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00년 넘긴 가게 3만곳
韓, 자영업 생존율은 5년 내 27%

직장 생활 30여년 간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자영업의 꿈을 이룬 박모(43·남) 씨. 젊음의 거리라 일컫는 서울 마포구에 치킨집을 야심차게 열었지만 박 씨는 2년 만에 가게를 정리했다. 인근에 경쟁 매장이 줄줄이 들어섰고 일명 '피 터지는 경쟁'에서 밀려났다.
배달앱 수수료와 임대료도 박 씨에게 부담이었다. 반면 오사카에 사는 일본인 이노우에(58·남) 씨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자카야를 30년째 운영 중이다. 그의 가게는 이미 3대째, 70년 역사를 자랑한다. 두 사람의 사연은 한국과 일본의 자영업 환경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왜 일본의 골목 가게는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는 반면 한국의 가게는 쉽게 생기고 쉽게 사라질까.
7일 '김현우의 핫스팟'이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미나미모리마치역 인근 쇼텐가이(상점가)를 찾았다. 한국과 일본의 '먹거리골목' 풍경을 비교해보면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일본 골목 어귀의 오래된 이자카야(선술집)나 제과점은 세월을 머금고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한국의 자영업 매장은 몇 해를 넘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자영업 구조와 정책, 세제 환경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일본 중소기업청과 닛케이비즈니스 도쿄상공리서치 따르면 일본에는 창업 100년이 넘은 이른바 ‘신센(老舗·오래된 가게)’이 3만 곳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200년 이상 된 식당이나 제과점도 다수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장수 가게들을 문화유산으로 간주하며 가업 승계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일본은 ‘가업 승계 세제 유예제도’를 통해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지자체별로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과 전문가 컨설팅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이 자녀나 직원에게 사업을 넘길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의 100% 유예가 가능하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감면도 받을 수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게나 건물은 문화청에서 직접 관리·보존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전통 자영업은 도시 정체성의 일부이며 보호받아야 할 문화 자산”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국의 자영업 현실은 녹록지 않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2023년 자영업 생존율’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평균 영업 지속 기간은 2년
9개월, 5년 생존율은 27%에 불과하다. 창업은 쉽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공급 과잉이 심해 ‘영세 창업→폐업→재창업’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자영업은 장기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 때보다 좋지 않다.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급증했고 대출 잔액은 최근 5년 만에 300조원 넘게 늘었다.

불황을 못 이겨 장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폐업한 자영업자는 100만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팬데믹 여파가 최고치에 달했던 2022년 86만명에서 2023년 98만6000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자영업자 비율은 19.8%로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연간 10%대를 기록했다.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은 79.4%다. 지난해 가게 10곳이 문을 열 때 8곳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자영업자 과잉 현상 속에서 단기 유행을 쫓는 프랜차이즈 중심의 창업이 늘면서 가게의 정체성과 지속성이 취약해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고액 상속세가 발목을 잡는다.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50%(30억원 초과)로 일본(55%)과 비슷하지만, 실제 부담률과 공제 제도 측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한국은 가업 상속 공제 요건이 까다롭고 승계 후에도 10년 이상 고용·자산 유지 조건을 충족해야 감면을 받을 수 있다.
사회복지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한국에서는 가업을 대물림하는 문화 자체가 희박하고,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상속보다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토 리에 오사카부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자영업을 지역 경제의 핵심 자산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회성 창업 지원보다 브랜드와 역사성을 갖춘 자영업을 보존·계승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 골목상권의 경쟁력은 단골 고객, 스토리, 시간의 축적에서 나온다”며 “뿌리 깊은 자영업이 늘어나야 지역 경제가 강해진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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