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서로 어울려 사는 텃밭에 가면
나도 자연의 한 일원이 되고
이웃과 가족도 서로 함께하는
즐거운 소통의 장소가 된다

직장 다니며 떨어져 살고 있는 딸이 점심을 같이하겠다며 찾아왔다.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아내가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두부김치 요리를 했다. 딸은 조개탕을 끓여주겠다며 모시조개와 홍가리비 등을 준비해 왔다. 얼큰한 두루치기의 매콤한 맛에 시원한 조개탕은 조합이 잘 맞는다.
이렇게 먹을 때는 어느 고급 집 요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내가 익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딸도 자신이 좋아하는 조개탕을 끓여 멋진 솜씨를 선보였다. 가족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먹는 식사가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저녁 무렵 텃밭에 가기로 했다. 텃밭은 성내천 근처에 있어 걸어가면 편도 40분 정도 걸린다. 평소 혼자서 자전거 타고 텃밭을 관리해 왔는데 딸이 먼저 가자고 나섰다.
“아빠 텃밭도 좀 보고 소화도 시킬 겸 우리 걸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혼자보다는 가족이 함께 가는 텃밭은 더 즐겁다. 성내천 근처의 주말농장은 100여 가족이 서너 평씩 자른 땅을 분양받아 주말농장으로 가꾸는 곳이다. 구청에서 관리하는 땅도 있고 개인이 분양하는 땅도 있는데, 도심 가운데서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구청에서 관리하는 곳은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근처 개인이 분양하는 땅을 분양받아 짓고 있다. 서너 평 작은 땅이지만 텃밭에는 갖가지 종류의 채소가 자란다. 상추만 해도 적상추, 청상추, 로메인 등이 있고 시금치, 아욱, 근대, 치커리, 쑥갓, 당귀, 겨자, 깻잎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한쪽 옆에는 가지, 토마토, 고추 등 열매채소가 달린다. 이들 열매채소는 밤새도록 체중을 불린다.

텃밭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주말농장을 하는 가족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풀을 뽑고 채소에 물을 주느라 바쁘다. 우리 밭도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소가 밭을 가득 채웠다. 우리 가족도 종류별로 채소를 뜯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풀을 뽑아주고 열매채소의 곁가지를 쳐주고 웃자란 가지에 끈을 묶어주는 작업을 했다.
엊그제도 채소를 뜯어 이웃에 나누어 주었는데, 며칠 밤새 채소는 또 이렇게 커져 있다. 텃밭은 주인이 자는 사이에도 쉬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뜯어먹으면 또 자라고 갈 때마다 달라져 있다.
텃밭을 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함께 어울려 사는 정다운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좁은 장소에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여러 종류의 다른 개체들이 함께 자라며 자신의 몫을 다한다. 잎과 몸을 내주고 자신이 만들어낸 열매까지도 다 내어준다.
텃밭은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언제 와도 좋다. 텃밭에 오면 나도 이들처럼 자연의 한 일부가 된다. 각각 수명이야 다르지만 이 땅에 왔다 가는 생명이야 무엇이 다를까 싶다.

겨울이 지나 초봄에 마른 땅을 일구어 밭을 가꾸었을 때 땅은 황무지 그 상태였다. 거름 주고 흙을 골라 씨를 뿌리고 싹이 나니 밭은 황무지에서 푸른 초원이 되었다. 봄은 그렇게 죽어있는 땅을 살려서 푸른 초원을 만들었다.
푸른 채소가 밭을 덮자 나비와 달팽이, 그리고 벌레들이 찾아 든다. 싱싱한 잎을 먹자고 달려든 것이다. 상추에는 무슨 연유인지 벌레들이 잘 달려들지 않는데 양배추와 겨자는 이파리가 남아나지 않는다.
특히 양배추는 이파리와 똑같은 색깔의 벌레들이어서 잎을 갉아 먹어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겨자는 다른 채소와 달리 특유의 맛이 있는데 어떻게 그 잎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겨잣잎은 벌레들의 식량으로 넘겨줘야 했다.
텃밭은 이웃들과의 대화의 장소이기도 하다. 텃밭에 심은 종류도 다양해 구경삼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밭 저 밭 둘러보면 이야깃거리가 있다. 텃밭이란 공통 주제가 있어 다양한 화제를 나누곤 한다. 가끔 부족한 것은 서로 주고받기도 하며 친목도 다진다. 가져온 커피도 한 잔씩 나눠마시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성내천 둑을 따라 산책 나온 사람들이 오가며 텃밭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텃밭의 채소며 열매채소 등 수확물이 오늘도 푸짐하다. 아빠가 가꾸어 놓은 텃밭을 딸도 보고 싶었나 보다. 평소에도 즐거운 길이었는데 오늘은 딸이 함께해서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여성경제신문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jsp10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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