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단기 거주·체험 프로그램 확산
귀국 유도하지만 실생활 지원 부족
정주 환경 갖춘 실버타운 입주 증가

고령 재외동포의 역이민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정착할 기반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거·의료·커뮤니티를 갖춘 실버타운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구글 제미나이
고령 재외동포의 역이민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정착할 기반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거·의료·커뮤니티를 갖춘 실버타운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구글 제미나이

# 40년간 미국에서 살아온 박모 씨(70)는 은퇴 뒤 역이민을 결심했다. 나이 들수록 병원 찾는 일이 늘었지만 임플란트 하나에 300만원 훌쩍 넘는 의료비는 부담이었다. 여생은 음식과 언어가 익숙한 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마음 한 편엔 40년 새 달라졌을 한국 행정 업무와 생활 시스템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고령 재외동포의 역이민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정착할 기반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거·의료·커뮤니티를 갖춘 실버타운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1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구 감소에 직면한 지자체들은 재외동포 귀국을 유도하기 위해 ‘한 달 살기’나 숙소 제공, 해외 설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다만 정착으로 이어지기 위한 지원 체계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의료 접근성, 생활 적응 지원, 지역 내 교류를 아우르는 정주 기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지난해 역이민자(영주 귀국자) 1566명 가운데 60대 이상은 881명(56.3%)이었다. 만 65세 이상 재외동포는 국적 회복을 통해 복수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다. 향수뿐 아니라 의료·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자체별 역이민자 유치 전략 사업 사례 인포그래픽 /챗GPT
지자체별 역이민자 유치 전략 사업 사례 인포그래픽 /챗GPT

지자체들은 이러한 흐름을 지역 인구 확대로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경남도는 시군별 ‘한 달 살기’ 같은 장기 체류 프로그램에서 재외동포를 우선 선발하고 공항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강원 원주시는 지난달 호주 재외국민 20명을 초청해 ‘원주에서 살아보기’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지역 명소를 둘러보고 상지대학교와 협력한 역이민 절차·자산·건강관리 등 교육도 수강했다.

해외 현지에서 직접 교민을 찾아 홍보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도는 미국·일본·베트남 등 7개국에 설치한 해외 사무소를 통해 교민과 접촉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내포신도시 홍보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미분양 주택을 재외동포에 공급하고 장기적으로 역이민자 대상 시니어타운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입국 초기 적응을 돕는 지원 체계도 일부 갖춰지고 있다. 법무부는 7월 전국 비영리단체 23곳을 동포체류지원센터로 지정해 취업·주거·의료 정보 제공, 고충 상담 등을 맡겼다. 이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의료 접근성, 재취업 지원, 교류 네트워크 등 생활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주 요건을 갖춘 모델로 실버타운이 주목된다. 주거와 의료, 커뮤니티 기능이 결합한 단지형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천 청라에 위치한 ‘더시그넘하우스’는 전체 입주민의 약 20%가 역이민자다. 직원 중 15년간 해외에 살다 귀국한 역이민자가 있어 입주 초기 불편을 세밀하게 안내한다. 은행·행정 업무 동행, 생활 안내 교육 등을 통해 한국 생활 적응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관련 기사: [실버타운 2.0] (33) 역이민·중산층·경증 요양자까지···더시그넘하우스 청라의 포용 전략

이처럼 역이민 흐름은 기존 실버타운을 중심으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 교민들이 직접 입주를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자체가 역이민자를 대상으로 인구 유치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며 “오히려 기존 실버타운이 유튜브·SNS 등 홍보를 통해 해외 교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해외에 거주하던 노년층이 직접 문의해 입주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부산 오시리아나 서울 르웨스트 등에서도 적게는 1~2%, 많게는 5% 가까이가 역이민자 또는 그로 추정되는 입주자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자체 차원의 단기 체험 프로그램이나 미분양 주택 제공만으로는 정착이 어렵다”며 “해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지역 네트워크와 생활 인프라가 부족해 단기 임대만으로는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착을 유도하려면 노인주택 단지가 조성돼 있고 1~2개월 체험 입주를 통해 ‘살아보니 괜찮다’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역이민자 유치를 목표로 새로운 (실버타운) 시설을 짓기에는 투자 부담이 크다”면서도 “그럼에도 시장 수요는 분명 존재하므로 지자체가 해외 고령층을 활용한 인구 유지 전략을 검토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