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명문화’ 담은 실질적 합의보단
‘협의 수준에 머물 가능성’ 시사 분석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추진되던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이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미국 측이 회담 성격을 ‘정상회담(summit)’이 아닌 ‘양자회담(bilateral meeting)’으로 규정하면서 협의의 위상이 한층 낮아진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APEC 정상회의 기간인 오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 백악관은 줄곧 이를 ‘양자회담’으로 표현했다.
각국의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미국의 세밀한 의도가 이 안에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이 아닌 양자회담으로 명명됐다는 점은 상대국과의 협력을 전제로 한 실질적 합의가 아닌 자국의 실익을 챙기기 위한 협의 수준에 머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알래스카에서 만났을 때는정상회담(Summit)으로 명명하며 푸틴을 러시아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존중했지만,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와의 회담은 양자회담(bilateral meeting)으로 기록하며 차별화를 뒀다.
이는 젤렌스키가 이미 임기를 넘긴 상태로 완전한 민주적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전쟁 해결을 위한 협의라는 실익 차원에서 부른 것임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방미 때에도 마찬가지다. 외교 관례상 새로 당선된 대통령을 처음 공식 초청할 때는 통상 정상회담(Summit) 형식으로 예우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실무 양자회담(Bilateral Meeting)으로 통칭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의 관세 협상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와 미국 실무진들은 한국을 상대로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는 입장을 줄곧 고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대미 관세 완화다.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인 3500억 달러(약 500조원)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총 투자금이 한 번에 집행될 경우 국내 외환시장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투자금 납부 방식과 현금 투자 비중 등에서 국익과 현실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는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 협상 분위기는 냉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4일 귀국하면서 “APEC에서 협상이 타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사실상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기대한 수준의 관세 완화 합의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제계는 이번 협상이 지연될 경우, 한국 수출의 회복세가 둔화되고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대미 관세 완화는 단순한 수출 문제를 넘어 한국 제조업 전반의 이익 구조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며 “타결이 미뤄질수록 기업의 투자·고용 결정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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