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서양의 왕과 왕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기본
조선의 왕은 위기에 먼저 숨고 관리들은 당쟁 몰두
지도층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인 나라 미래도 없다

며칠 전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나토(NATO) 소속 영국군을 방문하여 나토 배지를 단 군복을 입고 전차와 장갑차를 타고 이동식 포병 시스템도 직접 시험해 보였다.

러시아 국경에서 탱크를 탄 영국 왕자의 메시지는 무엇이었겠는가. 영국이 러시아의 위협에서 발트 3국을 방어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탈레반이 극성을 부릴 때 아프가니스탄의 대탈레반 전투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그 사실은 나중에 밝혀졌다.

이라크 전에도 참전하려 했으나 그 기밀이 사전에 누출되어서 무산되었다. 영국 왕실의 왕자들은 군복무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병과와 부대에서 확실하게 한다. 윌리엄은 7년 반 동안 군에 복무했으며 공군 중위로 위험한 헬리콥터 조종까지 했다.

러시아 접경지역 에스토니아 주둔 영국군 기지에서 탱크를 탄 윌리엄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접경지역 에스토니아 주둔 영국군 기지에서 탱크를 탄 윌리엄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같이 영국 왕실 왕자들은 예외 없이 군 복무를 제대로 한다. 이것은 그들이 특권도 누리지만 주어진 책무도 확실히 수행한다는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라에 위기가 오면 앞장서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이다.

서양의 중세 왕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예외 없이 전쟁에 참여하여 진두지휘하였다. 그로 인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왕들이 많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루이 9세, 루이 11세, 후일 단두대에 오른 루이 16세, 나폴레옹도 두 번이나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났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전쟁터 근처에도 안 가고 피난하기에 급급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대표적이다. 백성들을 무방비로 내팽개치고 보따리를 싸서 왕비와 노비들과 함께 재빠르게 의주까지 피난하여 왜구들까지 놀랐다고 한다. 명나라로 망명까지 타진했으나 명의 냉랭한 반응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전쟁터에는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광해가 후선에서 전쟁에 참여했으나 전쟁이 끝나자 아들의 공로를 백성들이 높이 살까 봐 은근한 질투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이순신이 해전에서 승리하자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를까 봐 질투하여 원균의 모함에 쉽게 그를 파직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하며 해전을 치르다가 남해의 노량 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치다가 ‘전투가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임란 후에는 이순신과 의병들의 업적까지 폄하하려 급급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못난 임금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전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인조의 삼전도 굴욕 /KBS 역사저널 그날 화면 캡처
전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인조의 삼전도 굴욕 /KBS 역사저널 그날 화면 캡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도 그에 못지않게 비겁한 임금이었다.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47일 만에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조선조 두 개의 대표적 전란에서 임금은 저처럼 비굴했다.

조선의 관리들은 어땠을까. 이조 500년간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대북 소북 등등 편을 갈라 수염을 휘날리면서 죽기 살기로 싸웠다. 그 숱한 당쟁의 끝은 스스로 무너져 전쟁 없이 왕조를 일본에 갖다 바치고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같이 허접하고 비굴한 것이 조선의 임금과 나리들이었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다가 표류하여 강제 억류를 당했던 하멜은 오죽하면 그의 표류기에서 ‘조선에서는 전쟁터에서 죽은 자보다 전쟁을 피하여 산에서 죽은 자가 더 많다'고 기록했겠는가.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보다 전쟁을 피하려는 자들 투성이였다. 전투를 마다치 않는 서양인들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짓은 잘하면서 정작 외적의 침입에는 도망치는 민족에게 자주적인 안보 능력이 있겠는가.

영국과 도버(Dover) 해협을 두고 마주하는 프랑스의 도시가 칼레(Calais)이다. 영불간 100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마지막 전투를 한 칼레가 괘씸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안 시민의 학살을 계획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꿔 항복 조건을 내걸었는데, 칼레의 지도자 6명이 목에 밧줄을 묶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공개 처형의 대상이었다.

이때 칼레의 지도자 6명이 자원했다. 그들은 그 도시의 시장, 최고 부자, 재판관 등 가장 명망 있는 인사들이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는 대신 나머지 시민의 목숨을 구하려는 희생정신의 발로였다. 이들의 헌신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란 유명한 동상으로 남아 있다. 이를 일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왕은 임신 중이던 부인 필리파 에노가 그들을 살려주라는 간청에 귀 기울여 지도자 6명을 석방하고 칼레 시민 모두를 용서했다. 부인이 임신 중 뱃속의 아이 걱정을 한 덕분이었다.

지금의 한국 지도층에는 군대를 제대로 갔다 온 사람이 드물다. 그 한 예로 과거 사법시험을 합격한 명문대생들이 대표적인데, ‘별의별’ 탓을 대면서 입대를 기피했다. 그들이 이 나라 지도층이 된다면 그들에게 국가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희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좋은 것은 내가 다 갖고 험하고 위험한 것은 아래 있는 것들에게 넘기는 지도층의 비겁한 행태이다. 이들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그들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이것이 조선왕조 500년을 거쳐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한국 지도층의 부끄러운 실상이다. 나라가 시끄럽고 분열될 때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하고 나서는 지도자는 없고 비겁하게 장막 뒤에 숨어서 지지 세력을 내세워 갈등을 부추기고 그들에게 기대어 생명을 연장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지 않고 희생과 헌신이 없는데, 일반 국민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도망가고 싶을까, 아니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싶겠는가.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최근 트럼프가 도발적인 언사로 몇몇 나라를 모욕하고 있다. 그런 피해를 당한 나라 중 하나가 캐나다이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게 낫지 않겠냐고도 했다. 자진 사임한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한 마크 카니(Mark Carney)는 그의 취임 연설에서,

 “캐나다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무분별한 모욕이다. 절대로 무례한 트럼프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강한 캐나다를 만들고 정면으로 미국과 맞설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있게 해준 캐나다를 위해 결연히 싸우겠다”라면서 신랄하게 트럼프를 비난하였다. 한국은 저런 당당하고 의연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지도자는 자신이 먼저 헌신하고 위험에 맞서 앞장서서 싸우는 기개 없이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상위 1%’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었다.

시간이 걸려도 이러한 정신적인 자세는 반드시 바로잡고 뜯어고쳐야 한다. 지도층의 희생과 헌신적인 솔선수범 없이는 나라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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