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 (14)
중세의 돌탑 도시, 산 지미냐뇨
순례자의 쉼표, 예술가의 울림, 맛의 기적까지

산 지미냐뇨(San Gimignano) 토스카나 시에나 지역의 중세 시대 고도시 /게티이미지뱅크
산 지미냐뇨(San Gimignano) 토스카나 시에나 지역의 중세 시대 고도시 /게티이미지뱅크

까마득히 멀리서도 우뚝한 돌탑들이 마천루처럼 서 있다. 처음 보는 탑들의 도시, 산 지미냐노 (San Gimignano)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다가갈수록 돌탑들의 존재감은 점차 더 확실했고 지금 남아있는 14개의 돌탑만으로 어렵지 않게 ‘중세의 맨해튼’을 떠올릴 수 있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인데 이곳에 전성기에는 무려 70개 이상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13세기 14세기의 중세 귀족들이 서로 ‘누가 누가 더 높게 쌓을까’를 경쟁하며 오밀조밀 쌓아 올린 탑들로 도시는 가득 찼다고 산 지미냐뇨는 ‘탑의 도시(Città delle Torri)’라 불렸다.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72개의 돌탑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 자연재해, 도시 개발로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현재 남은 것 중 가장 높은 것은 54m, 한국의 20층 아파트 높이에 이르는 토레 그로사(Torre Grossa)이다. 

산 지미냐노는 토스카나의 심장부,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 잡은 중세의 도시다. 한적한 위치에 자리했지만 단지 중세의 기념비로 남은 도시가 아니었다. 성의 입구부터 유물로 남은 도시의 정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생기가 넘친다.

관광지로 남은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살아가는 중세도시 산 지미냐뇨 /게티이미지뱅크
관광지로 남은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살아가는 중세도시 산 지미냐뇨 /게티이미지뱅크

박제된 관광지와는 다르게 골목골목엔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식료품 가게, 지역 행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시장에서는 채소와 치즈를 사고팔며, 수공예품을 파는 아주머니는 나를 불러세우더니 재봉틀을 휘리릭 돌려 산 지미냐뇨를 새긴 천 쪼가리를 건네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돌바닥은 반들반들하다. 길 위에 사람들이 발자국을 겹겹이 쌓아 돌탑의 중세 도시에 여전히 숨을 불어넣고 있다는 증거였다. 

궁전 안뜰에 들어서면서 뜻밖의 악기 연주자와 마주쳤다. 처음 보는 신기하게 생긴 악기였다. 
“페르시아 악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거예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설명했다. 이탈리아인이지만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페르시아 악기와 중국의 음악이었다고 한다.

직접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노년의 예술가는 조율하듯 가볍게 연주를 시작했다. 만돌린과 하프, 중국의 현악기 음색을 동시에 낼 수 있는 기묘한 악기를 그는 작고 섬세한 망치로 두드리고, 당기고, 문질렀다.

궁전 안뜰에서 바닥과 건물에 부딪히며 내는 천상의 소리 같은 연주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의 연주는 마법처럼 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아름다운 오후를 선물해 준 노년의 연주가에게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몇 유로를 건넸지만 그는 사양했다.

“버스킹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건 정식 연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돈을 받다니요.”

사양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표현하고픈 우리의 마음도 알아달라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드린다고 생각하고 받아달라는 말에 그는 결국 웃으며 우리가 건넨 팁을 받았다. 

삶의 아름다운 작용을 목격한 기분에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태도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때와 장소에서 감사로 감동을 되돌려 받는 것, 대가 없는 친절로 양쪽 모두 행복해진 오후였다.

도시를 걷다가 알게 된 것 하나는, 산 지미냐노가 유럽의 오래된 순례길인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의 경유지라는 사실이다. 비아 프란치제나는 영국의 캔터베리에서 로마까지 이어졌던 순례길이다. 성지 순례자들이 지나는 긴 여정에서 산 지미냐노는 그들에게 잠시 머물며 회복할 수 있는 따뜻한 쉼터였다. 언젠가 이 길을 직접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를 둘러보느라 배가 고픈 것도 잊었는데··· 드디어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급한 대로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햇살이 부서지는 테라스에 앉아 안티파스토와 파스타를 먹으며 시킨 와인의 기포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지럽혔다.

"파스타 너무 맛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동네 식당이 수준이 이렇게 높다니··· 사실 동네치고는 가격도 좀 높은 편이긴 해."

너무 맛있어서 의아했다고 말하긴 이상하지만 그랬다. 동네 구석에 있는 식당이 이렇게 수준이 높을 수 있냐며 식사 내내 호들갑을 떨었는데 나오면서 보니 미슐랭 가이드 레스토랑이다. 심지어 물마저 2년 전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꼈던 바로 그 물을 먹고 나니 역시 인생의 진리는 늘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역시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여행을 멋지게 만드는 가장 빠르고 똑똑한 선택이다.

산 지미냐노를 떠나 우리는 포지본시(Poggibonsi)라는 도시에 들러보기로 했다. 고대 에트루리아와 로마 시대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로, 전략적 위치 덕분에 중세 시기에는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포지본시에 도착해보니 현실은 기대를 무너뜨렸다. 복원되지 않은 폐허가 대부분이라 고대 도시의 풍경은 상상력으로만 채워야 했다.

복원된 유적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유적은 존재하지만, 하나같이 발품을 팔아야만 보이는 포인트들이다. 성벽만은 아직도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구경하고 돌아섰다. 상상력과 지도가 함께 있어야 겨우 실체를 만날 수 있는 도시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상상이 풍성해졌으니 이도 나쁘진 않았다.

72개의 탑이 빼곡했던 산 지미냐뇨는 탑의 도시라 불리었다. /게티이미지뱅크
72개의 탑이 빼곡했던 산 지미냐뇨는 탑의 도시라 불리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오늘을 위해 토스카나 풍광을 완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캠핑장을 점찍어두었더랬다. 예약을 받지 않아 불길하더니만 입구에 커다란 ‘No Vacancy’ 팻말이 버티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도 험난했건만 돌아 나오는 길은 더 어려웠다. GPS를 켜도 길은 없고 온통 진흙탕인 곳을 지나며 바퀴가 빠져버릴 위기를 겨우 빠져나왔다.

어두워지기 전이라 바로 나타난 다른 캠핑장으로 갔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50센트 동전을 넣어야 5분 단위로 물을 쓸 수 있다. 50센트에 5분이라는데 왜 이리 짧은 거야? 두 번째 동전이 없어 남은 비눗물은 수건으로 씻어내야 했다.  

낮은 덥더니 밤엔 아래위로 이가 부딪힐 정도로 쌀쌀하다. 고생과 감동이 씨줄 날줄처럼 엮인 하루, 산 지미냐노는 내게 기쁨의 도시로 남았다. 오래된 벽 사이로 흘러나오던 음악과 높은 돌탑 아래 작은 사람들의 온기와 삶의 흔적들. 시간은 느리게 흐르지만 멈추지 않는 곳. 아마도 나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도 중세의 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골목엔 여전한 생기가 흐르기를. 아 그리고 50센트를 넉넉히 준비해서 다음에는 따듯한 샤워를 해야겠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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