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방어막을 푸는 마법 열쇠
‘해야 할 일’을 요구해야 할 때
상대의 요구를 ‘거절’해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분명히 없으리라. 부드러운 어조로 여러 번 말했지만 들은 척도 않고 게임만 하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나, 새로운 규정을 따르지 않는 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관리자의 답답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위협하거나, 보상을 내걸며 상대를 회유하려 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던가? 그때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아서면 다시 원점이고 마음에는 상처와 반감만 남는다.

또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도 있다. “안 됩니다”라는 차가운 거절에 상대는 얼굴을 붉히며 돌아서고, 우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왜 우리는 관계를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데일 카네기는 서로의 생각과 욕구가 충돌할 때 열렬한 협력을 얻기 위해 지침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욕구에 진심으로 공감하라(Be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ideas and desires)”를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데일 카네기는 서로의 생각과 욕구가 충돌할 때 열렬한 협력을 얻기 위해 지침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욕구에 진심으로 공감하라(Be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ideas and desires)”를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옳고 그름의 증명에 있지 않다. 그것은 법정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우리의 비즈니스와 일상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내 생각과 욕구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상대방에게도 그러하다는 간명한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데일 카네기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서로의 생각과 욕구가 충돌할 때 열렬한 협력을 얻기 위해 지침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욕구에 진심으로 공감하라(Be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ideas and desires)”를 제시했다.

방어막을 푸는 마법 열쇠

화가 난 상태인데, 누군가 ‘당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위협이나 공격을 감지하는 편도체(amygdala)의 흥분이 가라앉는다.

잔소리를 듣거나 거절을 당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편도체가 바로 그 방어기제의 사령탑이다. 그런데 공감의 말은 이 사령탑에 ‘위험 상황 해제’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일단 편도체가 안정을 찾으면 이성적인 판단과 소통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비로소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상대의 말을 차분히 들을 준비가 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함께 고민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진심 어린 공감을 받으면 뇌에서는 옥시토신(oxytocin)과 같은 ‘사회적 유대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신뢰감과 친밀감을 높여 방어적인 태도를 허물고 협력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다리를 놓아준다.

결국, 상대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하는 것은 단순히 감성적인 위로를 건네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뇌를 ‘적대 모드’에서 ‘협력 모드’로 전환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스위치인 셈이다.

“네 말이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의 뇌는 경보를 울리며 철문을 굳게 닫지만,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아”라고 말하는 순간 경계 태세는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반복해서 말해도 상대가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화가 나고 지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윽박지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당근을 제시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제 이 강력한 원칙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가상의 상황을 통해 살펴보자.

누구나 겪을 법한 두 가지 어려운 상황, 즉 ‘요구해야 할 때’와 ‘거절해야 할 때’를 위한 안내서가 있다면 종종 참고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안내서의 활용은 먼저 감정적 대응을 회피하는 여유를 주고, 효과적인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자극한다.

당신이 게임만 하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첫 단추는 비난 대신 공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이 게임만 하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첫 단추는 비난 대신 공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해야 할 일’을 요구해야 할 때

당신이 게임만 하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상상만 해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첫 단추는 비난 대신 공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너 또 게임 하니? 하루 종일 게임만 할 거야? 당장 끄고 공부 못 해!” 이렇게 소리친다면 아이의 뇌에는 즉각적인 경보가 울리고 아이는 반발할 것이다.

좋은 시작은 내 욕구가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에 대한 헤아림이 먼저다. 비현실적일 것 같지만 다음의 행동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아이 옆에 조용히 다가가 게임 화면을 함께 보며 말을 건넨다.

“와, 이 게임 정말 재미있어 보인다. 한창 재미있을 텐데 아빠(엄마)가 와서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네가 왜 이렇게 게임에 푹 빠져 있는지 알 것 같아. 스트레스도 풀리고, 친구들과 함께하니 더 신날 것 같아.”

다음은 나의 감정과 의견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를 주어로 비난하는 ‘You-Message’가 아니라, ‘나’를 주어로 나의 감정과 의견을 설명하는 ‘I-Message’를 사용하는 것이다.

