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제도로 통제 사실상 불가능
산업계 외침에도 고위험 AI 모호성
여야 100조 투자 공약 실현성 낮아
"EU식 규제 중심 접근은 시기상조"

차기 정부가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차기 정부가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6·3 대선을 앞두고 내년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AI) 기본법'이 정치권과 산업계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AI G3(Global Top 3)' 진입을 공식 목표로 내건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주최한 '2025 개인정보보호 페어'에서 이진규 네이버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AI로 인해 발생하거나 심화한 프라이버시 리스크가 321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존 위협이 악화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유형까지 생겨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AI 포털 허깅페이스 기준으로 150만 개가 넘는 AI 모델이 공개돼 있고 5만여 개 기업이 40만 개 이상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 상황"이라며 "이처럼 빠르게 확산하는 기술을 제도로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는 사회 진화를 막으려는 시도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리스크가 없다는 환상을 버리고 위험을 인식한 상태에서 제어 가능한 기술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기본법은 위험 기반 접근 방식을 표방하며 AI 시스템을 규제 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구조로 설계됐지만 시행령과 세부 지침이 미비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고위험 AI'의 정의와 적용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산업계 전반에서 제기된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AI 기반 국정운영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선언과 현실이 엇갈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G3'를 목표로 하면서도 정작 한국형 AI 기본법은 유럽연합(EU)의 AI 법을 모방한 규제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치권은 AI 투자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민간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AI 유니콘 기업 육성을 위해 민관합동 펀드 100조원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업계는 회의적이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9조6000억 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기 2년간 매년 20조 원 이상을 투입하는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결국 '보여주기식 경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차기 정부가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실효성 있는 균형을 잡고 정책적 리더십을 확립해야만 한국이 AI 글로벌 3강이라는 국가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26일 제이슨 권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제이슨 권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26일 한국 법인 설립을 공식화하며 국가 AI 전략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이슨 권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는 "한국 정부가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AI를 안전하고 첨단 기술로 육성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면 협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오픈AI가 한국의 AI 법제화 과정에서 주요 이해관계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픈AI는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캠프 관계자들과 각각 비공개 회동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투자 후규제'라는 글로벌 흐름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EU와 미국 모두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도 보완 입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 규제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기술 정책 싱크탱크인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로버트 앳킨슨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한국이 'AI는 위험하다'는 전제를 따르는 유럽식 규제 접근은 시기상조"라며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 규제보다 훨씬 더 혁신 친화적인 프레임을 갖춰야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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