기는 통에 만안구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해 나가게 됐다. 처음엔 며칠 나가다가 그만둘 요량으로 응했는데 웬걸, 날 맞이하는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친절하고 어머님, 어머님 하며 살갑게 대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종이접기 수업부터 참여했다. 처음에는 그 수업이 못마땅했다. 내가 유치원생도 아닌데 종이접기라니…. 날 아주 치매 노인으로 간주하는구나 하는 반발심도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하다 보니 재미도 생기고 어느덧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치매를 예방하고 그 진행 속도를 늦춘다면, 아니 치매에 걸렸다 해도 그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해야겠다고 어느덧 스스로를 채근했다.
치매안심센터에 나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대단히 잘한 선택이라 믿는다. 치매안심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점은 인지력 향상 같은 효과에 앞서 늙어가는 인생에 혼자가 아님을,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해준다는 사실이 더욱 좋았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 말도 떠오른다. 나이 들면 아기가 된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순박하니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나는 아이처럼 맑은 심성으로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설령 치매에 걸렸다 해도 비관할 일은 아니다.
여전히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과의 이별을 생각하면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마음 넉넉히 모든 걸 바라보려고 애를 쓴다. 죽음을 우리말로 높여 ‘돌아가신다’라고 한다. 그 말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죽는 게 무섭지 않다.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곧 부활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