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가슴 설렘은 젊은이들의 특권
나도 그런 시절 있었음에 감사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젊음 유지

사랑의 시작은 가슴 뛰는 설렘에서부터 /픽사베이
사랑의 시작은 가슴 뛰는 설렘에서부터 /픽사베이

한때 일본에서 어르신들이 쓰신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장 유명한 짧은 시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다. 이 짧은 시가 해학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다. 가슴 뛰는 것은 젊은 시절 가장 순수할 때 이야기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첫사랑일 때 누구나 가슴이 뛴다. 짝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이 되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때는 몸도 커지고 성에 따른 신체적 변화도 생긴다.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다고 한다. 모든 게 신기해 보이고 특별하게 보인다. 허물은 안 보이고 외관상으로나 마음으로나 환상에 빠져버린다. 나이가 들었을 때처럼 여러 가지 평가하고 재고 따지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때는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앞서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성장 과정이다. 그래야 연애 감정도 생기고 짝짓기에 성공할 수 있다.

그땐 그랬다. 두근두근 가슴만 떨리고··· /픽사베이
그땐 그랬다. 두근두근 가슴만 떨리고··· /픽사베이

연애 감성이 생기는 첫 단계가 설렘이다. 이성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감정이 설렘이다. 오고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등굣길에 자주 만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다. 아무리 아닌 척 모르는 척해도 궁금증이 생긴다. 태연한 척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매일 보이던 그 사람이 어느 날 보이지 않으면 왠지 궁금해지고 허전하게 느껴지게 된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왜 매일 나오던 사람이 보이지 않지?' 생각할수록 점점 빠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마침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 사람만 보면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말 한번 붙여보고 싶은데 가슴이 떨린다. 그 나이 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다 좋아지는 감성이 생기고 사랑의 마음도 싹트기 시작하여 비로소 연애하고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혹시나 가슴 뛰는 사랑이었으면 좋으련만 “어르신은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혹시나 가슴 뛰는 사랑이었으면 좋으련만 “어르신은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 먹으면서 이성에 대한 설렘의 감정은 줄어든다. 그 짜릿한 감정은 젊음의 큰 무기이다. 그 감정은 평생의 배우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은 젊기에 생긴다. 그런데 가슴이 뛰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혹시나 다시 젊음의 에너지가 생긴 걸까? 회춘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노인에게 가슴 뛰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 검사해 보니 “어르신은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입니다” 하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내려진다. 행여나 했던 마음이 조금은 씁쓸해진다. '그러면 그렇지, 이 나이에 가슴 뛰는 일이 있으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혹시나 젊은이처럼 가슴이 뛰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나이가 들어 몸이 늙었다고 마음마저 늙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노년이다. 노인들이 내놓은 짧은 시에는 이런 시도 있다.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한 잔 술은 마음을 다스려 준다. /픽사베이
한 잔 술은 마음을 다스려 준다. /픽사베이

어쩔 수 없는 노화의 한 장면이다.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어서 진찰해 보지만 어디 하나 콕 짚어 고칠 것도 아닌 상태다. 전체적으로 노쇠하여진 신체 수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무쇠로 만든 웬만한 차의 부속품도 10년이 넘으면 갈아야 한다.

그런데 80~90년 쓴 인간의 부품이라고 무사할 일 없다. 그러니 가슴 뛰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란 진단이 나온 것이다. 이럴 땐 선술집에 술 한 병 시켜놓고 한잔하는 것이 약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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