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무더위를 쫓아내고 찾아온 계절
텃밭에 심은 가을 김장용 무·배추
뿌린 씨앗을 키워내는 한 줌 흙
자연 혜택에 무한 감사와 경외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더위가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함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아나 싶다. 기후 온난화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 여름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그러나 고맙게도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온다. 그동안 텃밭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봄에 갖가지 푸성귀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던 텃밭이었다. 무공해로 가꾼 신선한 채소를 식탁에 올려 마음껏 즐겼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침 일찍 수확한 상추와 고추, 토마토 등 식재료를 먹는 재미에 텃밭 가는 길은 늘 재미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른 봄에 심은 텃밭 식구들은 갈 때가 되었다는 듯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이제 농부들은 가을을 준비해야 했다. 8월 12일쯤 여름작물을 모두 뽑아내고 밭을 갈아엎는 작업을 했다. 가을 김장용 무, 배추를 심기 위해 거름과 비료가 밑거름으로 뿌려졌고 1주일 이상 가스를 빼는 기간을 거쳤다. 8월 20일쯤 비닐을 씌워 구멍을 뚫고 무 씨앗을 파종했다.
무는 모종을 하지 않고 씨앗을 한 구멍에 3~4개씩 넣어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하나를 남기고 솎아 낸다. 주의할 것은 어린 무 싹은 옮겨 심으면 안 된다. 씨 뿌린 자리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 참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 싶다. 무씨는 뿌린 지 3~4일이 지나면 파란 싹을 내밀고 올라온다. 어린싹은 무엇이든 귀엽고 예쁘다. 살며시 세상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흙을 헤집고 나와 고개를 쏙 내민다.

가을 김장의 쌍두마차 배추는 반드시 모종을 사다 심어야 한다. 올해는 특별히 속이 노랗고 고소하다는 황금 배추 모종을 심기로 했다. 무씨를 뿌리고 열흘이 지난 8월 30일쯤 배추 모를 사다 심었다. 성내천 변에는 송파구청에서 분양하는 솔이 텃밭이 있어 모종을 파는 꽃집이 모여 있다.
텃밭은 무와 배추로 다시 한번 변신을 했다. 이제 적절한 수분과 햇볕만 있으면 무럭무럭 자라 굵은 무와 배추가 될 것이다. 열매채소 중 가지는 가을까지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가을 가지가 많이도 달리고 맛도 있다. 쪼개어 햇볕에 말렸다가 나물 등 요리를 해 먹으면 좋은 식재료가 된다.
그래서 가지는 텃밭 한가운데 심지 않고 맨 끝 한쪽에 심어야 한다. 가을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을 때 밭을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텃밭을 해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가을 김장용 무 배추를 심을 때 뽑지 않은 낯선 작물 하나가 있다. 내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 특별한 새 식구 토란이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는지 우리 밭 한쪽 편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다. 내가 뿌리지 않았는데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어디서 밭 주인 사람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같다.
귀한 손님이기에 그냥 두니 굵은 줄기와 넓은 이파리를 마음껏 키우며 내 집인 듯 자라고 있다. 토란은 칼륨이 풍부하고 혈관 건강과 고혈압 예방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소고기 토란국을 해 먹기도 하고 줄기는 말려 들깨 나물이나 육개장 등 탕국에 넣어 먹기도 하니 복이 덩굴째 굴러온 것이다.
무와 배추는 15~20일이 지나니 무성하게 자라난다. 배추도 제법 자라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내어 모양을 갖추었다. 무는 특별히 생명력이 강하다. 땅에 씨만 뿌려 놓으면 싹이 나오고 잘 자란다. 병충해에도 강해 키우는 데 별 어려움도 없다.
텃밭을 하면서 늘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온갖 씨앗을 말없이 받아주고 키워내는 한 줌 흙이다. 적절한 수분과 온도만 있다면 흙에 뿌린 씨앗은 자라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흙 한 줌이 텃밭을 해보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흙이 없었다면 과연 어떤 생명이 발붙이고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자연이 주는 혜택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사람도 흙과 같은 마음을 닮아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이로운 존재로 살다 가야 할 것 같다. 올 한 해도 텃밭에서 많은 채소와 과실을 얻었듯 가을 김장도 별 탈 없이 잘 거두어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여성경제신문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jsp10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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