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 (17)
복숭아에 이끌려 도착한 중세
고대부터 내려온 지하 세계로
토스카나의 초원을 달리다가 위험할 정도로 급하게 차를 세워야 했다. 어째서 이탈리아의 과일은 이렇게 유혹적일까? 가게나 트럭이나 할 것 없이 과일이 보이도록 진열해 둔 곳을 만날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 복숭아야. 더없이 달콤하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복숭아에 끌려 차를 세웠고 그 옆에 있던 향긋한 체리까지 한 박스 사버렸다.
오르비에토 표지판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모처럼 세차를 했다. 흙먼지로 덮여 원래 색깔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의 차를 끌고 고결한 도시 오르비에토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5유로짜리 자동 세차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최신식 세차기를 통과하며 우리의 21세기 마차는 반짝반짝해졌다.
“오르비에토 중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밥을 먹는 게 어때?” 우리는 시에나 도심에서 잘 데운 음식물쓰레기 같은 걸 먹어야 했던 악몽을 떠올리며 역사 지구 탐방을 시작하기 전에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가장 맛있다는 평점의 식당을 찾아갔다. 메뉴를 번역기로 스캔하자 “삶은 감자와 쇠고기의 깊은 우정”이라는 번역이 나온다.
일제히 쇠고기 스테이크와 뇨키를 주문했다. 감자와 쇠고기의 우정이라니… 철학적인 번역이었는데 실제로 정확했다. 마무리 티라미수까지 주문한 모든 것이 입에서 사르르 녹았고, 피로도 녹았다.
이름부터 거창하고 고풍스러운 오르비에토는 까마득한 언덕 위에 떡하니 자리 잡은 도시다. 중세시대 교황들이 정치적 혼란을 피해 피난처로 삼은 곳이기도 하고, 13세기에 일어난 성체 성혈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을 지었을 정도로 종교적 의미가 깊다.
우리는 관광 열차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문제는 오디오 설명에 한국어가 없어 영어로 들어야 했다는 것. 미리 도시의 역사를 읽은 덕분에 ‘기분상 알아듣는 척했지만 사실 심오한 내용이란 모름’이다. 기적, 교황, 대성당이란 단어만 건져 들으며 풍경을 감상했다.
사실 오르비에토의 진짜 매력은 언어 없이도 피부로 느껴지는 그 고유의 분위기다. 도시의 골목들은 마치 조각가가 설계한 것처럼 곡선미를 자랑했고, 하늘은 도자기 타일처럼 푸르렀다.

관광열차는 오르비에토의 왕관, 산타 마리아 대성당(Duomo di Orvieto)에 도착했다. 대리석의 벽이 빛을 받아 빛나는 성당은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라 불린다. 나는 고딕이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엄청나게 뾰족하고 위엄 있어 보이면 고딕이라 생각한다.
이건 아주 고딕이었다. 최고급으로. 성당은 300년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로, 성당의 프레스코화는 ‘죽기 전에 봐야 할 예술’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성당의 정면에는 황금빛 모자이크와 조각상 152개가 정렬되어 있었고, 가운데 장미창은 오후 햇살을 타고 색색의 빛을 쏟아냈다. 대리석의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는 시에나 대성당을 닮았지만, 좀 더 기묘하고 신비한 느낌이다.
성당으로 들어가 ‘최후의 심판’을 그린 프레스코화를 보며, 잠시 심판받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루카 시뇨렐리라는 작가가 500년 전에 그린 작품이었는데,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옆에 있는 코르포랄레 예배당에는 피가 묻은 천 조각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이 1263년에 실제로 성체에서 피가 흘렀다는 성체 성혈의 기적 증거라고 했다. 기적을 믿든 말든 간에, 피 묻은 천은 일단 놀랍다.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진짜일까? 아니면 중세판 마케팅?”
그러나저러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각들이다. 천사, 사도, 그리고… 소가 조각되어 있었다. 소! 그래, 소다. 중세의 신앙과 농경의 삶이 어딘가에서 맞닿은 흔적이었을까? 천주교가 아직 교조화되기 전, 다신교의 사상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뭐 그냥 성당의 건축가가 소를 좋아했을까? 세상에… 성당에 소라니…

오르비에토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산 파트리치오의 우물이다. 교황은 혹시라도 도시가 포위되었을 때를 대비해 물이라도 길어올 수 있게 우물을 파게 했다. 우물은 나선형으로 돌며 내려가는 구조고, 나선형 계단이 두 줄로 뻗어 있어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설계됐다.
위에서 보면 마치 디지털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성당에서 경건한 감동을 받은 후에, 우물에서 '교황도 물 걱정은 한다'는 사실에 묘하게 인간적인 위로를 받았다.
오르비에토는 깎아지른 언덕에 지은 도시지만 지하도시도 있다. 가이드와 함께 비밀스러운 문을 지나 내려가면 서늘한 공기와 함께 에트루리아 시대의 흔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 시절부터 만들어진 1200개 이상의 동굴과 터널이 도시 아래에 존재하는 것이다.
천장이 낮은 터널, 돌로 만든 올리브 압착기, 그리고 벽면 가득한 비둘기 둥지용 구멍들. 중세에는 이곳에서 비둘기 사육, 와인 저장, 쓰레기 처리까지 했다고 한다. 완전한 지하 생태계다.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중세에는 와인 저장소로 쓰이고 전쟁 중에는 피신처가 되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에는 방공호로 사용되었다. 가이드는 지하 세계가 지상보다 더 넓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투어를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자 햇빛이 반짝였고, 오르비에토는 다시 평화롭고 여유로운 도시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걸어 다니는 돌길 아래에 고대의 기술과 중세의 긴장으로 얽힌 동굴이 있고 수천 년의 흔적이 쌓인 생존의 공간이자 인류의 기억 저장소가 자리하는 것이다.
오르비에토는 토스카나 여행의 마지막 도시다. 아쉬움을 사진 1000장으로 대신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마음속에서 “다시는 이런 풍경 못 볼지도 몰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현실적으로야 단지 다음 도시로 이동일 뿐이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늘 과장을 좋아한다. 셀카를 찍고 또 찍었다. 정면으로 찍으면 예술 작품 같았고, 옆으로 찍으면 다큐멘터리 같았지만, 어쨌든 오르비에토는 너무 입체적인 도시라 사진엔 담기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볼세나 호수 근처의 캠핑장에서 여장을 풀었다. 샤워하려면 1유로짜리 동전이 두 개나 필요하다는 사실에 잠시 화가 났지만, 고요하고 넓게 펼쳐진 캠핑장 풍경에 금방 화는 누그러졌다. 호수는 바다처럼 광활했고, 노을은 명화처럼 고요하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관련기사
- [박재희 더봄] 시에나의 숨멎 순간들과 염소의 눈빛
- [박재희 더봄] 시에나, 신을 향한 붉은 도시
- [박재희 더봄] 돌탑의 중세 맨해튼에서 미슐랭을 먹고 50센트 샤워하기
- [박재희 더봄] 3천년 고대도시, 볼테라의 바람 언덕
- [박재희 더봄] 지옥을 창조한 단테, 억울한 천재 마키아벨리
- [박재희 더봄] 공포와 교감 사이, 대형견 공포증 치유기
- [박재희 더봄] 하늘로 향한 이탈리아 공중도시, 바뇨레뇨
- [박재희 더봄] 숨차고 벅찬 로마, 25년 만의 귀환
- [박재희 더봄] 티볼리, 신화와 분수 그리고 빨래
- [박재희 더봄] 나폴리는 뭐다? 나폴리는 피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