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 (19)
변하지 않는 과잉 매력, 로마
철학과 관절

로마인의 애증 대상이었던 카이사르 시저의 동상 /사진=박재희
로마인의 애증 대상이었던 카이사르 시저의 동상 /사진=박재희

드디어 로마! 다시 로마에 왔다. 로마는 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다. 돌 하나에도 수천 년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곳이지만, 내게 이 도시의 얼굴은 늘 ‘시저’다. 코너를 돌면 튀어나올 듯한 카이사르, 시저를 뺀 로마는 상상할 수 없다. 

처음 로마에 온 건 25년 전. 무겁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두툼한 ‘론리 플래닛’ 책을 껴안고 걸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여행이 해결되지만, 그때는 손때 묻은 가이드북이 성서였다. 발에 물집이 잡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걷던 시절. “100m 앞에서 좌회전하세요”라며 친절하게 알려주는 구글맵은 없었다. 길을 물으면 현지인이 성의 없이 손가락만 까딱거려도 그게 또 로마의 친절이라고 감탄했다. 그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지만, 그렇기에 더 뜨겁고 진심이었던 시절이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사람들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기를 빈다. /사진=박재희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사람들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기를 빈다. /사진=박재희

로마를 다 보기도 전, 나는 트레비 분수부터 찾아가 동전을 던졌다. 분수는 바글바글했고 내 주머니 사정은 초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다는 소망을, 분수 속 동전 하나에 실어 던졌다.

그리고 25년이 흘러,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사진이라면 넋을 잃는 후니와, 와이파이가 없으면 숨도 못 쉬는 미 선배가 함께다. 나는 미처 몰랐다. 그때 동전을 세 개나 던진 게 이렇게 동행까지 소환할 줄은.

로마는 벅차고 숨찬 도시다. 한 걸음만 걸어도 “이건 놓칠 수 없다”는 장소가 줄줄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는 콜로세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던 원형경기장은 지금도 건재하다. 검투사들의 비명, 황제의 엄지손가락, 사자의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내 귀에 먼저 들려오는 건 중국 관광객의 셀카봉 휘두르는 소리와 미국인들의 “Oh my god!”이다. 황제의 손가락이 좌우로 흔들리던 자리에 지금은 셀카봉이 치솟는다. 로마는 늘 변주한다.

콜로세움 옆에는 포로 로마노. 로마 제국의 정치와 종교, 경제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돌무더기와 잡초뿐이지만, 당시 원로원 의원들이 걸었을 그 길에 내가 서 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걷던 그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대신 관광객들이 구글맵을 보며 허둥대고 있다.

그 뒤로는 팔라티노 언덕이 솟아 있다. 로마 건국의 전설 속 주인공 로물루스가 움막을 짓고 살던 곳. 25년 전 나는 언덕에 서서 ‘문명의 시작점에 내가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을 반짝이며 ‘벤치가 어디 있나’만 찾았다. 세월은 감상법을 바꾼다. 그때는 철학이었고, 지금은 관절이다.

로마는 광장과 분수의 도시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은 여전히 영화 <로마의 휴일>의 무대처럼 빛난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처럼 아이스크림을 들고 앉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사랑의 도시 로마가 유일하게 용납하지 않는 건 ‘계단에서 젤라토 먹기’다.

판테온은 말 그대로 신들의 집이다. 20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거대한 돔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무보강 콘크리트 돔이다. 한 줄기 햇빛이 천장의 오큘루스를 뚫고 들어오는 장면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25년 전 나는 감동에 겨워 한참을 서 있었다. 이번에는 사람에 떠밀려 몇 분 만에 나와야 했다. 감동보다 셀피봉이 더 강력했다. 사실 나도 그 인파의 일부였으니 할 말은 없다.

나보나 광장은 바로크 시대의 과시가 응축된 공간이다. 베르니니의 ‘4대강의 분수’가 중앙에 자리하고, 그 주위를 예술가와 관광객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로마는 언제나 ‘쇼’를 좋아했다. 황제 시절엔 전차 경주, 지금은 관광객의 포즈. 로마의 DNA는 변하지 않았다.

로마에 와서 바티칸을 빼놓을 수 없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자체로 신앙과 건축의 극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앞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슬픔이 밀려온다. 조각 속 마리아의 손길은 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목이 아프도록 천장을 올려다봐야 한다. 아담과 하느님의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이어진 장면. 25년 전에는 감동으로 목이 아팠다. 이번에는 목 디스크가 걱정돼 아팠다. 감동은 그대로인데, 목의 사정이 달라졌다.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의 계단 /사진=박재희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의 계단 /사진=박재희

내게 이번 로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산탄젤로 성이다. 25년 전, 나는 이곳을 놓쳤다. 늘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장소. 원래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였던 이 건물은 중세에는 교황의 피난처가 되었고,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한다. 전염병을 막아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성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며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2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다리 위에서 마주 서는 것 같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지만, 놓쳤던 순간을 다시 만날 기회는 이렇게 찾아온다. 로마는 특유의 방식으로 시간을 선물한다.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른다는 ‘진실의 입’에 다시 들렀다. 중세에는 거짓말쟁이의 손을 잘라버린다고 믿었던 조각상. 25년 전엔 몇 명만 기다리면 내 차례가 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관광버스가 쏟아낸 인파에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이건 더 이상 ‘진실의 입’이 아니라 ‘인내심의 입’이다. 나는 솔직히 거짓말쟁이보다 줄 서기를 더 못 견딘다. 손은 넣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로마 제국 최초의 도로, 아피아 가도. 군단은 이 길을 따라 제국을 확장했다. 그런데 그 아피아 가도 위에 서 있는 맥도날드가 있다. 로마의 길 위에 지금은 빅맥과 치즈버거가 출격한다.

후니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 유적을 확인하며, 나는 햄버거 포장지를 들고 시저처럼 중얼거렸다.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25년 전처럼 이번에도 로마의 거의 모든 식사를 맥도날드에서 해결했다. 당시에는 ‘배낭여행자의 절약’이었다면 지금은 식당을 찾아 헤매는 노력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체력 안배 전략’이다.

달라진 점은 또 있다. 5유로짜리 젤라토를 망설임 없이 먹고 후니와 미 선배에게도 사주었다. 1유로에 벌벌 떠는 여행자라도 젤라토에는 씩씩하게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피로를 달콤하게 녹이는 젤라토, 그게 없다면 여행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몰 직후의 산탄젤로성 /사진=박재희
일몰 직후의 산탄젤로성 /사진=박재희
산탄젤로성은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한다. /사진=박재희
산탄젤로성은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한다. /사진=박재희

저물녘까지 걷고 또 걷다 숙소로 돌아왔다. 이름만은 근사한 ‘패뷸러스 빌리지’. 현실은 개미와 동거하는 캠핑장이었다. 모기는 없지만 개미 군단이 들끓었다. 개미 떼로 괴로웠지만, 모기는 없다는 사실에 “나름 패뷸러스하다”고 위안했다. 로마에조차 완벽이란 없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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