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필의 The 건강]
이계호 충남대 명예교수 물 발언 논란
한국에 퍼진 '물 2L 마셔야 건강' 신화 맹신
정상인은 몸이 갈증 조절해 무의미한 논쟁

“하루에 물을 2L 이상 마시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최근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이계호 충남대 화학과 명예교수의 발언이 물 섭취량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건강 먹거리 전문가로 알려진 이 교수는 “마라톤 선수가 물을 많이 마시다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이유는 저나트륨혈증 때문이다”며 “물이 갑자기 몸에 많이 들어오면 몸속 전기 발생량이 줄어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건강을 위해 하루 2L씩 물을 꾸준히 마셨는데 줄여야 하느냐”는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일부 의사들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이에 이 교수는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에 출연해 “물을 많이 마실수록 좋다는 믿음이 퍼져 있는데, 내 말의 핵심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물 2L 권장, 어떻게 시작됐나
‘하루 물 2L 마시기’는 한동안 건강 상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상식은 1945년 미국식품영양위원회의 발표 내용이 왜곡되어 알려지면서 비롯됐다. 당시 위원회는 음식물을 포함해 하루 약 2L의 수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물 2L를 마셔야 한다’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져 국민 건강 캠페인처럼 전파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억지로 물 8잔을 마시며 ‘물배’를 채웠지만 실제로는 크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물 2L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2L가 위험하다”는 주장이 더해져 혼란이 커졌다. 그렇다면 물은 어떻게 마셔야 할까?
물은 우리 몸의 60~70%를 차지하는 필수 성분이다. 혈액 속에서 영양소와 산소를 나르고, 땀과 피부 증발로 체온을 조절하며 대사와 노폐물 배설에도 관여한다.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전해질 조절이다. 전해질은 물에 녹아 전기를 띠는 이온으로 분리되는 물질인데 농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으면 피로, 근육 경련, 심장 박동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소금(NaCl)은 물에 녹으면 나트륨(Na⁺)과 염화물(Cl⁻)로 분리되어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물을 지나치게 마셔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크게 낮아지면 저나트륨혈증이 생겨 뇌 부종, 호흡곤란, 실신,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일반인이 하루 2L를 마신다고 해서 사망까지 가진 않고 4~5L를 짧은 시간에 마셔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마라톤이나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에서 참가자가 단시간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셔 저나트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콩팥의 정밀한 수분 조절
정상적인 상황에서 체내 수분은 콩팥이 정밀하게 조절한다. 수분이 부족하면 소변을 하루 500mL 이하로 줄이고, 반대로 많으면 12L까지 배설할 수 있다고 한다. 성인의 체내 수분은 생리적으로 체중의 0.2%라는 좁은 범위에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70kg 성인이라면 약 140mL의 범위 안에서 조절되는 셈이다. 그래서 1L를 마시든 2L를 마시든 몸은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배출한다. 물이 부족하면 갈증이 생기기 때문에 억지로 기준을 맞출 필요도 없다. 결국 물 2L는 마셔야 할 이유도 마시면 안 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권장 기준은 어떨까? 인체는 하루 2~2.6L의 수분을 필요로 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음식으로 충당되므로 나머지를 물로 보충하면 된다.
한국영양학회의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19~64세 남성의 하루 수분 충분 섭취량은 2.2~2.6L다. 음식으로 1.2~1.4L를 섭취하므로 물은 1~1.2L(4~5컵)면 충분하다. 75세 이상 고령자는 하루 2.1L가 충분 섭취량인데 식사로는 약 1L만 섭취하므로 1.1L는 물로 보충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10~20% 적게 섭취하면 된다.
물은 죄가 없다
단 저나트륨혈증이나 간경화·신부전·심부전 환자는 과도한 수분 섭취가 복수, 폐부종, 전신 부종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해야 한다. 또 노년층은 콩팥의 재흡수 기능이 떨어지고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매시간 소량씩 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물 2L를 마셔야 한다”, “그렇게 마시면 죽을 수 있다.” 이런저런 해석과 주장 속에서 물은 빈번히 도마 위에 오르지만 사실 물은 묵묵히 우리 몸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물은 죄가 없다. 우리가 물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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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kpkim62@gmail.com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월간 <여성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행복플러스 섹션 편집장,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지냈다. 현재 의학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주간조선> 등 다양한 매체에 의학 기사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