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논리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는 ‘OREO’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연출’의 힘

당신이 한 대기업의 신임 구매 총괄 책임자로 부임했다고 상상해 보자. 새로운 부서 환경에 적응하며 전국의 수십 개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구매 현황을 차근차근 파악해 나가던 중, 당신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사무용품부터 공장의 소모품까지, 수천 가지가 넘는 물품들이 각기 다른 가격과 규격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이었다.

기존 구성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라고조차 인식되지 않던 일이었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는 명백한 비효율과 낭비였다. 당신은 이 뿌리 깊은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구매 프로세스 개선안을 마련한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완벽한 개선안이었기에, 당신은 모두가 이를 환영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차갑고 단단했다. 주변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시큰둥했다.

오랜 관행을 바꾸는 것이 귀찮다는 듯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눈빛으로 은근히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직 각 공장의 특수성과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당신의 분석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누려온 자율적인 구매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각 공장의 보이지 않는 저항은 가장 거셌다. 당신의 논리적인 보고서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관성 앞에서 힘을 잃어갔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여기 당신과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논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보고서의 숫자만으론 사람들의 굳은 관성을 깨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충격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천 가지 비효율의 ‘대표 선수’로 모든 공장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작업용 장갑을 선택했다. 전국 공장에서 수거한 장갑의 종류는 무려 424가지에 달했다. 기능도 품질도 비슷한 장갑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천차만별인 구매 가격이었다. 그는 다음 회의가 열리기 전날 밤, 중역 회의실의 거대한 테이블을 이 424개의 장갑을 위한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각 장갑에는 어느 공장에서 얼마에 구매했는지 선명하게 적힌 꼬리표를 빠짐없이 붙였다.

다음 날, 회의에 들어선 경영진은 말을 잃었다. 테이블 위에는 기능도 품질도 비슷해 보이는 수백 종류의 장갑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떤 것은 5000원, 바로 옆의 비슷한 것은 1만7000원이었다. 숫자로는 보이지 않던 비효율의 민낯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데일 카네기가 제시한 ‘타인의 협력을 얻는 12가지 원칙’ 중 열한 번째 비결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Dramatize your ideas)”는 것이다. 사진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가상 이미지임 /미드저니
데일 카네기가 제시한 ‘타인의 협력을 얻는 12가지 원칙’ 중 열한 번째 비결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Dramatize your ideas)”는 것이다. 사진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가상 이미지임 /미드저니

그들은 마치 기획 전시를 보듯 테이블을 돌며 꼬리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보고서의 숫자로는 결코 와닿지 않던 ‘구매 비효율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눈앞의 어처구니없는 전시품이라는 ‘구체적 실물’로 변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더 이상의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구매 시스템 개혁안은 그 자리에서 즉시 승인되었다.

이 이야기는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가 쓴 <스틱!>에 소개된 유명한 사례다. 이는 단순히 똑똑한 처세술이 아니다. 반대와 무관심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협력을 얻어낼 수 있을까?

지난 글에 이어, ‘인간관계론’의 대가 데일 카네기가 제시한 ‘타인의 협력을 얻는 12가지 원칙’ 중, 오늘은 그 열한 번째 비결을 살펴볼 차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Dramatize your ideas)”는 것이다.

논리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는 ‘OREO’

많은 사람들이 ‘극적인 표현’에 대해 ‘나는 그런 쇼맨십이 없어’라며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카네기가 말한 핵심은 연기력이 아니라 ‘내 진심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 마음에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도 생각을 효과적으로 극화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메시지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는 것이다. 드라마는 탄탄한 논리 위에 세워져야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화려한 연출이라도 내용이 부실하면 공허한 쇼에 그칠 뿐이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아주 쉽고 맛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과자 ‘오레오(OREO)’를 떠올리면 된다. 

먼저,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핵심 의견(Opinion)을 단호하고 명확한 한 문장으로 작성해 본다. 이것이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왜 그렇게 해야 하지?” 하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유(Reason)를 설명하여 주듯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작성해 보면 된다. 하지만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추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가를 알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로, 주장을 뒷받침할 생생한 사례(Example)를 들어서 이유를 뒷받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의견을 강조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안(Opinion/Offer)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따르면 누구든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잘 정리된 생각은, 달콤한 오레오 쿠키처럼 사람들이 좋아하고 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까지 준비하면 끝났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논리를 세웠으니 상대방도 당연히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정성껏 만든 선물의 내용물을 준비한 것에 불과하다. 카네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바로 이 선물을 어떻게 포장해서 건넬지 고민하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연출’의 힘

선물의 가치는 내용물에 있지만, 감동의 크기는 정성을 들인 포장과 건네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밋밋한 상자에 담긴 선물보다, 예쁜 포장지에 싸여 리본이 달린 선물을 받을 때 우리는 더 큰 설렘과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의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그 파급력은 몇 배나 커진다. ‘극적인 표현’이란 거창한 연극이 아니다. 내 아이디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은 연출’을 더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첫째, ‘말’ 대신 ‘그림’을 보여줘라.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옛말처럼, 백 마디 설명보다 눈으로 보는 하나의 이미지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재개를 압박했을 때, 우리 협상단이 보여준 것은 복잡한 자료가 아닌 2008년의 촛불 시위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해당 사안이 단순한 통상 문제를 넘어,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국민적 트라우마임을 그 어떤 설명보다 명료하게 증명했다. 일상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류 작업의 비효율을 말하는 대신, 처리해야 할 서류 더미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둘째, 비교와 비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정보에 연결할 때 가장 쉽게 이해한다. 이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10%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처럼 추상적인 숫자 대신, “우리가 여기서 10%를 아끼면, 전 직원에게 최신형 스마트폰을 한 대씩 지급하고도 남는 금액이다”라고 말해 보자. 추상적인 숫자가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된다.

“우리 회사의 데이터는 원유와 같다. 지금은 그냥 땅에 묻혀 있지만, 잘 정제하고 가공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보물이 될 수 있다”와 같은 비유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아이디어의 가치를 순식간에 끌어올린다.

셋째,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행동을 해라.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 에어를 발표할 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누런 서류봉투에서 제품을 꺼냈다. 왜 하필 서류봉투였을까? ‘이렇게 얇고 가벼워서, 마치 서류처럼 일상적으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핵심 메시지를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하게 전달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필요할 때, 수십 통의 이메일보다 정성껏 쓴 손 편지 한 장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자신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라.

넷째, 일방적인 설명 대신 질문으로 시작하라. 상대방을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1년을 더 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은 상대방을 수동적인 청중에서 능동적인 참여자로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답을 찾게 함으로써, 자신의 제안을 ‘지시받는 남의 아이디어’가 아닌 ‘함께 만든 우리의 해결책’으로 느끼게 만드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다.

오늘을 위한 작은 연출을 준비하자

오늘 하루도 우리는 열심히 일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만나 의견을 나눌 것이다. 동료와의 짧은 대화부터 중요한 회의와 미팅까지,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전달하려 노력할 것이다.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협력을 구하며, 때로는 반대에 부딪히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잠시, 생애 가장 중요한 고백을 앞둔 사람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단순히 ‘결혼하자’는 주장(What)을 넘어, 마음의 깊이와 진심을 전하기 위해(How) 모든 정성을 다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 

당신의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나 논리가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당신의 진심과 열정이 담긴 소중한 결과물이다. 당신의 논리는 이미 충분히 단단하다. 이제 거기에 당신의 진심이라는 따뜻한 포장을 더해보자. 당신의 아이디어는 단순한 의견을 넘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선물이 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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