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직접투자 얼마나 낮출지
투자처 선정·수익 배분은 어떻게 할지
A부터 Z까지 베일에 싸인 관세 협상

한미 관세 협상이 물밑 조율을 이어가고 있지만, 직접투자 비중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투자처 선정이나 수익 배분은 어떻게 가져갈지 등 핵심 내용에 대해선 공유되지 않는 ‘깜깜이 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한국 정부의 ‘국가 투자’가 아니라 삼성전자,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한화 등 민간의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조율 부재로 인한 피해는 협상 당사자가 아닌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2일 “우리나라 국익에 최선이 되는 협상안을 만들러 간다”며 “한미 양국 간 의견이 많이 좁혀졌지만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한두 가지 분야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합의문이 도출될 것이란 전망에는 “쟁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어떤 특정 시점까지 합의된 내용을 가지고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은 정부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정부가 신중론을 보이고 있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관세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유럽연합 6500억 달러, 일본 5500억 달러, 한국에서 3500억 달러를 받았다”며 마치 한국과는 협상이 끝난 것처럼 발언했다.
그의 성급한 성미에 실수로 발언한 것인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발언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정부는 관련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가 중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한국과는 협상이 끝난 것으로 규정하면서 ‘압박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중요한 점은 트럼프와 미국 측이 계속해서 ‘대미 3500억 달러 투자’를 협상의 핵심 수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금액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단순히 돈의 액수가 아니라,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가’다. 한국 정부는 “일시불 지급은 불가능하다”고만 선을 그었을뿐, 현금 투자인지, 정부 보증인지, 민간기업의 미국 내 설비 확충인지, 아니면 단순한 MOU인지조차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국가 경제를 좌우할 거대한 숫자만 오가는 사이, 구조와 조건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만약 정부 보증 형태로 진행된다면, 외환보유고나 국가신용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 약속이 장기 프로젝트로 변하면, 미래 정부와 기업이 지속적으로 의무를 지게 될 수도 있다. 협상의 방향 하나가 산업 구조와 재정에 장기적인 부담을 남길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협상 과정은 철저히 폐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회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시민은 협상 내용은커녕 협상의 틀조차 알 수 없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실무진이 워싱턴으로 떠나고 돌아오는 사이, ‘APEC 전 타결’이라는 속도전만 강조된다”며 “국민은 결국 사후 통보만 받게 되는데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인 설명과 동의가 실종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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