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오랫동안 탔던 차를 바꿔야 할 시기
생활이 달라지니 조건도 바뀐다

언제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 일정 연령 이상의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해 운전을 포기하면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는 노인 운전면허증 반납제도가 있다는데, 서울시의 경우는 70세 이상 노인이 면허를 반납하면 10만원권의 교통카드를 준다고 들었다. 개인의 건강 상태나 차량 운행 필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순발력도 체력도 그리 좋지 않은 나는 길게 잡아 앞으로 십여 년일 거라 생각한다.
갑자기 운전 가능 시기를 따져보는 건, 계획하지 않게 차를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그저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생활에 필요해 운전을 하고 있는 터라 신차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심은 없었다. 그래서 국내외 브랜드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이 등장할 때도, 테슬라부터 시작해 전기차들이 우후죽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할 때도, 친구들이 단단해 보이는 SUV로 차를 바꿀 때도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했다.
직장 생활 시작하며 구입한 첫 차를 14년 탔고, 지금 타고 있는 차 역시 2010년에 구입했으니 대략 차에 대한 나의 태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몇십만원으로 해결하는 부품 교환이나 수리가 아닌 한번 카센터에 들어갔다 하면 백만원 이상의 돈을 쓰며 차를 뜯어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단골 카센터 사장님도, 자동차 전문가로 이름난 지인도 현재 운행하는 차를 수리해서 타는 것보다 차를 바꾸라고 말한다. 이미 차량이 노화되어 한 가지를 해결하면 조만간 또 다른 부분에 이상이 생길 거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지금 구입할만한 차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차를 바꾼 친구가 있었는데, 남편과 함께 오랜 의논 끝에 선택한 자신들의 마지막 차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차로 탈 수 있는 데까지 타고, 운전은 그만해야지.” 아마 50대에 차를 바꾼다면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십여 년을 어떻게 생활할지 떠올려 봐야 한다. 짬 낼 틈 없이 바빴던 현업에서 비껴나 새로운 일이나 삶의 방식을 모색할 때이고,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자연으로의 여행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 할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으니 오롯이 부부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부모님이 외출을 더 힘들어하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이곳저곳 모시고 다녀볼 테다.
직장에 매여 있지 않는 친구가 늘게 되면서 지인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도 많아질 것이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아예 생활 터전을 바꿔 살아볼 수도 있다. 이런 생활에 적당한 차를 골라야 한다. 그래도 명색이 ‘인생의 마지막 차’이니 내 취향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남편과 함께 운전하며 다닐 차라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앞으로 십여 년 부부가 쓸 수 있는 돈도 생각해 봐야 하니 가능한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차가 적합하다.

그리하여 요 며칠 본격적으로 남편과 여러 브랜드의 자동차 전시장을 돌며 어떤 차를 사야 할지 살펴보고 있다. 틈틈이 온라인 검색을 통해 자동차 전문 블로거들의 차량 평판과 비교·분석한 글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물론 남편도 나도 소위 로망으로 남겨 둔 차는 한 가지씩 있지만, 그 차들은 앞서 말한 조건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개인적 취향만으로 고른 차이기에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든 필요한 짐을 싣고 산과 강을 넘나들며 다니려면 SUV가 적당하다. 주행이나 주차 등에 무리가 없으려면 너무 큰 SUV보다는 중형 모델이 적합하고, 차체가 너무 높으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니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앞 좌석뿐 아니라 뒷좌석의 여유나 승차감도 중요하다.
주행 성능이 좋은 사륜구동을 사면 사시사철 어느 곳으로든 운전하는 데 부담이 없겠지만, 당연히 2륜보다 기름값이 더 든다. 연비나 세제 혜택, 환경까지 생각하면 하이브리드 모델이 좋겠는데, 제대로 된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격이 비싸다. 그럴 바에는 전기차를? 그런 큰 변화를 맞이하며 운전할 자신은 없다. 마침 정부에서 상반기까지 신차를 구입하면 개별소비세를 30% 인하해 준다고 하니 6월 말 안에 차가 나올 수 있는 모델이어야겠다.
목적지를 향해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찾아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 계획이 없었어도 차창 밖 바람을 맞으며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그 시간을 위한 차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젊었을 때는 디자인과 컬러 외에 다른 조건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그래서 타고 싶은 차가 명확했는데, 지금은 고려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차’라고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마음을 바꿔야겠다. 그냥 지금 필요한 차, 그러다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 차로 바꿀 수도 있고 운전대를 놓을 수도 있는 차라고 말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후보들이 확 줄어든다. 역시 너무 비장하면 결정이 어려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