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는 시대적 현상?
목표 설정 이론에서 발견하는 도전의 재발견
잡 크래프팅으로 '일의 의미'를 재창조하게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최근 몇 년 사이 조직을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는 이 낯선 용어는 더 이상 일부 젊은 세대의 얄미운 요령이 아닌, 시대적 현상이 되었다. 조용한 퇴사란 실제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행위는 아니다. 직장에 소속은 되어 있으되, 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며 마음은 이미 떠나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추가적인 헌신이나 열정을 일에 쏟지 않고,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소극적인 저항이다.

몇 년 전,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에서는 “일이 당신의 삶이 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가 번아웃을 경험하고 일의 의미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진 수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으며 바이럴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게으름을 포장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넘어 ‘일과 삶의 통합(Work-Life Integration)’을 외치던 허슬 컬처(Hustle Culture)에 대한 반작용이자, 조직의 성공을 위해 개인의 삶을 무한정 희생할 수 없다는 강력한 가치 선언인 셈이다.

조용한 퇴사란 실제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행위는 아니다. 직장에 소속은 되어 있으되, 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며 마음은 이미 떠나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미드저니
조용한 퇴사란 실제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행위는 아니다. 직장에 소속은 되어 있으되, 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며 마음은 이미 떠나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미드저니

이처럼 ‘조용한 퇴사’가 설득력 있는 가치 체계를 등에 업고 있기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개인으로서는 소리 없는 퇴사가 소진된 자신을 지키는 방어기제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기회의 상실과 경력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이 사라진 조직은 활력을 잃고 서서히 침몰하게 된다. 혁신은 멈추고 생산성은 저하되며, 결국 조직의 미래 경쟁력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앞에서 조직의 리더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더 나은 보상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이들의 마음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물질적 보상을 넘어,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내면의 동력을 어떻게 다시 점화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100년 가까이 수많은 리더에게 영감을 준 데일 카네기의 원칙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자 한다. 열렬한 협력을 얻는 12가지 원칙 중 마지막 원칙,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켜라(Throw down a challenge).” 이 낡은 지혜 속에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해법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목표 설정 이론에서 발견하는 도전의 재발견

카네기가 말한 ‘도전’은 단순히 어려운 과업을 던지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 안에는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심리학자 에드윈 로크(Edwin Locke)와 게리 레이섬(Gary Latham)이 체계화한 목표 설정 이론(Goal-Setting Theory)은 도전의 힘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과학적 도구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막연하고 쉬운 목표’보다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가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잘 설계된 목표는 우리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명확한 목표는 우선 안개처럼 흩어져 있는 우리의 주의를 한곳으로 모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한가롭게 축구를 즐기던 마을 조기축구 회원들이 우연히 몇 달 후에 개최되는 구청장배 축구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내고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연습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용과 같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가 가진 도전적인 속성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도록 노력의 강도를 높인다. 결승선이 눈에 보이고, 그것이 우리의 최선을 요구할 때 더 힘껏 발을 구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과업을 수행하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강력한 목표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를 부여하는 심리적 닻이 되어 준다. 결국 이렇게 집중된 노력과 끈기는 우리를 안주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목표설정의 힘에 주목한 이론은 학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주창한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목표관리 기법)가 바로 이 이론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MBO의 핵심은 상사와 부하 직원이 함께 협의하여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도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리더가 일방적으로 던지는 도전이 아니라, 구성원의 참여와 동의를 통해 목표에 대한 헌신(Goal Commitment)을 끌어내는, 매우 정교한 동기부여 전략이었다.

그리고 MBO의 정신은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발전시켰고, 이후 구글 등 혁신 기업들이 채택하며 널리 알려진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로 진화했다. OKR은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해당하는 도전적이고 가슴 뛰는 목표(Objective)와,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핵심 결과(Key Results)로 구성된다.

