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쉘위댄스] (81)
좋은 관계가 좋은 추억을 남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겪은 댄스 판에서도 여러 가지 신뢰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므로 회고 차 정리해 본다.

한번은, 잘 나가는 유명 댄스학원에 내가 운영하는 댄스동호회가 어렵게 끼어들어 한 클래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학원은 원장 밑에 부원장이라는 사람이 개인레슨은 물론 단체레슨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원장은 부원장을 무척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 그 넓은 학원이 횅했다. 어찌 된 일인가 물으니, 원장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부원장이 그간 몰래 독립 학원을 차리면서 회원들을 몽땅 빼갔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부원장이 내게도 은근히 따로 대우해 줄 테니 옮길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단호히 거절하는 바람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그 수습 방안으로 내가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각각 운영하던 강습반을 빈 요일에 채워 넣었다.
잘나가는 학원이라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저녁 7시대 클래스를 끼워 넣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자리가 나 요일마다 우리 동호회가 차지하게 되면서 그 학원도 오히려 성시를 이뤘고 우리 동호회도 회원 모집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처럼 단체반에 사람이 몰리면 그중에서 개인레슨을 원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학원 측에서는 개인레슨이 단체레슨보다 수입이 좋다. 이 일로 이 원장과는 두고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초동이 한창 개발 시기라서 큰 빌딩은 지었는데 분양이 안 되어 공실로 고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댄스계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아주 싸게 임차해 줄 테니 댄스 강습을 거기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몇 달 지나자, 갑자기 임차료를 4배로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서로 잘 아는 처지라서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임대차 보호법이 있던 때도 아니라서 꼼짝없이 그 클래스가 문을 닫을 형편이 되었다. 임대차 계약은 상호 신뢰하에 이뤄진 것인데 이처럼 신뢰와 상식이 무너지면 더 이상 상대하기 어려워진다.
일시적으로 2배 올리는 선에서 조정했으나 흔쾌히 합의 본 것이 아니므로 한번 땅에 떨어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도 신뢰와 상식이 깨지면서 크나큰 실망과 존재적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다. 한번은 댄스계 원로가 소개하여 내 파트너가 된 여자가 있다. 둘이 잘 맞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회마다 제법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해의 가장 큰 목표는 서울시 대표로 전국체전에 같이 출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전국체전 한 달을 앞두고 갑자기 몸이 아파서 댄스를 더 이상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전국체전이 목전에 있으므로 그때까지만이라도 같이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소용없었다. 부랴부랴 다른 파트너와 연습해서 전국체전에 출전했으나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나중에 그녀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아픈 게 아니라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는 너무 빡빡한 전국체전 연습을 하기 싫어서였다는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일도 있다. 댄스계에서 신사로 보이는 어느 댄스학원 원장과 자주 만났었다. 겉보기에는 예의도 바르고 아는 것도 많아서 어울리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댄스계에 입문시켜 한창 댄스의 재미에 빠진 한 여성을 대동하고 만났다. 좋은 조언이나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그녀가 그 원장을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성적으로 유혹하더라는 것이다. 소문을 들어 보니 그 원장은 그 학원에서도 여성회원들과 스캔들이 많아 문제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멀쩡하게 생겨서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짓을 했는지 괘씸한 일이었다.
사람 있는 곳은 어디 가나 비슷하다. 댄스계라고 다른 세계보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경제신문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ksy69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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