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그동안 만나본 봄 중에 처음인 새봄
들판은 농부의 게으름을 용납지 않아
나이 드니 조금만 일해도 몸이 아우성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다. 곧이어 경칩이 올 텐데 이상기온으로 너무 추우니 생물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나 하려나 걱정 아닌 걱정이 된다. 우수엔 언 눈이 녹고 비가 온다는데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렸다. 시설 농가엔 벌써 온갖 모종을 키우며 24시간 갓난아기 돌보듯 한다.
“나는 3월이 오는 게 싫어요.”
나의 투덜거림에 화답하는 동네 어른의 농담이 애잔하다.
“하이고~ 심심풀이 농군 자네보다 전업 농군인 우리는 3월이 더 싫고 무서워.”
마당 한쪽에 심어놓은 50여 그루 묘목에 이른 전지를 했다. 원래는 12월부터 2월 하순까지 차례대로 해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하필이면 가장 추운 날 무슨 기운이 뻗쳤는지 한꺼번에 해치웠다. 다음날부터 한파특보에 동파 방지 재난 뉴스가 계속 울린다. 살을 에는 추위에 몇 그루는 자른 마디마다 동상을 입어 시커매졌다. 따뜻한 마음으로 생명을 보살펴야 하거늘 나무에 미안하다.
작은 하청공장을 20년간 운영하며 컴컴한 지하에서 해가 뜨는지 달이 지는지 몸이 부서져라고 일만 하던 우리 부부는 병을 얻은 후 삶의 방향을 틀었다. 오지 중의 오지인 봉화 산골짝으로 들어가 농로에 길쭉하게 걸쳐진 땅(이런 땅은 엄청 싸다)을 구입한 첫날, 툇마루에 올라 까치발을 하고서도 경계선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부자 같던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가 입주하니 모두 농담 반 진담 반 한마디씩 했다.
“여기 살던 전 주인은 부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제. 일에 치인 아낙이 어느 날 호미 들고 나가서는 안 돌아오는 기야.”
“땅끝이 안 보이니 도망가기 좋체(좋지). 자네도 마누라 잘 지켜야 된다는 말이시(말이지).”
크게 웃던 남편이 곧 응수했다.
“어쩝니까~ 땅 주인이 마누라라 도망은 내가 가야 하구먼도 내사 그럴 처지가 못 되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가.”
농사는 내게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선물했다. 모래알 같은 온갖 씨를 뿌리고 나면 제각각의 모양으로 쏙쏙 올라오는 생명의 신비와 온갖 열매 맺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때엔 처음 해보는 어떤 일도 힘들기보단 재미있었다. 하늘과 땅과 그사이에 불어오는 산들바람도 여름의 장대비와 겨울의 폭설도 여유롭게 바라보았다.
지주라는 힘은 끝이 안 보이는 밭을 매며 몇 번이나 왕복해도 기운이 솟았지만 남편은 힘들었는지 죽음이라는 또 다른 길로 도망쳤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안동으로 나온 지 어느새 12년째, 여기서도 지주가 되어 집 짓고 정원 가꾸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다만 요즘은 조금만 일해도 몸이 아우성친다. 마디마디 쑤시고 마비가 오기도 한다.
그냥 확 제초제를 칠까, 시멘트 작업을 해버릴까, 이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갈까···
어중중한 평수는 농기계가 들어오기도, 인부를 쓰기도 애매해서 쭈그려 일하다가 힘들면 이런저런 상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봄이 오면 늘 이사하는 꿈을 꾼다. 그러하니 60대에 귀촌한다는 누군가가 있으면 나는 손사래 치며 말린다. 귀농귀촌은 젊어서 해야 좋다. 마당 앞을 지나던 어른이 동상 입은 나무를 보며 한마디 한다.
“쯔쯔, 농사는 절기를 따라가야제, 부지런 떨어서 되는 게 아니여.”
마당에 널브러진 잘린 가지들이 바람에 뭉치고 엉켜 어수선하다. 밭 설거지한다는 말에 달려온 동생이 마당을 둘러보며 이럴 땐 아파트가 답이라며 더 부추긴다. 오자마자 두 팔 걷고 거드니 금세 마당이 훤해졌다. 깔끔하게 정돈된 마당을 보며 아파트로 기울어진 나의 마음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마당쇠를 구해 볼까나?” 하니 동생이 눈을 흘긴다. 마당쇠 줄 새경 모아 꽃구경이나 가잔다. 아무렴, 여태 만나 본 봄 중에 또 처음인 새봄 아닌가. 곧 만나게 될 3월은 미운 만큼이나 설레는 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