“너는 네 생각만 하고, 엄마 아빠 걱정은 하나도 안 하지?”와 같이 상대방을 판단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데 아빠(엄마)는 사실 조금 걱정이 된다. 네가 게임을 즐기는 건 좋지만, 해야 할 공부를 놓치게 될까 봐 아빠(엄마)는 마음이 불안해. 나중에 네가 원하는 꿈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까 봐 염려돼”와 같이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대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령’이 아닌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을 하면 된다. 이제 상대는 방어막을 풀고 당신의 제안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이때 “그러니 당장 공부해!”라고 명령하면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된다.

대신, 이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로 바꿔야 한다. “게임을 즐길 시간도 충분히 갖고, 또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균형을 맞출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함께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와 같이 제안하는 것이다.

혹시 이러한 지침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사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다투고 있는 자녀 혹은 직장의 누구를 떠올려보라. 서로의 생각과 욕구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며 해결 방안을 논의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규정이나 원칙 때문에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안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두꺼운 벽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벽은 상대를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규정이나 원칙 때문에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안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두꺼운 벽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벽은 상대를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상대의 요구를 ‘거절’해야 할 때

규정이나 원칙 때문에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안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두꺼운 벽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벽은 상대를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든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걸까? 거절의 순간이야말로 공감의 힘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환불 규정에 어긋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의 경우를 가정해서 생각해 보자. 다음의 지침은 당신이 매장 직원이 아닐지라도 ‘상대의 요구를 거절해야 할 때’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역시 첫 단추는 끝까지 듣고 상대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고객이 흥분해서 이야기할 때, 중간에 말을 끊고 “고객님, 그건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힘은 들겠지만 고객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것이 좋다. “많이 속상하셨겠습니다”와 같은 추임새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상대의 이야기가 끝났다면, 내가 들은 것을 요약하며 그의 입장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공감하면서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가령 “고객님, 말씀을 들어보니 새로 산 제품에 큰 기대를 하셨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생각과 달라 정말 많이 실망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당연히 환불을 받고 싶으신 거고요. 제가 고객님 입장이라도 정말 속상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제 거절의 이유를 설명할 차례이다. 이때 ‘당신 탓’이 아닌 ‘나의 한계’로 설명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좋다. “고객님의 경우는 환불 대상이 아닙니다”와 같이 상대를 주어로 두면 마치 고객에게 결격 사유가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대신, ‘나’ 또는 ‘우리의 규정’이 가진 한계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고객님의 그 속상한 마음에 저도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정말 안타깝게도 저희가 정해진 환불 규정상 이미 개봉하여 사용하신 제품에 대해서는 도움을 드리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고객님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드리지 못하는 이 규정이 저도 참 야속하게 느껴지네요”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비록 나의 한계로 인해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거절을 하더라도 마지막은 그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싶다는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불을 바로 도와드리지는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품 사용에 다른 불편함은 없으셨는지, 저희가 다른 방식으로라도 고객님의 불편을 덜어드릴 방법은 없을지 함께 찾아보고 싶습니다. 혹시 사용에 도움이 될 만한 추가 정보를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와 같이 가능한 대안을 함께 찾아보는 노력은 상대방의 분노를 ‘이해’로 바꾸는 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물론 모든 고객이 이 방법으로 100% 만족하고 돌아가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더라도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려 노력했으며,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쓴’ 당신의 모습은 기억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오히려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알겠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한마디는 그 어떤 논리나 위협, 보상보다 더 강력하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꺼이 당신의 손을 잡게 만들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알겠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한마디는 그 어떤 논리나 위협, 보상보다 더 강력하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꺼이 당신의 손을 잡게 만들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관계를 살리는 최고의 지혜이자 기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그 불편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관계를 한 단계 더 깊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논쟁으로 상대를 이기려 하지 말자.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당신의 말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타당해도 상대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 어떤 소리도 가닿지 않는 법이다.

대신, 상대방의 세상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마음으로 느껴보자.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알겠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한마디는 그 어떤 논리나 위협, 보상보다 더 강력하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꺼이 당신의 손을 잡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화술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다.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당신의 공감 한마디가 분명했던 싸움을 예상치 못한 협력으로 전환하는 기쁨과 놀라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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