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정책실장 브리핑 살펴보니
손실 발생 시 방어 장치 없는 협상
IMF 피하려다 장기 지배받는 역설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발표하며 "수익은 5대5로, 손실 위험은 최소화했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이 포착됐다.
29일 여성경제신문이 한미 관세 협상 내용을 분석한 결과 '5대5 배분'이라는 말부터 함정이었다. 투자 계약에서 수익 배분은 이익이 날 때만 의미가 있어 손실이 나면 배분할 수익 자체가 없기 때문에 책임은 투자 지분에 비례해 돌아간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2000억 달러 현금을 직접 낸다. 반면 미국은 규제 완화, 토지 제공, 세제 혜택 등 비현금 자산으로 참여한다. 겉으론 동등해 보이지만, 위험 구조상 한국이 '현금 선순위 출자자'다. 손실이 나면 한국 기업이 책임진다.
원금 회수가 끝나기 전까지는 손실 보전을 요구할 수도 없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수익이 지연되면, 한국은 이미 달러를 냈지만 돈은 못 받는 상태가 된다. 금융계에서는 투자자가 납입한 자금이 일정 기간 동안 회수 불가능한 상태로 묶이는 '지급 유예 락인(Deferred Payment Lock-in)'이라 부른다. IMF 위기 당시 고위험 대출에서 자주 쓰인 방식이다.
정부는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프로젝트별 SPC(특수목적법인)를 묶는 ‘엄브렐라 구조’를 설계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 프로젝트에서 난 손실을 다른 프로젝트의 수익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건, 곧 건전한 사업의 현금흐름이 부실 사업의 구제금고로 전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엄브렐라 구조라는 이름과 달리 비가 새는 우산에 가깝다.
또한 협상문에는 "20년 내 원리금 회수 불가 시 수익 배분 비율 조정 가능"이라는 조항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안전장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후 협상권일 뿐이다. 만약 수익 회수가 불가능해진 시점이 20년 뒤라면 손실의 현재 가치는 거의 0이다. 한국은 법적으론 권리를 갖지만 실질적으론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또 이자율을 올려도 현금은 안 들어온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자율을 높여 수익성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회계상 평가 이익에 불과하다. 실제 현금 유입 없이 추정 수익률만 올리면, 손실이 누적될수록 계산상 이익률만 높아지는 역설이 생긴다.
미국은 프로젝트 실패 시 세제 감면, 보험 공제 등으로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투자자 신분으로 손실을 직접 부담한다. 손실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줄고, 대외 신용도에도 악영향을 준다. 미국은 세금으로 손실을 커버링할 수 있지만 한국은 외환보유고로 메우는 구조다.
직접투자 한도를 연 200억 달러로 잡은 것도 안정장치가 아닌 유동성 회수 스케줄에 가깝다. 한국이 일정 주기로 달러를 투입해야 하는 구조라면, 중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은 줄고 원화 약세로 인한 환율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김 정책실장은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투자한다"고 했지만, 문제는 손실 발생 시 한미가 공동 대응할 위원회 구성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만약 손실이 나면 미국은 "사업 위험은 한국의 투자 결정"이라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법적으로 미국은 조언자, 한국은 투자자 지위에 놓인다.
결국 이번 협상은 IMF를 피하기 위한 거래처럼 포장됐지만 실제론 유동성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는 협정으로 읽히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은 '투자자'로 참여한 게 아니라 '보험자' 역할이었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이익은 절반, 손실은 전부라는 게 진짜 5대5의 의미"라며 "직접투자를 줄이려다 단독 보증을 서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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