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금융지원··美산업 재건 보조금 전락
생산성·노동 유연성, 韓보다 美가 우위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오른쪽)는 5월 16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한·미 조선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HD현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오른쪽)는 5월 16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한·미 조선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HD현대

HD현대가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 규모로 참여하기로 하면서 한국 제조업의 ‘미국 쏠림’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생산성만 놓고 봐도 한국보다 유리한 환경을 가진 미국 시장에 직접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작용한 데다, 규제 환경 역시 한국보다 낫다는 경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HD현대는 25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제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서버러스 캐피탈, 산업은행과 함께 미국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MOU를 체결했다. 이재명 대통령 방미 경제 사절단에 포함된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미국 조선업 현대화·첨단화에 기여하겠다”며 “동맹국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 프로그램은 미국 내 조선소 인수·현대화, 해양 기자재 공급망 강화, 자율운항·AI 등 첨단 기술 개발 등을 골자로 한다. HD현대는 기술 자문과 투자 검토를 맡아 앵커 투자자 역할을 한다. 미국 자본은 운용을, 한국산업은행은 구조 설계를 담당한다.

한국 측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와 연계해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대출·보증 방식으로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 펀드는 미국이 소유·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직접 선택하는 투자”라고 못 박았다. 러트닉 상무장관도 “펀드 이익의 90%는 미국인들에게 간다”고 했다.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포장된 ‘한미 공동투자’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돈을 대고 미국이 이익과 통제권을 챙기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책금융이 미국 산업 재건을 위한 보조금으로 쓰이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생산성 측면에서도 미국을 따라가기 어렵다. 미국은 노동 유연성과 규제 완화로 대형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빠른 반면 한국은 파업과 인건비 압박, 복잡한 절차로 경쟁력이 낮아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를 한국에 더 짓는 것보다 국내 조선소는 MRO(유지, 보수, 정비)로 돌리고 미국 현지 생산이 효율이 높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독 안에서 건조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메인 엔진 2기가 탑재될 부분이 비어 있어 '쌍축선'임을 알 수 있다. /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독 안에서 건조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메인 엔진 2기가 탑재될 부분이 비어 있어 '쌍축선'임을 알 수 있다. / HD현대중공업

법제 환경도 한국은 불리하다. 미국은 존스액트(Jones Act)라는 보호무역 법안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미국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반드시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기술과 자금을 대더라도 실질적인 이익을 본국으로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

정책 리스크 역시 국내 기업에 부담이다.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 온라인 플랫폼 공정거래법 등은 기업의 비용과 규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 기업 유치를 장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HD현대의 미국행은 한국에서 남는 게 없어 미국으로 간다는 냉정한 현실의 반영”이라며 “앞으로는 수출도 그곳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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