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손주며느리와 시할머니, 손녀와 할머니처럼
서로에게 편안한 집이 되어주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더 많아졌으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다 보니 어른을 위한 보호센터가 많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다 보니 어른을 위한 보호센터가 많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오후 네 시, 아파트 입구 노랑 버스 전용 터미널에 부모들이 모여 서성인다. 온갖 버스가 차례차례 들어와 아이들을 내려놓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토끼같이 엄마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

젊은 엄마들이 빠지고 난 다섯 시 즈음, 이번엔 중년의 어른들이 서성거린다. 그 틈에 젊은 여성 두 명도 끼여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혜진(가명)과 선영(가명)은 3년 전에 이 아파트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두 여인은 할머니와 같이 살며 야간대학에서 복지사 공부도 함께 하고 있다. 혜진은 외향적이라 명랑하고 수다스럽지만 선영은 차분하고 살갑다.

한 단계 건너뛴 손주와의 관계는 까칠한 할머니도 유순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단계 건너뛴 손주와의 관계는 까칠한 할머니도 유순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일찍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살았던 선영은 결혼해서도 홀로 계신 할머니를 모셔 와 같이 산다. 벌써 3년째다. 곧 돌아가실 것 같던 어른은 경증 치매 진단을 받으셨지만 요즘 들어 더 건강해지셨다.

많은 식구와 북적거리며 살았던 혜진은 어른과 함께 지내는 게 스스럼없다. 오랜 할머니 봉양에 지쳐 건강이 안 좋아지신 시부모님을 대신해 혜진이 자청해서 할머니만 모시고 이곳으로 분가했다. 성격이 밝고 유쾌한 혜진도 아이가 없어 한동안 우울했다. 시험관 시술도 몇 번이나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할머니의 응원으로 입양을 결심했고 둘은 비슷한 환경에 서로 위로가 되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장도 같이 보고 요가도 하며 주말엔 학교도 같이 가는 친구다.

이번 버스에서는 노인들이 내린다. 이른바 ‘어른이 노치원’ 차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걷는다. 살가운 보호자도 있지만 막중한 근접 경호 임무를 맡은 듯 묵묵히 뒤따르는 보호자가 대다수다. 혜진과 선영은 차에서 내린 할머니의 손을 잡고 미주알고주알 떠들기 시작한다.

“꽃분 씨~ 순녀 씨~ 오늘 노래는 뭐 배웠어? 불러봐. 해봐.”

“아이고 야야~ 길에서 남사스럽게 뭔 짓이여. 치아라.”

“에이~ 그래도 불러봐.”

혜진은 몸을 돌려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뒷걸음질하며 조잘댄다.

“거 머드냐. 강냉이로 꽃도 만들고, 노래도 불렀는데 머더라?”

“거봐, 집에 도착하면 다 까먹는다니깐. 할머니, 내가 거들어 줄게 처음만 불러봐.”

“하이고 또 시키네. 나비가 어디서 날아온다는디··· 그새 까먹었네.”

혜진과 선영은 아파트 공원 벤치에 두 어른을 앉혀놓고 춤을 춘다. 오늘의 일정표를 미리 훑어보며 어르신 율동을 유튜브에서 먼저 익혀둔 상태다. 선영은 쑥스러우면서도 사붓사붓 따라 하지만 키 큰 혜진은 전문 댄서가 따로 없다.

“꽃나비가 되어 날아가고파. 그대 품에 안기고 싶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처럼 너 품에 안기고 싶어~“

노인보호센터에서 두뇌활동을 위한 수업을 함께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노인보호센터에서 두뇌활동을 위한 수업을 함께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공원을 걷던 사람들이 그녀들의 2인조 댄스에 손뼉을 치며 웃는다.

“하이고 야야, 내일 아침밥 당번 할 태니 고마 하래이.“

관객으로 앉아 손놀림을 따라 하던 할머니들이 멈춰 선 사람들을 보자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 크게 웃는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운다. 웃음은 바라보는 이도 전염된다.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드물게 눈에 띄는 요즘이다. 손주며느리와 시할머니, 손녀와 할머니처럼 서로에게 편안한 집이 되어주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함박웃음 짓는 두 어르신을 보고 있으니 어찌 보면 행복하기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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