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쉘위댄스](84)
강사나 나이 든 사람이
제대로 된 용어를 가려 써야

일제 강점기 36년을 겪으면서 일본어는 우리 생활에 뿌리 깊이 박혔다. 농업 중심의 우리 사회가 변모하면서 마땅한 어휘가 없자 일본어를 그대로 빌려서 쓰는 경우도 많았다. 일본도 우리처럼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한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 댄스 1세대를 70세 이상으로 볼 때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던 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그렇게 듣고 자라다 보니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말에는 적당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영어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댄스계에도 아직 일제 강점기에 쓰던 용어가 살아 있다. 모르고도 쓴다. /사진=강신영
댄스계에도 아직 일제 강점기에 쓰던 용어가 살아 있다. 모르고도 쓴다. /사진=강신영

‘쿠세(癖)’라는 말이 있다. ‘버릇’을 말한다. 우리식 한자로 ‘벽’인데, ‘도벽’, ‘방랑벽’처럼 안 좋은 습관적 동작을 지칭하는 말이다. “저 사람은 사교춤 쿠세가 있어서 고치기 힘들어”라는 식으로 자주 쓴다.

예를 들자면 같은 자이브인데 사교춤에서 배운 자이브는 미끄러운 바닥에서 배우다 보니 스텝이 짧고 간단하다. 반면에 댄스스포츠에서 배운 자이브는 미끄러우면 안 되는 바닥에서 배우다 보니 바닥을 밟는 힘이 좋아 스텝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 몸에 익힌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간지’라는 말도 자주 쓴다. ‘간지나게 춤을 춘다’고 한다. 간지는 ‘감(感)’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 한국식으로는 ‘멋’ 또는 ‘감성’ 정도로 해석된다. 느낌이나 분위기, 인상을 멋스럽게 표현하라는 얘기다. 몇 해 전 드라마에서 ‘엣지있는 여자’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비슷한 말이다.

‘와쿠’도 있다. ‘틀’, ‘구도’, ‘자리’, ‘프레임’이라는 말이다. ‘와쿠 안에서 춤을 춰라’. ‘와쿠를 짜 봐라’ 식으로 쓴다.

‘곤조’는 댄스계뿐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는 용어다. ‘본성’, ‘근성(根性)’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말로는 ‘성깔 좀 있다’라는 뜻으로도 쓴다. 사실은 이 단어는 영어 ‘Gonzo’에서 온 것을 일본에서 그대로 쓴 것이다. 춤에서는 ‘몰입’, ‘혼신의 힘’ 등을 말한다.

‘후라빠’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정통이 아닌’ 정도로 사용하는데 사실은 영어의 ‘프리 스타일 배틀(Free Style Battle)’에서 온 것이다. 일본식 영어다. ‘행실이 안 좋은 여자’를 말할 때 쓴다.

용어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사용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 쓰게 마련이다. /사진=강신영
용어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사용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 쓰게 마련이다. /사진=강신영

‘야매’도 비슷하다. 원래는 ‘편법’이라는 뜻인데 정통 자격증을 가진 선생이 아니라 곁에서 보고 배운 기술로 춤을 가르치는 무자격증 춤 선생을 말한다. 한때 ‘야매 치과의사’들이 치아 치료를 하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야로’가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음모’, ‘장난’, ‘속임수’ 등의 맥락에서 사용한다.

‘시마이’나 ‘시마이 하자’라는 말도 은근히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쓰이는 표현이다. ‘끝’, ‘마무리하자’라는 뜻이다. 공식 문어체는 아니고 친근한 사이, 장사하는 현장, 깡패가 나오는 영화, 개그 등의 용도로 쓴다.

‘단도리 잘해’도 일상 용어에서 쓴다. ‘단속’, ‘일의 순서’나 ‘준비 과정’을 말한다. ‘떼쓰기’라는 뜻으로 쓰는 ‘땡깡 부린다’도 일본어에서 왔고, 원래는 ‘뇌전증’을 의미한다. ‘땡땡이친다’라는 말도 ‘돌아다닌다’라는 말인 일본어 ‘텐텐’에서 왔다.

‘거짓말’을 뜻하는 ‘구라’도 일본말이다. ‘삐까번쩍’은 일본 의태어 ‘삐까삐까’에서 왔다. ‘야사시하다’는 ‘야하다’가 아니라 ‘다정하다’, ‘상냥하다’라는 뜻이다. 여성들 옷에서 ‘소데나시’라는 용어는 ‘소매가 없는 옷’이라는 뜻으로 민소매다.

회식하고 나면 비용을 ‘뿜빠이 하자’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분배(分配)’를 말한다. 요즘은 ‘더치페이’, ‘각자 내기’, ‘1/N로 하기’로 쓰기도 한다.

강사가 이런 말을 쓰면 수강생들에게는 금방 전염된다. 새로운 세계이다 보니 귀에 쏙쏙 들어와 전염 속도도 빠르다. 일본말인 줄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으니 알아야 하고, 이젠 쓰지 말아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ksy69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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