명확한 목표는 우선 안개처럼 흩어져 있는 우리의 주의를 한곳으로 모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명확한 목표는 우선 안개처럼 흩어져 있는 우리의 주의를 한곳으로 모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OKR의 진짜 힘은 단순히 회사의 성과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성장을 그 중심에 놓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한 주니어 개발자가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설정을 통하여 조용한 퇴사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팀에 꼭 필요한 ‘AI 전문가’로 인정받겠다”는 목표(Objective)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련 온라인 강의 2개를 A 플러스 수준으로 완료’, ‘학습한 기술을 실제 프로젝트 기능 개선에 적용’, ‘그 성과를 팀 세미나에서 공유’와 같은 구체적인 핵심 결과(Key Results)들을 설정하여 자신의 성장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나아가는 성취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드러커의 MBO에서 앤디 그로브의 OKR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경영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명확하고 도전적인 목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조용한 퇴사’로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호한 위로나 안락한 휴식이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유능감을 맛볼 수 있도록, 잘 설계된 ‘의미 있는 도전’을 조직과 리더가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일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잡 크래프팅

하지만 도전적인 목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도전해야 할 일 자체가 무의미하고 매력 없게 느껴진다면 어떨까? 아무리 높은 목표를 제시해도 그것은 또 다른 압박으로 다가올 뿐, 자발적인 열정을 끌어내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동기부여의 가장 깊은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부여는 ‘일 그 자체의 매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열정은 자기 일이 가치 있고, 성장하고 있으며, 무언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조용한 퇴사’는 바로 ‘일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의 매력을 높일 수 있을까?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Amy Wrzesniewski)와 제인 더튼(Jane Dutton) 교수가 제시한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이론이 해답을 제공한다.

잡 크래프팅이란, 주어진 직무 설명서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마치 장인(Craftsman)이 재료를 다듬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듯 스스로 일의 형태와 의미를 바꾸어 나가는 능동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회사가 정해준 ‘직무(Job)’를 개인의 가치와 강점에 맞게 ‘공예(Crafting)’하는 과정인 셈이다. 

잡 크래프팅은 어렵고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첫째, 과업 크래프팅이다. 이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내용이나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주 반복되는 보고서 작성이 지겹다면, 데이터 시각화 툴을 새로 배워 더 효율적이고 보기 좋은 보고서로 개선해 볼 수 있다. 혹은 자신의 강점인 기획력을 살려 팀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주어진 과업의 경계를 스스로 넓히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둘째, 관계 크래프팅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바꾸는 것이다. 평소 교류가 적었던 다른 부서의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커피를 마시며 업무 노하우를 공유할 수도 있고, 신입사원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가르치는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일터에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높여 업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셋째, 인지 크래프팅이다. 자기 일에 관한 생각과 관점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병원의 청소부는 자기 일을 단순히 ‘바닥을 쓰는 일’이 아니라, ‘환자들의 치유를 돕는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일’로 재정의할 수 있다. 콜센터 상담원은 ‘불평을 듣는 일’이 아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최전선 전문가’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일의 의미와 목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일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에게 일방적으로 도전 과제를 하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재창조하는 ‘잡 크래프터(Job Crafter)’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에게 일방적으로 도전 과제를 하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재창조하는 ‘잡 크래프터(Job Crafter)’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에게 일방적으로 도전 과제를 하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재창조하는 ‘잡 크래프터(Job Crafter)’가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각자가 자기 일에서 의미와 자율성을 찾을 때, 조용한 퇴사가 머물던 자리에는 비로소 창의적인 열정이 싹트기 시작할 것이다.

최고의 장비는 최고의 관리를 필요로 한다

한 사람의 직원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값비싼 장비와 같다. 우리는 수억 원짜리 기계를 들여오면 최고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며, 세심하게 관리한다. 하물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떻겠는가? 그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그들의 상태를 살피고 동기를 부여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 많은 기업이 리더와 구성원 간의 원온원(1-on-1) 대화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기적인 일대일 대화는 단순히 업무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다. 리더가 구성원의 고충을 듣고, 경력 목표를 함께 고민하며, 그에게 맞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함께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시간이다. 이는 조용한 퇴사라는 침묵의 벽을 허물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신뢰의 다리를 놓는 과정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당신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리더의 신뢰가 담긴 눈빛과, 그 신뢰를 바탕으로 제시된 가슴 뛰는 도전일 것이다. 이제 스스로와 주변에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당신은 오늘, 당신과 동료의 가슴속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우기 위해 어떤 도전을 어떻게 던질 것인가?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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